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선생은 대하소설『아리랑』에서 김제 죽산면 내촌 외리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세워 일제강점기 40여년의 참혹한 식민의 시간, 땅으로부터 뿌리 뽑힌 민중들의 전 세계 이산(離散), 수탈과 항전, 야합과 독립의 인간 군상과 역사적 사건을 엮어 문학으로 일제강점기 역사를 재구성하였다. 



소설 아리랑에는 일제 통치시스템이 정책적으로 키운 식민지 경영의 대표적 농장주로 김제 죽산면의 ‘하시모토’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 속 하시모토는 실제 모델이 존재하는데, 그가 바로 등록문화재 제61호,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를 운영하였던 하시모토 나카바(橋本 央, 1865 ~ 미상)이다. 



그는 1887년 소야전(小野田)시멘트회사 입사, 시멘트회사 지점(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운영,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어 통역으로 종군하였다. 1905년, 전북 군산에 정착, 1915년 김제군 죽산면에서 본격적인 농장경영을 시작하였고 1936년에는 죽산면에 359정보의 토지를 소유하였다. 김제의 대표적 일본인 지주로 수리조합사업, 신사건립사업 및 김제학교조합 관리자, 김제읍장(명예직) 등, 다방면에서 맹렬히 활동하였다. 



1936년 하시모토는 일본 천황이 햇곡식을 천지(天地)신에게 바치는 궁중 제사인 신상제에 쌀을 헌납하는 헌곡자로 선정되었다. 이는 일제의 천황 지배체제 내에서는 굉장한 영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시모토는 자신의 농장 앞, 죽산리 627번지의 일부에 약 30평을 구획해서 격자형의 대나무 울타리와 금줄을 치고 신도의식으로 정결히 한 헌곡답을 조성하였다. 



또 헌곡답 동쪽에 약 25평의 전용 저수조를 마련하고, 대나무 울타리와 금줄을 치고 여과 장치를 마련하여 물을 공급하고 경비원 대기소를 신축하였다. 또 서남쪽에는 농기구 보관소, 경작자 대기실을 마련하여 헌곡답 관리에 매우 철저하였다. 또한 헌곡의 전 과정은 헌곡수전봉경사진첩(獻穀水田奉耕寫眞帖)으로 제작하여 기념하였다. 



헌곡답 경작과 의식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36년 3월 1일, 지령서 전달식을 시작으로 4월 24일, 조선총독대리관을 포함한 약 1,000명이 참여한 지진제(地鎭祭), 파종 수확의 여러 과정과 10월 7일, 약 1,000명이 참여한 신도의 정결의식, 10월 9일, 조선총독부 상납식, 10월 12일, 일본 황거 헌납식. 황거 헌납은 특별히 배려받아 하시모토 부부가 방문 수행하였다. (출처 : 군산 동국사 종걸스님)



하시모토는 일제 통치시스템이 정책적으로 키운 식민지 경영의 대표적 농장주이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조선의 토지를 수탈하여, 그 결과물을 일본인 농장주와 농업주식회사, 농업이민자에게 헐값에 나눠주어, 일제 당국의 한반도 영구지배를 도왔다. 이에 연동된 채, 살던 땅에서 뿌리 뽑힌 조선의 농민들은 해방 전까지 무려 150만 ~ 200만 명이 만주 연해주로 내몰려 일본의 영향력을 확장하는데 활용되었다.



조선인 이민자들은 땅 설고 물 선 만리타국에서 원주민들에게 공격받고, 죽거나 병들고 다쳐가며 그 땅에서 논농사를 일으켜야 했고, 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일제의 조선 병탄 하에서 땅과 농민들에게 어떤 연쇄들이 일어났는지, 김제 죽산면 일본인 농장사무소와 신상제 헌곡답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놓인 지점이다.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학예연구사 정윤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