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하: 선아야 파리에 가본 적이 있니? 요즘은 해외여행이 일반화되었고 유럽여행도 자주 가는 편이라 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가기도 하거든. 



선아: 정말, 깜놀(깜짝 놀람)이에요. 샘이 마치 제 과거를 거의 다 아는 것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요. 작년에 독서모임을 하는 교사들끼리 파리와 독일 위주로 유럽여행을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혹시 루브르 박물관을 가봤냐고 묻고 싶으신 것이에요? 



채하: 맞다. 오늘 설명할 그림이 그 박물관 1층에 위치해 있거든. 미술사적으로는 대단한 그림이기도 하지만 몇 년 전 우리 사회에 일어났던 대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선아: 혹시... 드농관 1층에 있던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을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요? 정확한 크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엄청난 크기의 그림이었어요. 복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찬찬히 그림을 감상했는데 복잡하고 미묘하며 울컥 눈물이 솟구치기도 하는 미묘한 감정의 복선을 담고 있는 그림이었어요. 



채하: 나 역시도 몇 번이나 그림을 다시 봤지만 뗏목 위에서 절규하거나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아 저미는 가슴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선아: 제리코가 그처럼 고통스러운 작품을 그리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상상화이기 보다는 실제 일어났던 어떤 사건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그림 같았어요. 지난 1980년대 민중미술이 민중의 고통 받는 삶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고발하려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거든요. 그림을 그린 배경이나 경향, 함축에 대해 다각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어떨까요? 혹시 시간이 되시면 강의 후에 술도 한잔 했으면 합니다. 작년에 글 값으로 자장면을 사드린 후에 한 번도 사례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샘이 좋아하시는 ‘대동강 맥주와 생 연어’를 사드리고 싶어요. 시간 있으시죠?



채하: 최고로 기분 좋은 제안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강의는 힘을 내서 해야겠다. 이 그림은 미술사조적으로 낭만주의라고 볼 수 있다. 낭만주의는 19세기 전반, 특히 1820∼1830년에 걸쳐 유럽 여러 나라에서 회화를 비롯하여 조각 등에도 파급되었던 예술사조이다. 낭만주의 미술은 합리주의에 반대하여 객관보다는 주관을, 지성보다는 감정을 중요시하고, 또 개성을 존중하여 자아의 해석을 주장하고, 격정적 · 정서적으로 자유를 추구하며, 상상하는 대로 무한한 것을 동경한다는 전반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 이전의 신고전주의 미술이 질서와 규범에 입각하여 선과 형태를 중시하고 내용에 있어서도 그리스 로마의 역사와 신화 주제를 탐구했다면, 낭만주의로 분류되는 미술가들은 직관과 감성, 상상력을 발휘하여 색채와 분위기를 중시하면서 인간 이성의 한계를 벗어난 초월적인 숭고의 미, 또는 중세적이고 이국적인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다. 본격적인 낭만주의 미술의 등장은 오늘 우리가 설명하고자 하는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부터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제리코 이후에 1820년대에 프랑스 낭만주의 미술은 크게 부흥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고야의 <바람 부는 날>, 들라크루아의 <자유의 여신>, <호랑이 사냥>, <카오스 섬의 학살>, <알제리의 여인들> 앵그르의 <루이 13세의 경배>, 제리코의 <도박에 빠진 여인>, 터너의 <대홍수 후의 아침> 등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선아: ‘메두사호의 뗏목’은 낭만주의 미술을 정착하게 만든 이정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군요. 그림의 외연을 설명해주시겠어요?

채하: 가장 먼저 눈길이 간 곳은 그림의 왼쪽 아래, 한 노인이 죽어가는, 혹은 죽은지도 모르는 사내를 붙들고 슬픔에 잠겨있는 모습이다. 그 양옆으로도 각각 앞으로, 그리고 뒤로 넘어져 있는 생사여부를 알 수 없는 남자 둘이 있다. 그 옆에 보면 붉은 옷을 걸치고 오른쪽을 응시하는 한 남자를 볼 수 있다. 필사적으로 손을 뻗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포자기 한듯 한 초조한 눈빛으로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아니 오랜 표류로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여력조차 없어서 옆의 노인과 같이 동료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림의 맨 오른편을 보렴. 최고의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부분이다.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면서 구조를 기다리며 필사적으로 팔을 내밀고 있다. 



선아: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그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 연민이 앞섭니다. 그런데 그들이 표류하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제리코는 단순한 표류였다면 그러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 같아요. 



채하: 이 대작은 당시의 사건을 그리고 있다. 1816년에 원래 전함이었다가 상선으로 변경된 메두사호는 관원과 함께 약 4백 명을 태우고 식민지였던 세네칼로 출발했으나 향해 도중에 아프리카의 암초에 걸렸다. 배를 버리고 승원은 구명정에 분승했으나 나머지 149명은 뗏목을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큰 바다에 나오자 구명정에 탓던 선장과 귀족들은 그들만이 살고자 의도적으로 밧줄을 끊었고 뗏목에는 한 모금의 물과 적은 음식물 때문에 피로 물든 싸움이 벌어졌다. 나중에 지나가던 배에 구조될 때는 생존자는 15명, 모두 빈사상태였다. 이 보도는 세론을 들끓게 했다. 

선아: 샘의 이야기를 들으면 단순한 사고일수도 있는데 세론이 들끓은 까닭은 무엇인가요?



채하: 먼저 선장 쇼마레의 처신 때문이다. 쇼마레는 바다에 나가거나 배를 몰아본적이 없는 귀족이었는데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인 세네칼에 도착하기 위해 지나치게 배의 속도를 높이고 항로를 이탈해 해안으로 향해했다. 문제는 해안가에는 수많은 모래톱과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고 자칫하면 배가 좌초할 위험도 커서 경험 많은 선원들은 선장에게 여러 번 충고했지만 선장은 무시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더 많은 상품을 실어 프랑스로 돌아가 되팔아 이윤을 남기려는 부의 욕망이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졌다. 그 다음으로 배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인 행태 때문이다. 그와 귀족들은 안전한 구명정에 타고 뗏목에는 하층민을 타게 했는데 총 6대의 구명보트가 서로 호송대를 이루어 뗏목을 끌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구명보트와 연결된 밧줄을 끊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는 당시의 프랑스 정치가 부패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 후에 왕정이 복구된 상태로 관직을 두고 매관매직이 빈번했다. 즉 정치권력의 당사자들이 부패했기에 향해 경험이 전무한 쇼마레에게 선장지위를 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프랑스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였다면 메두사호의 침몰이라는 사건은 아애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49명 중에서 15명만이 구조되었는데 5명은 구조된 후에 얼마 되지 않아 죽었고 나머지 10명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이 사건이 알려진 것은 생존자 중 하나였던 외과의사 앙리 사비니가 관계당국에 증언하면서이다. 그 내용을 젊은 프랑스 화가 제리코가 알게 되었고 준비기간을 포함해 18개월, 그림을 그리는 데만 8개월이 걸려 완성한 작품이다. 



선아: 우리 사회를 보면 개인적 능력이나 객관적 공정성보다 혈연, 지연, 학연이 앞서는 맥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잖아요. 더구나 그처럼 사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이나 이웃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과 불이익에 대한 책임의식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내편에 이득이면 그것도 능력으로 보잖아요” 저는 제리코가 매우 용감한 것 같아요. 당시는 미술작품이 ‘예술을 위한 예술’로써가 아니라 주로 정치경제, 종교적 지도층의 주문으로 제작되던 시기였기에 제리코가 주문받지 않았고 팔릴 가능성도 없는 대작을 제작한 것은 개인적으로 어렵지만 사회정의를 세우려는 매우 용감한 일이라고 봅니다. 



채하: 맞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1819년 살롱전에서 파리 시민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당시 비평계에서는 상반된 평가가 엇갈렸다. 프랑스 비평가들의 주류는 권력층의 환심을 사기 원했기에 정치적으로 판단했고 제리코가 이 사건을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영웅적으로 묘사했다고 비난했다. 이 작품은 1820년 영국에서 전시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호평을 받았다. 



선아: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기억의 재생이라고 봐야 하나요? 세월호 침몰... 제리코의 그림을 보는 것과 세월호에서 쓰러져간 단원고 학생들이 침몰 직전 남긴 15분간의 동영상과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다움이 무너지는 그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하겠더군요. 화창한 봄날이었지만 아이들을 태운 배가 사라지는 동안 해경을 비롯한 정부는 속수무책이었어요. 우리 모두는 참혹한 그 현장을 목격한 증인이고요. 



채하: 세월호 참사와 메두사호의 침몰이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는 있었지만 국가가 없었다는 점이다. 부패한 정부가 자격도 없는 귀족에게 선장의 자격을 준 것이나 침몰하는 배를 해경이 지켜보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국민들에게 집단적인 절망과 자책감만 남게 한 것이다. 즉 국가와 정치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만 남게 한 것이지. 또한 세월호나 메두사호에서 선장의 초기대응은 개인적으로도 부도덕했으며 적절치 못했다. 이후에도 사건을 수습하기는 커녕 승객과 선원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본인의 안위만을 챙겼다. 두 선장 모두 총책임자로서 역할을 망각했다. 어느 덧 메두사호가 침몰한지 2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가 제도와 기술적인 측면에서 발전했지만 비슷한 참사를 되풀이 된 것은 지켜볼만한 문제이다. 



선아: 세월호 참사의 원인가운데 선박사가 이윤만을 추구하려는 것도 찾아볼 수 있듯이 그 당시에도 비슷했다고 봅니다. 제가 세계사에서 배운 것인데 장차 정치경제학이 태동하는 배경이기도 한 중상주의는 무역차액설을 기초로 하더군요. 가장 큰 이윤을 위해서라면 국내 생산을 독려하여 수출을 많이 하고 수입을 제한하는 한편 무역을 독점하는 식민지를 확보해야만 했더군요. 당연히 국가들 사이에 충돌이 빚어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 정부는 식민을 위해 정착민을 태우고 세네칼로 향했던 것이고요. 



채하: 부를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은 발전의 원동력이며,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서 이기심이 충돌하지 않고 모두가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자유주의와 공리주의는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이 충돌하여 시대착오적 철학이 되었다. 이것이 낭만주의의 한 배경으로 제리코는 그러한 인간의 욕망가운데 감성적 면을 포착했던 것이다. 제리코는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시나 그림은 결코 이 뗏목에 탄 사람들의 두려움이나 고통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못한다”고 했다. 뿐만이 아니다. 한 나라의 함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지도자도 사리사욕을 위해 핸들을 잡으면 죽어나는 것은 국민 뿐이다.



선아: 결국 제리코는 승객보다 자신의 목숨을. 돈을 먼저 생각하는 무능하고 욕심 많은 무리들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사건을 지금의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다시 간절하게 말하지만 세월호 침몰로 인해 죽임을 당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채하: 도덕적인 개인이 집단과 사회에서 비도덕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니부어의 지적을 곁들여 보고자 했지만 아쉽게도 샘이 약속이 있어서 다 말하지 못하였구나. 다음 기회에 윤리적 개인이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살지 못하는 까닭과 대안에 대해서 말해주도록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