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지지 않은 전북의 향토문화유산 모두 모였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전북의 향토문화유산 모두 모였네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2.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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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원연합회, 전북의 향토문화유산 발간… 지역성과 역사성 반영

황손 이석씨가 기거하는 승광재 옆 전주 최부잣집. 토담집으로 통하는 이 집은 황토로 된 담장을 갖고 있으며, 그 담 사이에는 기와를 넣어 만든 꽃 모양의 꽃담이 자리하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고샅이라서 지난 시절, 가로등이 켜지면서 개 짖는 소리와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으리라. 시간이 흐르면 다듬이 소리, 통금시간을 알리는 딱딱이 소리도 들려왔으며, 동네 아이들은 바로 이 골목길에서 한데 어울려서 놀았다. 당시엔 컴퓨터 게임도 장난감도 없었지만 주변에 널린 것들을 손쉽게 놀이 도구로 변신시켰다. 
 돌이나 깨진 벽돌을 동그랗게 다듬어 비석치기를 하고, 헌 공책을 뜯어 딱지를 접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었다. 돌담길 끝에서 저녁 먹으러 오라고 부르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음성이 귓가에 아련하기만 하다. 집주인인 유모니카 할머니가 말한다. 떡을 하거나 부침개를 부친 날이면 돌담 위로 소쿠리가 오고 갔으며, 햇빛을 받아 따뜻해진 돌담에 고사리나 취나물 혹은 깨끗하게 빤 운동화를 널어 말리기도 했다고 말이다.

 최부잣집은 경주에만 있는 것이 아닌, 전주 한옥마을에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최부잣집이라고 말을 하는 것일까. 최부자란 최한규씨를 지칭하며, 전북여객의 초창기 사장으로 방직, 금광, 석유회사 등을 운영한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역사 자체의 움직임이 상향(上向)하는 것인가, 하향(下向)하는 것인가는 철학적 문제이다”고 말한 최한규(1905-1950)씨는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인재였다.  그는 한옥 10여 채를 매입해 1938년 가을에 두 채의 한옥을 헐고, 지금의 집을 지었으니 그의 당시 나이가 35세였다.
 전북문화원연합회(회장 나종우)가 전주최부잣집의 사연을 비롯, 문화재로 지정이 되지 않았더라도 문화재 가치가 큰 유무형의 향토문화유산을 한 권에 책에 담았다. 이는 다름 아닌, ‘전북의 향토문화유산’으로 14개 시군의 유,무형의 문화재와 독특한 전통 등 지역성과 역사성을 반영했다.
 남원시 산동면 식련마을 승련사로 진합한 후 산신각 뒤편 기차바위에 새겨진 암각화가 있다. 이를 유가심인도 또는 금강삼매경이라고 부르는데 아직 정확한 명칭은 없다. 남원 승련사 뒤편 기차바위에 새겨진 그림으로 2개의 바위 면에 각각 1구씩 2구가 그려져 있고 다른 면에는 옴마니반메홈이라는 범어문자가 새겨져 있다. 다섯줄로 된 수행도는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구경위(究竟位) 등 오위(五位)의 수행을 뜻하는데 극락 만다라의 세계를 표현했다.
 유가심인도는 대구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과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 그리고 남원 승련사에만 존재하는 있는 매우 희귀한 수행도이다. 깨달음의 최고의 경지를 공으로 표현하고 그 위에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 하는 등 우주의 이치를 보여주고 있는 밀교의 수행의 상징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 황산 서쪽 산기슭에는 3~4인이 앉을 만한 바위가 있다. 아래로는 3층의 돌층계가 있는 바, 풍암정은 맨 위층에 서남간을 바라보고 건립되어 있다. 황산은 죽산인(竹山人) 무송당(撫松堂) 안방성(安邦成)이 어버이를 산 위에 모시고 손수 소나무 씨를 뿌림에 따라 푸르게 변했다. 그런 이유로 안방성은 무송(撫松)이라 당호를 짓고, 늘 바위 위에 올라 산을 둘러보고 앞 들판을 굽어보며 풍년을 기원함에 따라 후손들이 그 바위를 풍암(豊巖)이라 이름지었다.
풍암정은 죽산인 무송당 안방성이 타계한 후 그의 증손 안홍수와 현손 안석필이 1862년 봄에 짓기 시작해 7개월 만에 완공하였다. 그 후 여러 번 중수를 거쳤고, 바위 언덕 위에 낮은 기단을 다듬고 주초를 놓았다. 두리기둥을 팔각으로 세우고 겹도리 홑처마로 비교적 간결하게 신축했다. 
 마루 가장자리에 난간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중앙에 사각으로 1칸짜리 방을 만들었던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낮은 문턱만 형식상 남아 있다. 정자 안쪽에 「풍암정기」와 중건기 편액들이 붙어 있고, ‘풍암정(豊嵓亭)’이라 행서로 쓴 편액은 석촌 윤용구(尹用求)의 작품으로 보기 드문 수작이다.
 나종우회장은 “국가지정이나 도지정의 문화재를 제외한 지역의 향토유산으로 기정되었더라도 향토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찾아서 책으로 엮었다”면서 “향토유산은 앞으로 산엄적 활용과 개발의 잠배력이 풍부해 다양한 형태의 가치를 부과할 수 있는 것으로서 지역의 정체성, 차별성, 지역경제의 활성화 측면에서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한편 전북문화 제22호도 발간, 향토유산의 활용 방안, 각 지역의 음식 등을 특집으로 소개했다. /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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