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대사습놀이의 유래
전주대사습놀이의 유래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6.1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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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대를 전후, 아전들과 한량들에 의해 시작된 판소리 축제
1905년 일제에 의해 폐지되었다가, 70년만인 1975년 부활”
김 정 태-전라북도립국악원 학예연구팀장
김 정 태-전라북도립국악원 학예연구팀장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전주의 국립무형유산원, 경기전 광장, 한옥마을 일원에서 제45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열렸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전주대사습놀이에 관한 연원은 크게 조선조 숙종 때의 마상궁술대회 및 영조대의 물놀이와 판소리 백일장 등 민속 무예놀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조선 숙종 때부터 시작한 전주 통인청의 판소리 축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사습(私習)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의 사사로운 익힘 내지 연습’이라 풀이할 수 있다. 원래 사습은 17세기 이후 국가의전에서 사전에 의식을 익히는 예행연습이나 군사훈련 제도였고, 군대와 병종에 따라 그 시행 시기와 방법이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훈련이 아닌 공식적이고도 정기적인 훈련이었다.

필자가 부르는 적벽가 중 조조가 전쟁을 위해 병졸들에게 잔치를 베풀며 호기를 부르는 진양조 대목에서 “천여 척 전선 모아 연환계를 굳이 무어 강상육지 삼아 두고 일등명장이 유진할 제 말 달려 창 쓰기며 활 쏘아 총 놓기 십팔기 사습하기 백만 군중이 요란할 제”라는 사설을 통해서도 사습은 군사훈련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초기의 문헌에는 ‘대사습(大射習)’이라는 기록도 보이고, 1975년 전주대사습놀이가 부활할 당시의 다섯 종목(판소리명창부, 농악, 시조, 무용, 궁도)에 활쏘기가 포함된 것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무튼 기록에 나타난 대사습은 1707년(숙종 33)에 처음 확인된다. 이에 근거한다면 적어도 명칭상 전주대사습놀이는 17세기말이나 18세기 초반에 시작되어 전주대사습놀이가 탄생하는데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되나 현재로서는 이를 증명할 구체적인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대사습은 전통무예와 별개로 조선후기 영조 대를 전후하여 아전들과 한량들에 의해 시작된 판소리 축제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이 판소리 등용문으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가진 제도로 확립된 것은 1864년 제1회 전주부 통인청 주관의 대사습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대원군은 고종 2년(1864) 당시 전라감사에게 “단오절에 관의 주관으로 판소리 명창대회를 해마다 개최하고, 거기서 장원한 명창은 상경케 하라”고 분부하였고, 그 결과 1864년 5월 5일 단오절에 제1회 전주부 통인청 대사습이 개최되었다고 한다.
전주부의 이방은 단오절 몇 달 전에 대사습을 공고하여 각처의 명창을 청해 모이게 하고 전라도의 각 고을 수령에게 초청공문을 발송하며, 전주 성내 성외의 돈냥 있는 유지와 양민에게도 통문을 돌리면서 대방(大方)을 불러 가설무대를 설비하게 하는 등 대사습 대회의 만반의 준비를 당부하였다 한다. 이 시기를 ‘통인청 대사습’이라고 부른 것은 대사습 때 각처에서 모여든 명창들을 통인청사에 기숙시키고 경연장소가 통인청 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사습에서 장원을 하여 대원군의 부름을 받고 상경하여 어전에서 소리를 하였던 명창을 ‘운현궁의 명창’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명예벼슬(가자賈資)을 제수 받고 운현궁에서 일 년 동안 기거하면서 호의호식하고 대접을 받고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1940년 정노식이 저술한 90명의 판소리 명창 열전인 『조선창극사』를 보면, 19세기 초반에 활동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전기8명창들이 대사습에서 활동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19세기 후반기에 활동했던 정춘풍, 김세종, 박만순, 박유전, 이날치, 장자백, 정창업 등 후기8명창들은 주로 대사습을 통해 활동했던 것 같고, 근대5명창들은 대사습을 어린 나이에 참관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고종 원년 1864년 국가적인 행사로 막을 올렸던 전주대사습놀이는 임오군란(1882), 동학혁명(1894), 을미사변(1895) 등 국가적인 대반란으로 인해 열리지 못했던 5차례를 제외하고 35회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 사실인 듯하다. 그리고 1905년 일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전주대사습놀이가 폐지되었고, 이후 70년만인 1975년 전주 지역의 유지들과 국악인들의 노력으로 전주대사습놀이가 부활되었고, 올해 45회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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