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은 2017부터 김제 벽골제와 관련하여 부량주민, 공무원, 동진동우회 등 관련자들의 근대시기 세대기억을 정리하는 인문학적 자료수집을 추진 중이다. 이 사업을 통해 박물관 현장조사 사업이 본격화하자, 지역 내외의 조사 요청이 이어져 우리 지역의 보석같은 인물과 이야기들이 박물관으로 모이고 있다. 

그 중 오늘은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상리마을에 위치한 장영서사(藏英書社)의 빛나는 전통을 후학인 김제향교 前 전교 윤주남선생의 구술을 통해 조명하고자 한다. 장영서사 개창자 송암(松菴) 배인술선생(裵仁述, 1899~1979)은 가난한 청년기인 20세 즈음, 우연히 상리 탁씨댁 글방선생인 용강 장용근선생에 눈에 띄어 댓가 없는 공부를 권면 받았다. 

장용근선생은 주경야독을 권하시며 ‘사흘만 나와 보소’라는 여지로 시작하여 배인술선생을 한문고전과 영농치부의 길로 이끌었다. 개똥을 주워 퇴비로 묵히는 과정에서 여산 송씨 부자의 논을 얻어 자립의 기반을 삼았고, 남포 부자 인보증을 통해 논을 사들여 천석군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는데, 이 모든 과정에 장용근선생의 가르침이 있었다고 한다. 

장선생 문하에게 글공부로 눈뜨고 10년이 경과하여 선생 나이 30세 즈음, 돈을 벌기 시작하자 ‘공부 못 헌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뜻을 세우고 스승인 장용근선생을 당신 집으로 모시고 무료로 가르치는 ‘상리서당’을 열었다. ‘돈 안 받고 글 갈친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학생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공부하였다. 

1960년 7월 1일 상리서당을 12칸으로 확장하고 장영서사로 현액, 두필지 반 서당답을 내어놓아 선생 사례금과 서당운영 공동경비로 사용, 무료 운영의 자립구조를 갖춘 교육공동체를 열었다. 학생 수가 늘었을 때는 안채 부속건물과 안동네 사랑방까지 서사가 확장되는데, 한글순화운동으로 서당이 쇠락할 때 선생의 신념으로 장영서사가 홀로 독보적이었다 한다. 

김제 용지 청운초 재학생이 2~30명일 때 장영서사의 학생은 127명이었다. 15명 정도 7 ~ 8개 반이 급장의 지도 하에 운영되었고, 여학생 반은 따로 안마을 사랑방을 열어 지도하였다. 장영서사는 배우고자하는 이에게 남녀노소 없이 열려 있었으며, 장영서사에서 수학하여 김제 만경 금구 세개 향교의 전교와 장수 향교 전교 등, 많은 유학 입문자들이 배출되었다. 

장영서사에서는 지역내외의 유명선생이 함께 하였다. 동양철학 정운호선생, 경서에 송성기선생, 글씨와 시에 능했던 최운선생, 고명한 광주 서암 김희진선생까지 가르치는 기쁨을 아는 스승과 배우고자 하는 학생, 그리고 학부형의 진정이 가득했다. 

장영근선생이 배인술선생을 댓가 없이 발굴 육성하고 배인술선생이 스승의 신념을 이어 장영서사를 개창, 오늘날 윤주남선생에 이르고 있다. 현재 우리가 공부 중 누락한 ‘배움의 기쁨’이 실존한 교육공동체, ‘장영서사’에서 빛나는 신념의 연쇄가 이와 같다.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학예연구사 정윤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