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교수의 전북문화이야기]조선시대 제왕의 고향 ‘전주’
[이승연교수의 전북문화이야기]조선시대 제왕의 고향 ‘전주’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3.1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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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의 고향인 풍패도시 전주에서
조선시대의 역사 향유하기”
이승연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이승연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전주는 일찍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고향을 상징하는 풍패지향(風沛之鄕)으로 불리워져 왔다. 여기에서 풍패(豐沛)라는 단어는 한나라의 건국 시조 유방이 패군(沛郡) 풍현(豐縣) 중양리(中陽里) 출신이었던 까닭에 건국 시조 또는 제왕의 고향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러한 조선의 풍패지향에 대해 함길도의 함흥과 전라도의 전주, 두 곳을 두고 시대에 따라 설왕설래 하고 있다. 그러나 전주에는 현재에도 이곳이 조선시대 제왕의 고향이였음을 상징하는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전북의 가장 핫한 관광지가 된 한옥마을 주변에 풍패지관(豐沛之館, 보물 제583호)과 풍남문(豊南門, 보물 제308호), 경기전(慶基殿, 사적 제339호, 보물 제1578호) 등을 둘러보면 조선시대의 왕실문화와 상징적 유물들이 풍패도시의 품격을 말해주고 있어서 관심을 증폭시킨다.

첫째, 풍패지관은 전주시내인 팔달로 주변에 엄청난 위용을 갖추고 있는 전주객사를 말하며, ‘풍패지관(豐沛之館)’이라고 쓰여진 대형 현판 또한 크기와 서체면에서 관광객들을 압도한다. 이 현판은 가로 4.66m 세로 1.79m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대형 현판으로, 한 글자당 1m가 넘는 크기이니, 현판만 봐도 곧 객사 건물의 규모를 알게 한다, 서체 또한 초서로 그 유연미와 회화적 구성미에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글씨를 쓴 사람은 중국 명나라의 정치가이며, 명필가인 주지번(朱之蕃, ?~1624)으로, 1606년(선조 39) 조선 사신단의 정사(正使) 한림원수찬(翰林院修撰)으로 오게 되면서 선조때의 문인 표옹(瓢翁) 송영구(宋英耈, 1556~1620)에게 오래전에 입었던 은혜를 갚기 위해 전라도에 와서 전라감영에 있는 객사에 머물면서 남긴 휘호이다. 아마 이 때 이 객사의 이름을 ‘풍패지관’이라고 명명한 사람도 주지번이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전주객사에 관한 자료로는 『동국여지승람』 「전주객관조」에 성종 2년(1471) 관찰사 조근(趙瑾)이 전주서고를 짓고 남은 재료로 서익사를 개축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신축자료가 없다. 그러나 1976년 보수 때 발견된 묵서(墨書)에 의하면, 고종 2년(1872)에 중수하였다고 하니 그 오랜 세월 조선왕조의 역사를 함께 한 유물임에는 분명하다.
둘째, 풍남문은 옛 전주부성의 남쪽 문을 말하여 일명 남문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전주읍성의 동서남북 네 곳의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다. 이 풍남문은 1388년(고려 공양왕 원년) 창건된 이후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丁酉再亂)으로 성곽과 성문이 모두 파괴되었으나 1734년(영조 10년) 성곽을 중건하고, 이름을 명견루(明見樓)라 하였다. 그러나 1767년(영조 43년)의 대화재로 불타 이듬해 재건하고 남문을 풍남문으로, 서문을 패서문(沛西門)이라 한데서 유래한다. 여기서의 '풍남문'이란 이름도 중국을 통일한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豊沛)에 빗대어 태조 이성계의 관향인 전주를 풍패지향이라고 부른 것에서 기인하고 있다.
셋째, 경기전은 조선시대의 묘사(廟祠)로, 지정면적 4만 9,527.4㎡에 달한다. 1410년(태종 10년) 어용전(御容殿)이라는 이름으로 완산·계림·평양 등 세 곳에 창건하여 부왕인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셨다. 1442년(세종 24년)에는 그 소재지마다 이름을 달리하여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종전(榮宗殿)이라 불렀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4년(광해군 6년)에 중건하였다. 현재 이곳에 있는 태조 어진은 1442년에 그린 것을 1872년(고종 9)에 고쳐 그린 것이다.
위의 문화재들을 통해서도 조선시대의 전주가 풍패지향이였음을 입증하고 있으며, 뿐만아니라 전라남북도와 제주도까지 관할하던 전라감영이 설치되어 한양, 평양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3대 도시였음을 말하고 있으니 전라북도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문화 되찾기 프로젝트가 궤도에 오르면 전주한옥마을과 풍남문, 전라감영, 풍패지관, 경기전 등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역사를 온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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