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관찰사 이서구(李書九, 1754~1825)가 예언한 일이 전북 지역 여러 곳에 현실로 이뤄지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그는 전라감사를 40대 초반과 60대 후반인 정조와 순조 때 두 번이나 역임했던 인물이다. 

'수저(水低) 30장이요, 지고(地高) 30장이 될 것이다’ 변산 앞 바다 쪽의 바닷물이 30장 밑으로 내려가고, 해저의 땅이 30장 위로 올라온다는 예언이다. 30장이면 대략 90미터에 해당한다. 바닷물이 90미터 내려가고, 땅이 90미터 위로 올라오면 어떻게 되는가? 이는 지각 변동을 의미하는 만큼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서구가 봉동에 와서 봉실산과 봉동의 들판을 보고 ‘이 산 아래에서 만인이 살 곳으로, 만인의 은덕을 베풀 곳이고 만인을 구제할 약초가 자라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이후 ‘만인의 구제할 약초’로 이곳에서 ‘향내 나는 풀’ 생강이 재배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남원 광한루에 가면 해태상이 있다. 이서구가 감사 시절 남원에 와서 ‘남원에 불이 많이 나는 이유는 견두산(犬頭山)이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서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삼거리에 해태상을 세워 놓고, 산 이름을 개 견(犬)자를 써서 견두산으로 하라'는 말을 했다. 원래 산 이름은 호두산(虎頭山)이었던 바, 이서구가 현재의 견두산으로 바꾼 것으로, 그후 화재가 사라졌다. 전주 진북사는 창건 당시, 전주 4고사 가운데 북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북고사(北固寺)로, 이서구가 전주부성의 북쪽을 보호하기 위해 진북사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대아저수지를 품은 동성산 일대는 '풍수지리상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의 갈마음수혈(渴馬飮水穴)이다. 이서구가 장차 수만리에 ‘물이 가득 찰’ 것이라는 예언대로 1920년 동상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음수(飮水)리'와 '수만(水滿)리'에 물이 가득 찼다. 고창 구시포항이 관광 어항으로 본격 개발되고 있다. '훗날 번창할 것’이란 이서구의 구시포 예언 때문에 다시금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가 전주 한벽당의 경치를 감상하다가 ‘앞으로는 이 한벽루 옆으로 불말(火馬)이 지나다닐 것이다’라고 예언, 일제시대에 이르러 과연 굴이 뚫리면서 기차가 지나 다니게 됐다.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서 전해지는 ‘진묵대사의 후신으로 태어난 이서구’ 이야기는 위봉사에서 수도한 진묵대사가 남긴 궤짝은 어떤 열쇠로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위봉사에 들른 전라관찰사 이서구가 열쇠로 궤짝을 열었고 궤짝에서는 이서구가 모월 모시에 궤짝을 연다는 글귀가 나왔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신이한 이적’과 ‘환생’이다. 이서구의 행적에 관한 설화는 예언, 도술, 풍수, 이적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신이한 이적은 대개 불교 고승들의 전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로 유학자인 이서구 설화에서도 많이 나온다.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이서구를 조선 중엽의 승려인 진묵대사의 후신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인물이 발휘한 신통력과 신이한 이적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묵대사가 출가한 완주군 봉서사를 배경으로 진묵 대사 전설이 전해지고, 이서구가 선운사 석불의 비결을 꺼내니 ‘이서구 개탁’이라는 글귀가 있었다는 전설은 고창 선운사를 중심으로 전해진다. 이 설화의 공간인 완주군 위봉사는 두 전설을 적절히 결합하면서 화자가 배경으로 새롭게 대체, 선택한 것이며 다른 절로 바꾸어도 이야기의 의미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서 전해지는 ‘흑질백장을 먹고 도통한 전라관찰사 이서구’ 이야기는 이서구가 전라관찰사로 부임해 초도순시를 할 때 위봉사에 들러 주지가 대접한 음식이 흑질백장인 것을 이미 알았고 이것을 먹은 후 천기와 지리에 도통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이서구가 전라관찰사로 처음 부임해 와서 초도순시를 할 때 완 위봉사를 방문하게 됐다. 때는 여름철이라 주지가 그에게 대접할 음식이 마땅치 않아 상좌와 함께 어떤 별미를 준비할지 고민했다. 전주장까지 다녀오려니 거리도 멀고 그렇게 주지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마침 담장에 큰 구렁이가 보이자 주지는 그것을 잡아 요리를 해서 감사를 대접했다. 이서구가 이 음식을 술하고 맛있게 잘 먹고 나서는 “고기 치고 대가리허고 꼬랭이 없는 고기가 어디가 있느냐? 어두일미라고 하니 대가리 좀 갖고 오라” 했다. 전라관찰사의 하문에 주지가 죽을죄를 지었다며 실토를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관찰사가 먹은 것은 하늘을 보면 천기를 알고 땅을 보면 지리를 알 수 있게 된다는 흑질 백장이었다. 이서구는 위봉사 주지가 대접한 흑질 백장을 먹고 천기와 지리에 도통하게 됐다고 한다.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서 전해지는 ‘이서구가 지목한 명당을 차지한 전주 유씨’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이는 이서구가 풍수지리에 밝았던 바, 운교리의 어느 명당을 차사인 유씨에게 알려주었더니 유씨가 이미 터를 잡고 있던 신씨들로부터 그 명당을 빼앗아 차지했다는 내용이다. 이 설화는 이서구가 명당을 알아보고 예언을 하는 전반부와 이서구의 차사 유씨가 이서구가 지목한 명당을 소유주로부터 빼앗는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다. 이서구의 풍수로서의 능력과 예언 능력 이야기는 이서구 인물담이자 풍수담이면서 유씨가 꾀로써 남의 명당을 빼앗는 이야기는 명당 탈취담이다.

이서구와 관련된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보물 1200호)'의 천지 개벽을 알리는 마애불 배꼽에 숨겨진 비문은 지금도 풀리지 못한 미스테리다. 기록에 의하면 이서구가 열었더니 비바람과 벼락이 일어 그대로 닫으면서 '이서구가 열었다'고 써 넣었다고 하며, 동학농민혁명 당시 손화중 접주가 무장에 머무르면서 심한 비바람을 무릅쓰고 은밀히 꺼내 보니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의 비결록이 써져 있었다는 말이 전한다. 지금은 하얀 석회로 배꼽 부문을 꼭꼭 메워버려 더 이상의 비밀을 알지 못해 아쉽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