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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지킨 김천일





언양김씨 대종회가 ‘건재 김천일 전집Ⅰ-Ⅱ’(지은이 김천일, 옮긴이 김익두, 허정주, 발간 민예원)를 펴냈다.

‘건재 김천일 전집Ⅰ’권은 국역 ‘건재선생문집(부성인쇄사, 1981년)’을 참고 역본으로 삼아, 3년 여의 노력의 산물이며, ‘건재 김천일 전집Ⅱ’권은 조선왕조실록 김천일 관련 기사로 구분된다.

이순신장군은 나라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서 해전만 주로 하였지만, 건재 김천일은 해전과 육전을 다 치르고, 민족 최후의 근거지 강화도를 근거지로 해, 완전히 이반된 서울-경기 지역의 민심을 돌아오게 했다.

서울이 수복되자 곧바로 남은 의병들을 데리고 진주성으로 내려가, 당시 권율 등 제장들이 접근을 꺼리던 진주성전투를 필생의 벗들과 함께 주도적으로 치렀다. 성은 비록 함락됐으나, 왜적에게도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 이후 왜적이 나라의 곡창 호남을 침범하지 못하게 함으로써이순신의 승전을 가능케 했다.

김천일은 이런 의병사에서 뿐만 아니라, 당대 호남의 최고 학맥이었던 정읍의 일재 이항의 수제자로서, 일재의 '이기일물설'을 더욱 더 발전시키려 노력했다. 당대 호남 최고 학자 하서 김인후, 미암 유희춘의 돈독한 사랑과 추천과 기대를 받는, 호남 성리학의 중추적 인물이기도 했다.

정계의 서인의 중추적 인물인 율곡 이이, 우계 성혼, 그리고 송강 정철 등과 깊은 우의와 연대를 가지고, 본인은 주로 외직에 있으면서, 나라 수호의 길에만 매진했다. 공직 수행의 업적과 올곧음에 대해서도 남아 있는 역사 자료들이 매우 감동적인 내용들을 많이 전해주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최고의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는 그를 120여 차례나 언급하고 있을 정도로 비중을 치지한 인물이다.

이 책을 번역한 김익두교수(전북대 국문학과)는 “지금까지 영남 중심, 동인 중심, 그리고 이순신 중심의 임진왜란사의 여러 문제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이 이 책에 많이 실려있다”면서 “앞으로 호남중심, 서인 중심의 임진왜란사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것들도. 임진왜란사 자료도 지금까지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일변도의 방향으로 연구도 하고, 영화도 만들어 왔지만, 많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어 “왜란사 자료도 호남의 서인 출신 안방준이 쓴 많은 여러 자료들이 있지만, 그런 데에는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안타깝다”면서 “때문에 건재 김천일의 공로와 업적은 이순신보다 더 높이 평가될 필요도 있다”고 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