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의고장,김제이야기](49)수탈을 위한 기획, 김제 백구 부용
[지평선의고장,김제이야기](49)수탈을 위한 기획, 김제 백구 부용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7.1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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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김제 만경평야는 강화된 수리시설의 힘으로 쌀과 돈이 넘쳐흘러 이를 일제 경제력으로 수렴하기 위한 효과적 거점 건설, 곧 소규모라도 계획도시가 요구되었다. 그래서 호남선 부용역을 중심으로 각종 기반시설 및 생산시설을 겸비하여 이른바 역세권을 조성하였는데, 부용역과 백구금융조합, 오오쓰미 도정공장의 영화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하였다.
부용역과 역세권은 1914년 1월 1일 영업 개시 후 1980년대 중후반까지 일제강점기 호남 쌀 수탈과 뒤이은 대한민국 고도성장기의 농촌의 도시부양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로 부용역을 중심으로 상당부분 잔존하는 일제가옥의 모습이 여전히 당시를 증언한다.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거점을 짚어 수탈을 위한 계획도시 백구 부용의 옛 모습을 재구성 해보자. 

부용역에서 중앙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50m 진행 후, 북쪽으로 약100m 지점에 등록문화재 제186호 ‘김제 구 백구 금융조합’이 위치한다. 지방금융조합은 겉으로는 신용조합임을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총독부가 직접 통제하며 농업자금 대부, 농산물 위탁판매, 종자·비료·농구 대여업무 추진 등을 통해 농촌을 식민지경제로 편입 종속시키는 말단기관이었다.
그리고 다시 중앙도로로 돌아오면 진행방향 왼쪽에 대지 4,136㎡의 일명, 오오쓰미 도정공장이 있다. 해방 후 부용 혹은 월봉도정공장으로 불린 이 공장은 일제강점기 큐슈(九州) 시코쿠(四國) 출신 지주 오오쓰미(大隅悅藏)가 설립 운영하였다. 오오쓰미는 1934년 발간된 『제1회 조선곡물협회연합회대회기념』기념지에 부용곡물조합장으로 등장한다. 
오오쓰미 도정공장은 정부 양곡 도정공장의 역할을 하며 인근 백산면 도정미까지 관할하며 정미기 6대, 보리정맥기가 20대를 운영하며 연간 7만 가마니를 도정하였고, 직원은 20명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김제 일대의 벼는 모두 오오쓰미 도정공장을 거쳐 나간다는 말이 전하나, 출처는 찾지 못했다. 다만 기념지에 실린 조합장 소개와 도정공장의 사진을 통해 당시의 규모를 어림짐작한다. 
지난 부용 현장조사시 최경식선생 구술에 의하면 공장의 맞은편 중앙도로 동쪽 60m 지점에 주재소가 위치했고, 우체국까지 갖추었다고 한다. 교통(호남선 ․ 전군가도)-도정공장–금융–치안-통신까지 두루 갖춘 계획도시 부용은 철저하게 쌀 수탈에 초점이 맞추어 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부용역 역세권의 번영은 앞선 연재에서 기술한 대로 해방 이후 고도성장기 내내 지속되었다. 
2019년 우리는 자력으로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열었다. 역사를 과장하여 분칠할 것도 어두운 역사라고 지울 필요도 없다. 그 모든 역사적 우여곡절이 현재의 우리다. 그런 맥락에서 식민지시대의 제 유산들은 항구적 자주독립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은 어떤가? 초점을 달리하자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페루 리마, 그라바상, 파리마리보, 말레카 등, 식민지유산들이 상당하다. 역사에 대한 직시와 기억의 장으로 부용역과 김제역 주변을 생각해 본다.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학예연구사 정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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