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 교수의 전북문화재 이야기]문학성과 선비문화, 그리고 역사를 갖춘 도시 `정읍'
[이승연 교수의 전북문화재 이야기]문학성과 선비문화, 그리고 역사를 갖춘 도시 `정읍'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6.11 1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읍 무성서원의 세계유산 등재를 기대하며,
정읍의 문학과 선비문화, 그리고 동학정신을 더듬어 보자”
이 승 연-서예가,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이 승 연-서예가,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정읍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백제가요인 ‘정읍사(井邑詞)’로 부터, 민중의 자각에 의한 전국적 농민항쟁으로서 근대사회를 여는 계기가 된 ‘동학농민혁명’까지를 이루어냈던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머지않아 정읍에 소재한 무성서원(武城書院)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한국의 서원’에 포함된다고 하니 이제 세계유산의 도시가 되어 브랜드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정읍이라는 지명이 정해진 시점은 신라시대부터였다. 그러나 삼국시대 이전에는 마한의 고비리국, 초산도비리국이 위치해 있었고, 백제 때에는 정촌현, 대시산군, 고사부리군의 3개 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를 신라 경덕왕 때 전국의 행정단위 명칭을 개정하면서 정촌현을 정읍현으로, 바뀌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특히 조선 중기인 1589년(선조 22년)에는 고부군의 속현이었던 정읍현이 정식으로 독립된 현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현감으로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이 부임했고, 태인현감 업무까지 겸직하기도 했다. 전해오는 일화로 이순신이 승진해 떠나갈 때 백성들이 훌륭한 사또를 데리고 간다며 승진반대 청원까지 냈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정읍이 문화와 역사적으로 큰 자산을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는 첫째, 문학적으로는 ‘정읍사’이다. 이는 현재까지 가사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백제 가요로, 전주의 속현인 정읍에 한 장사치가 있었는데, 어느 날 행상을 떠난 뒤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산 위 바위 위에 올라가 달빛 아래로 뻗친 길을 바라보며, 남편이 밤에 다니다가 해를 입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진흙에 빠지는 것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다.
이는 망부가(望夫歌)의 하나로 남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노래이며, 정읍 등점산에 망부석이 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둘째, 선비문화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며, 향사적(享祀的) 역할을 하였던 무성서원이 있다는 것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에는 지방 유림의 공의로 최치원(崔致遠,85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생사당(生祠堂)을 창건하여 태산사(泰山祠)라 하였고, 1483년(성종 14) 정극인(丁克仁)이 세운 향학당(鄕學堂)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그러나 1696년(숙종 22) 최치원과 신잠(申潛, 1491~1554)의 두 사당을 병합한 뒤 ‘무성(武城)’이라고 사액(賜額)됐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셋째, 역사적으로는 동학혁명의 중심지였다는 것이다. 혼란했던 조선후기 반외세, 반봉건적 성격의 동학농민혁명은 민중의 정체성과 자주성을 확립하고자했던 사건으로 근대사회의 개척점인 동시에 민주화의 씨앗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외에 정읍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지로는 신라 정강왕 1년(887)에 고운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재임 중에 풍월을 읊고 소요하던 연못가에 세워진 정자인 피향정(보물 제289호), 공자를 비롯해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인 정읍향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3호), 백제 무왕37년(636년)에 영은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한때는 50여동의 대가람이 들어섰다는 내장사, 백제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백제의 오방(五方) 중에서 중방성(中方城)이었던 정읍고사부리성 (井邑古沙夫里城, 사적 제494호), 동학농민운동의 중심지 황토현에 세워진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그리고 국내외 우수작품들을 전시하는 정읍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따라서 정읍은 단풍철에만 찾아가는 고장이 아닌 우리나라의 문학과 철학, 그리고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며, 다양한 문화재를 통해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유서깊은 곳임을 새삼 강조해 본다.


많이 본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