‘서로서로 만날 때 향기를 얻고(物物逢時各得香, 물물봉시각득향)

온화한 바람 속에 봄볕도 따사롭네(和風到處盡春陽, 화풍도처진춘향)

인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니(人生苦樂從心起, 인생고락종심기) 

활달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만사가 모두 편안하리라.(活眼照來萬事康, 활안조래만사강)’ 



경봉스님의 글을 쓴 작품 하나가 보였다. 이는 치당 김규완씨의 작품으로, 짙은 묵향이 느껴지는 가운데 여백의 미와 함께 여운을 더한다. 

2010년 5월 7일 전주 경원동에서 부안출신 서예가를 만났다. 그는 강암 송성용을 스승으로 모시고 서예를 배운 그는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로, 전북서예협회 전북지부장과 강암연묵회장, 전주 완산고 교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고재흠씨가 ‘초록빛 추억’이란 수필집을 발간했다. 그는 ‘춘약불경 추무소망(春若不耕 秋無所望)’이라는 축서(祝書)를 받았다. “봄에 만약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수확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그의 글씨다. 고재흠씨 집안은 대나무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할아버지 호는 죽와(竹窩), 아버지 호는 죽헌(竹軒)이며, 그의 호 죽촌(竹村) 역시 치당이 주었다.

서슬 시퍼런 권력의 칼날에도 무릎 꿇는 비겁한 선택을 하지 않고, 학처럼 고고하게 세속의 모든 그리움, 그 안에 묻어 두고 대잎을 싹틔우며 하루하루를 진지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다짐일 터.

부채에 담긴 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과 성격처럼 바지런한 '반야심경'과 '색즉시공', 그리고 '청산은 나를 보고'로 시작되는 나옹선사의 시에 이르기까지 진한 먹과 엷은 먹을 적절히 조화시켜 달빛 아래 교교히 서 있는 듯, 활달한 기운으로 윤택함과 생동감을 전해준다./글 이종근기자, 사진 이철수(사진가.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