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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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3.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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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산을 예견한듯한 `제인스빌 이야기’

 

`제인스빌 이야기' 군산-거제 오마주
GM공장 떠나 도시의 쇠락과 눈물

 

80년 동안 운영되며 도시를 떠받치던 대규모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인구 6만 여명의 소도시는 뿌리째 흔들렸다. 제인스빌은 미국 GM 자동차 공장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수많은 제조업 기반 소도시의 전형이다. ‘제인스빌 이야기(이세영 옮김, 세종서적)’ 의 저자 에이미 골드스타인이 ‘제인스빌’에 주목한 이유도 바로 이와 같다. 

이 책은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한국에서도 출간 전부터 주목을 받아 왔다. 거제와 군산 등에 닥칠 모습을 볼 수 있어서다. 이동걸 산업은행장을 비롯, 경제, 산업계 리더들이 한국의 현실과 겹치는 제인스빌 이야기를 아픈 마음으로 읽고 있다는 근황을 전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인스빌 이야기는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지난 몇 해 동안 명백해진 사실은 외부의 그 누구에게도 이 도시의 중산층을 재건하기 위한 묘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인스빌 이야기는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GM 자동차 공장 철수 등 한국 상황을 복제해놓은 것 같은 미국 소도시 제인스빌. 대규모 GM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평범한 개인과 지역 사회는 충격에 휩싸인다. 퓰리처상 수상자 에이미 골드스타인은 심층 취재를 통해 경제위기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생하게 증언하는 한편, 지역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분투하는 사람들 또한 놓치지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전역에서는 일자리 880만 개가 사라졌다. 이 흐름 속에서 2008~2009년 사이, 제인스빌과 인근 지역에서는 9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제인스빌은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른바 ‘러스트 벨트’ 구역도 아니다. 이전의 국가적인 경기침체에도 제인스빌은 굳건했고 오히려 외지 사람들이 둥지를 트는 곳이었다.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던 평화로운 중산층 도시 제인스빌은 급속도로 ‘신빈곤층’ 지역으로 뒤바뀌었다. 
저자는 실직을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으로 받아들였기에, GM 공장 폐쇄의 원인과 결과를 기술하는 수준에 만족하지 않았다. 대공장이 지탱해온 제조업 도시의 일상과 중산층 노동자 가족이 겪는 삶의 총체적 변화상을 정교한 서사로 치밀하게 재현했다. 
2008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제인스빌의 삶을 지탱해온 GM 자동차 공장이 폐쇄됐다. <워싱턴 포스트>의 베테랑 기자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골드스타인은 제인스빌로 직접 뛰어들어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난다. 
이 책의 중심인물인 GM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 쇠락하는 지역 경제에 깔려 신음하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고군분투하는 사회복지사, 제인스빌의 미래는 밝을 것이며 따라서 모두 “낙관주의의 대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기업인, 제인스빌 출신으로 이곳을 터전 삼아 성장한 공화당 정치인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급변하는 제인스빌의 면면을 포착해낸다. 

 

 

2. 기울어 가는 나라, 분연히 일어서다 

 

전북대 안문석 교수 `무정평전'
독립운동가 무정의 궤적 추적

 

대한제국 광무 8년(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2월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여 한반도를 군사기지화한 데 이어 8월 22일 ‘제1차 한일협약’에 강제로 조인케 했다. 이로써 대한제국의 재정권과 외교권이 박탈되고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됐다. 
‘무정(武亭)’은 나라가 급속히 기울어 가던 그해 5월 함북 경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병희(金炳禧)이었다. 중국에서 군관학교에 다니던 때 전투에 참여한 적이 있었 바, 그때 그의 상관이 군인을 뜻하는 ‘무(武)’ 자를 넣어 지어 준 이름이 무정이라 전한다. 안문석 교수(전북대 정치외교학과)가 ‘무정 평전(일조각)’을 펴냈다.
이 책은 민족의 수난기와 격변기를 헤쳐 온 무정의 활동을 면밀히 살펴보고, 어떤 생각과 노선을 가지고 무엇을 지향했는지에 주목하며 숙청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및 북한 체제 형성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불과 15살에 3.1운동에 참여하고, 서울에서 청년운동에 몸담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공산당군에서 활약한 데 이어 조선의용군을 이끌고 항일 무장 투쟁의 선봉에 섰다. 무정은 경성기독청년회관 졸업 전인 1923년 2월 ‘서울청년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활동을 시작했다.
1923년 3월 서울청년회가 주도한 ‘전조선청년당대회’에 무정도 참여한 바, 사회주의 성격이 강해 일제에 의해 해산되고 20여 명이 구속됐다. 그는 현칠종 등과 함께 자산층 옹호에만 주력한다는 이유로 ‘조선청년연합회’를 성토하는 강연을 하고 ‘동아일보’ 불매 운동도 전개했는데, 양측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하여 관련자들이 일제 경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강택진, 최창익 등과는 노동자와 농민의 단결을 도모하고 계급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조선노농대회’를 준비했으나, 대회가 열리기 전 10월 5일 체포됐다. 
해방 후 북한에 들어와 초기 국가 건설 과정에 헌신했으나 정치가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아 결국 6.25전쟁 중 김일성 세력에 의해 숙청당한 후 사망했다. 이후 김일성의 경쟁자였던 까닭에 북한 사회에서 그의 이름과 업적은 지워지고, 북한에서 활동한 정치인인 까닭에 남한에서도 그의 독립운동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자이기 전에 조국의 독립과 자주국가 건설을 꿈꾸던 민족주의자였다.
해방 정국 이북 지역 정치의 중심에 있었고, 초기 북한 군부의 핵심 인물이었던 만큼 무정은 국가 건설 전략, 분단의 극복 등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무정이 김일성과 갈등, 반목하게 된 데에는 그들 사이의 이념과 노선 차이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무정은 기본적으로 누구보다 철저한 민족주의자였고, 좌우익을 막론하고 완전한 독립을 위해서는 공동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민족통일전선론을 주장했다. 제국주의의 침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약소국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국제연대주의자였고, 직업과 신분 등에 따른 차별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절대적 평등주의 노선을 견지했고, 대화를 통한 평화통일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3. 법치로 세상을 다스린 한비자

 

한비자 55편을 1~3권으로 출간
부강한 국가 만드는 한비자의 통치술

 

 

진시황제는 법가 사상을 기초로 부국강병책을 시행해 춘추전국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진시황제도 반한 인물, 한비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사상가로 명성을 얻었다. 유가를 배척하고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한 다스림을 추구한 한비의 글을 엮은 ‘한비자(권용호 옮김, 지식을 만드는 지식 발간)’는 훗날 중국의 지도자들이 즐겨 읽고 통치에 활용한 책이다. 사상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가치가 있다. 

한비자 전체 55편을 1∼3권으로 나누어 출간했다. 그중 1권은 1편부터 29편을, 2권은 30편부터 35편을, 3권은 36편부터 55편을 수록했다. 
한비자는 전국시기에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저작이다. 한비가 활동했던 시대인 전국시기는 중국 역사상 강대한 제후국들이 서로 정벌 전쟁을 일삼은 혼란의 시기였다. 또 각국에서는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아들이 부친을 살해하는 등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런 시기에 한비의 조국 한나라는 늘 외세의 침략을 받아 쇠퇴 일로를 걷고 있었다. 한비는 기존 사고방식과 체제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 법치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
한비의 핵심 주장은 법(法)·통치술[術]·권세[勢]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이 중 법에 따른 다스림은 상앙(商鞅)의 영향을 받았고, 통치술에 따른 다스림은 신불해(申不害)의 영향을 받았고, 권세에 따른 다스림은 신도(愼到)의 영향을 받았다. 한비의 주장이 이들과 다른 점은, 상앙·신불해·신도는 각각 법·통치술·권세로만 다스리려고 생각했을 뿐 다른 요소들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의 한 가지 주장만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고 불안한 것이었다. 한비는 이들의 법·통치술·권세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하나의 진일보한 법치 체계를 만들었다.
한비자 55편의 내용은 대략 열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각종 세태를 비판하고 법치를 주장했다. 둘째, 제위를 찬탈하려는 간신들의 은밀한 활동과 궁정 내부에 잠재된 위험을 분석했다. 셋째, 한비의 정치적 경험과 주장들을 반영했다. 넷째, 군주가 나라를 세우는 방법을 기술해, 한비의 법치 주장과 이를 실현하는 방법을 서술했다. 다섯째, 선진 제가들의 학술 주장을 비판하며 사상 통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여섯째, 노자 혹은 황로(黃老) 사상을 해설하며 자신의 관점을 기술했다. 일곱째,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반박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논리적으로 기술했다. 여덟째, 많은 역사적 이야기와 민간 전설을 들어 법·통치술·권세가 결합된 법치 이론을 기술했다. 
이 부분은 문장이 생동적이고 문학성이 뛰어나다. 아홉째, 한비가 수집한 원시 자료로 자신의 법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인용했다. 열째, 한비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했다.

 

 

4. 고종이 공식적인 절차 외에 사적으로도 어진을 만들었다

 

고종이 공식적인 절차 외에 사적으로 어진을 제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지난 1월 조선시대에 그려진 왕의 초상화인 어진의 기록과 그 복원 과정을 160여 점의 사진을 통해 소개한 ‘어진, 왕의 초상화’(조선미 지음)를 발간했다.
이 책은 어진의 보존처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했던 국내 1호 미술사학자인 저자가 그동안 미흡했던 우리나라 어진 연구를 집성하기 위해 기획됐다. 
어진은 왕의 초상화를 일컫는 말로 이 책에는 기존에 남아 있는 어진은 물론 복원 후의 모습과 모사를 위한 디지털 합성 과정, 얼굴·손·귀 등 각 부분 복원에 참고가 될 관련 비교 이미지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복원을 거친 어진 이미지를 포함하여 총 168컷의 사진이 실려 있고 각 사진의 세부까지 포함하면 200컷 이상이다. 
저자는 어진을 하나의 그림으로서 고찰하고 음미하는 동시에 어진이 가진 사회적 기능과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지를 담았다. 원종어진 등 현존하는 조선시대 어진을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한계를 극복하고 어떠한 노력과 과정을 거쳐 복원했는지 자세히 담겨있다. 
현존하는 어진이라도 한국전쟁 당시 화재로 그림의 절반 이상이 불타 버려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어 한 점뿐인 어진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역사의 기록, 당시 초상화의 화풍, 일부 남은 것을 연계하여 이미지를 추정할 수 있다.
태조, 세조, 원종, 숙종, 영조, 순조, 익종, 철종, 고종, 순종의 어진의 기록과 복원 과정을 담아냈다. 어진 제작은 70%의 완성도면 극진한 작품으로 평가될 정도로 엄격한 감식 기준과 까다로운 과정과 절차를 거쳐 만들어지는 거국적 사업이었으며, 어진의 상징성이 애국심과 연계되어 활용되는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일례로, 고종은 국왕의 위상 제고와 권력 강화를 위해 자신의 어진 제작 사업을 중시하고 공식적인 절차 외에 사적으로도 어진을 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 고종의 어진이 궁 밖으로 퍼지면서 백성들 사이에서 나라사랑의 일환으로 고종 사진 갖기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조선미 교수는 “어진 제작은 당대 최고의 화사가 모여 만든 협업의 산물이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품으로서 한국학 및 미술학적 의미가 크다”며,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복원된 어진이 우리나라 어진 연구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5. 최재선 교수, 시집 첫눈의 끝말 출간

 

한일장신대 최재선 교수(교양학과)가 시집 '첫눈의 끝말'(인간과문학사)을 펴냈다.
『잠의 뿌리』, 『마른 풀잎』, 『내 맘 어딘가의 그대에게』에 이은 최교수의 4번째 출간 시집으로 
‘풀어써야 할 시’를 비롯, ‘길’에 이르기까지 총 11부에 걸쳐 153편(사진 시 11편)의 시를 싣고 있다. 
작가는 서문을 통해 “시는 제 새벽이며 생애이고 멎지 않은 제 심장이며 지혈되지 않은 제 혈관이다”라고 고백하며 “ '첫눈의 끝말'이 끝말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요즘 시의 끝말을 이엄이엄 잇고 있다”고 말했다.
강기옥 시인(월간 아트앤시‧가온문학 편집 주간)은 “최시인의 시 전편에 흐르는 문학성과 예술성, 다양한 형태의 시형과 매끄러운 서술, 순간적 재치가 드러난 언어유희와 해학 등이 시력을 회복하게 한다”며 “바로 이같은 내공이 철학적 사유를 동반한 유려한 작품으로 결실을 보았다”고 평했다. /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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