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어느철학자의삶'](35)모두가 제 자리를 찾았으면
[연재소설 `어느철학자의삶'](35)모두가 제 자리를 찾았으면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7.0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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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너를 비롯한 동물들은 사악함을 모른다. 단지 본능으로서 자신을 지키려 할 뿐. 자신의 안위와 무관해도 마음만 먹으면 공격성이 유지되는 인간과 달리.
너희가 마지노선에서 공격을 가해 남긴 생채기는 차라리 정직하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부터 비롯한 공격에 따른 상흔은 가히 상상초월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상흔은 절대 아물지 않기 때문이다. 전염성도 강해 진정되기보단 악화일로다. 부조리에 응징하는 사람은 소수이며 소극적이다.

그러나 정의의 반대급부에서 움직이는 다수는 그들의 정의를 앞세우며 치열하게 준비하고, 또 전투를 치른다. 그 치열함이란 협잡, 음해, 선동, 사주 등 인간만이 능한 전술들이다. 사리 분별이 없으면 그들이 친 그물에 포획되어 동조하고 어느새 선동한다.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다. 
타깃 부상. 질투심 발동. 증오심으로 역전. 동조자 물색 및 교감. 명분 설정. 분위기 제고. 화력 충전. 박살. 어떠니 보리야?
‘인간 옆에 푸들’이란 수식어의 정의를 짐작케 하지?
매사에 단정한 품행의 널 보는 것은, 내 자신을 바로잡기에 안성맞춤이지. 염치를 알고, 정도를 실천하고, 허풍을 용납하지 않는 네가 바로 스승이다. 굳이 일성이 필요 없는, 행동하는 양심이 너란 말이다. 그런 네가 나의 언저리에서 한쪽 발을 베개 삼아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있구나. 애석한 마음뿐이다.
급변한 그린의 싸이클로 인해 혼란과 피로가 가중된 너겠지만, 그린의 평안한 잠자리까지 기어이 확인한 뒤에야 너의 리듬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그 누가 ‘인간 옆에 푸들’ 이란 망언을 던질 수 있을까. 
올여름 처음 찾아온 폭염에도 건사하며 날 기다렸을 너. 기다림엔 이골이 났을 법 하지만 유연하게 일요일마다 날 반겨주는 다정함. 그 우직함은 그 어떤 가치와도 맞바꿀 수 없는 영역이다. 티비에선 ‘우직한’ 검찰총장 후보를 검증한다며 우스꽝스런 질문세례를 퍼붓는 진풍경이 이어진다. 누가 누구를 검증하겠다는 것인가. 국민이 검증한다면 또 모를까.
권모술수가 난무한 세태를 반증하고 있다. 이런 난세일수록 국민에 의해 옹립된 이가 여세를 몰고 간다. 성급하게 찾아왔던 폭염의 기세가 한풀 꺾였는지 만물이 차분하다. 공기도 햇살도 바람도 제 자리를 찾은 듯하다. 난 이런 느낌이 좋다. 나도 내 자리를 다시 찾는다. 이해타산으로부터 독립된 오롯이 사색할 수 있는 이 자리. 정리한 생각들을 노트북에 담아낸다. 나의 일상에서 부가가치 갑인 행위라 볼 수 있다.
‘벌써 점심때야!’ 보리의 미간이 약간 접힌 것에서도 그의 니즈를 읽을 수 있다. “오늘 점심은 네 취향과는 거리가 있을 텐데. 청량고추와 어우러진 시원한 바지락국이 생각난 참이거든”
청량고추 몇 조각이 존재감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 바지락 국을 먹고 있자니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현관 밖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에 보리는 관성적으로 ‘으르렁’ 한번 내지르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식탁 위를 떠나지 않는다. 영혼 없는 외침일 뿐이다. “그래, 너도 네 자리를 찾았구나!” /조정란(인문학서점 조지오웰의 혜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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