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리시설인 벽골제가 있는 곳이지만 유학자와 서화가들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이 지역이 논농사의 시원지로, 농경사회에서 형성된 풍요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김제의 지세(地勢)는 동남쪽이 높고 서북쪽이 낮은 편이나 실제로는 경계 지역이 거의 다 해발 고도 30m 이하의 평야 또는 준평원(準平原)이여서 옛날부터 김제·만경평야를 징게맹게 외 배미들 또는 대평(大坪)으로 불러 왔다. 이러한 비옥한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고, 청동기시대에는 이미 농경 문화가 상당히 발달되어 이후에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호남평야 중심부가 되었고, 농경사회에서의 풍요지가 되었다.

이에 이곳의 지역명 또한 벼농사와 관련하여 변천되어 왔다. 삼한시대에는 벽비리국(?卑離國), 백제시대에는 벽골군(碧骨郡)이였는데 이는 모두가 ‘벼의 고을’ 또는 ‘볏고을’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뜻을 한자로 표기하면 화곡(禾谷), 도향(稻鄕)이 된다. 이는 삼국시대부터 김제가 벼농사의 중심지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역명인 김제는 757년(신라 경덕왕 16) 전국적으로 지명을 중국식 한자로 변경하였을 때 바뀌었으며, 이는 ‘금의 언덕’ 또는 ‘황금의 벌판[들]’이란 뜻이다.

이러한 논농사의 중심지에 우리나라 최초의 수리시설인 벽골제가 백제 시대에 축조되었음은 이곳이 경제중심지로 주목 받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있다.

“온조왕 14년(기원전 5) 2월에 왕이 부락을 순무(巡撫)하고 농사에 힘쓰도록 권장”하였고, “다루왕 6년(33) 2월에 나라 남쪽 주군(州郡)들에게 영을 내려 처음으로 논을 만들게 하였다” “구수왕 9년(222) 2월에 관리에게 명령하여 제방을 수리하게 하였고, 3월에는 영을 내려 농사를 권장하였다”“고이왕 9년(242) 2월에 나라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남쪽 진펄[南澤]에 논을 개간하게” 하였고, “흘해이사금 21년(330) 비로소 벽골지(碧骨池)를 개척하니 그 둑의 길이가 1,800보였다” “무령왕 10년(510) 봄 정월에 영을 내려 제방들을 튼튼히 막게 하고 서울과 지방에서 놀고먹는 자들을 모아서 농사를 짓도록 하였다”

이렇게 이미 고대로부터 비옥한 토양과 수리시설이 갖춰졌던 김제는 과거 1차 산업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에는 다른 고장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풍요를 누리던 고장이였다. 따라서 의식주의 풍요는 수준 높은 선비 문화로 승화되어 학문과 예술의 발전으로 이어져 김제 유학(儒學)은 다른 고장과 달리 항상 서화의 흥을 동반한 선비 문화로 계승되어 많은 문인서화가들을 탄생시켰으며, 그 맥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따라서 이는 김제 지역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서화단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김제의 서화계보는 조선 중기 이계맹(李繼孟, 1458~1523), 17세기 유집(柳緝, 1585~1651)·송일중(宋日中,1632~1717), 19세기 이정직(李定稷,1841~1909) 등으로 맥을 이어 왔으며, 이정직의 서화 세계는 조주승(趙周昇,1854~1935)·송기면(宋基冕,1882~1956)·최규상(崔圭祥,1891~1956)·유영완(柳永完,1892~1953) 등을 거쳐 송성용(宋成鏞,1913~1999)·송하영(宋河英,1927~1992) 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조주승의 맥은 조기석(趙沂錫,1876~1935) ·이광열(李光烈,1885~1966)·김희순(金熙舜,1886~1968)으로 이어져 근대 전북서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들의 서화맥을 이은 김제출신 서화가들이 중앙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와 예술을 탄생시킨 벽골제에서 진행되는 지평선 축제가 5년동안 대한민국대표축제로 선정될 정도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에 더하여 한국의 멋이 담긴 서화예술의 고장인 김제가 선비정신 물씬 담긴 예향의 본면목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가 되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