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지각생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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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5.2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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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야 좋은 사회”
윤 지 용-도서출판 기억 대표
윤 지 용-도서출판 기억 대표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중 우리나라가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는 협약들에 대한 국회비준동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추진한다니 참 다행이다.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는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는 국제기구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에 만들어졌고 유엔 창설 이후에는 유엔의 공식기구가 되었다. ILO는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 등을 규정한 핵심협약들을 회원국의 의무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 12월에 15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면서도 ILO의 핵심협약 8개 중 4개를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도록 핵심협약을 비준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나라 안팎에서 제기되어 왔다. 이미 140개 국 이상이 비준한 국제협약을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우리나라가 30년 가깝게 비준하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ILO 협약 비준은 비단 나라의 체면 문제만이 아니고 우리 경제에 현실적인 압박이 되고 있기도 하다. ILO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여러 차례 우리나라에 협약비준을 촉구했지만 우리가 이를 이행하지 않아서 지난해 말에는 유럽연합(EU)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을 근거로 분쟁절차에 들어가기도 했다. 협약을 비준하지 않으면 자칫 수출길이 막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가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는 핵심협약들은 제87호, 제98호, 제29호, 제105호 등이다. 제87호는 해직자 등의 노조 가입 허용, 제98호는 단결권을 행사 중인 노동자의 보호, 제29호는 의무병역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비자발적 노동 금지, 제105호는 정치적 의견을 내놓거나 파업에 참가한 사람의 처벌에 따라오는 강제노동 금지를 정하고 있다. 엊그제 고용노동부장관이 밝힌 정부의 방침은 제105호를 제외한 나머지 3개 협약의 비준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제105호의 경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협약은 형사처벌로서의 강제노역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주요 형벌체계 중 하나인 ‘징역형’제도와 충돌하기 때문에 다각적인 검토와 대안이 필요하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협약 비준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무척 잘한 일이지만,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국회에서의 비준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제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기 때문에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수적이다. 또한 협약에 저촉되는 국내법의 개정이 뒤따라야 하는데 이 역시 사회적 합의와 국회의 입법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지형으로 미루어볼 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은 여전히 ‘노동자의 권리 향상은 기업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낡은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발표 하루 만에 벌써부터 보수언론들에서는 협약 비준 반대를 선동하는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다. 기득권층을 대변하며 사사건건 우리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가로막아온 정치세력이 제1야당, 제2야당의 지위를 갖고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니 어쩌면 이번 20대 국회 임기 중에는 협약 비준동의와 관련 국내법 개정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나온다.
우리나라가 ILO에 가입한 지 올해로 만 28년이 된다. 한 세대가 순환할 정도의 그 긴 세월 동안 회원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미 한참 지각생이다. OECD 34개국 중 ILO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섯 개 나라뿐이다. 비록 고용형태나 임금수준은 다양할지라도 국민 대부분은 노동자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야 좋은 사회이다.
국회의 각 정치세력들은 당리당략을 떠나 상식의 눈높이로 이 사안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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