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련과 미산서당
김도련과 미산서당
  • 이종근(문화교육부장)
  • 승인 2019.08.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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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정윤성 화백
/삽화=정윤성 화백

 

최근에 발간한 고산면지에 김도련, 오형선, 구완희, 김길현, 구홍조, 이존식, 구시희 등 완주 고산의 서당이 소개됐다. 김도련서당은 율곡리3구 바깥밤실(외율)에 있었으며, 이승철선생이 그와 동문수학했다. 그의 제자인 이존한(李存韓)선생은 한국화가로 호산서원 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5년 여동안 명심보감, 통감 등을 배웠다고 했다.
국민대 중문학과교수로 일한 김도련(金都練, 1933-2012년)은 1933년 완주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한문학 대가 반열에 올랐다. 그의 자는 미지(美之), 호가 청람(靑嵐)이며, 본관은 고령이다. 어린 시절 한학자인 부친 김재영에게서 소학, 명심보감 등을 배웠다. 현산 이현규, 봉림 오형선, 신암 김정만 선생 등에게서 한학의 기초를 익혔다. 그는 율곡리 계성학교를 다니다가 고산초등학교 5학년에 편입 졸업(35회)했다. 17세 때인 1950년 주경야독하며 검정고시에 합격해 완주중학교에 편입했지만, 같은 해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공부의 꿈을 접었다. 이로써 그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으로 남았다.

정민 한양대 교수,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등이 그의 문하생이다. 평소 그를 '젊은 시절 구세주'라 불렀던 정민 교수는 스승의 묘갈명(墓碣銘·묘비에 새기는 고인의 행적과 인적 사항)을 헌사했다. 그는 묘비명에 '소학교 졸업의 학력에도 이례로 발탁되어 민족문화추진회와 국민대 교수를 역임한 뒤 정년퇴임의 영예를 맞았으니 보기 드문 일'이라고 했다. 정교수는 고인과 함께 '꽃 피자 어데선가 바람 불어와' '통감절요' 번역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김선생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1960년 28세에 미산(美山)서당을 개설, 한문 강의를 시작했다. 미산이란 자(美之)와 관련되며, 지명(高山)이 합쳐져 만든 이름이다. 그는 1968년 국사편찬위원회 교서원에 합격한 후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강의했으며,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을 지냈다. 1982년부터 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97년에 정년퇴직했다. ‘주주금석 논어’는 선생이 “만 냥짜리 논어”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뒤 펴낸 책으로, 1990년 출간 당시 “13세기 성리학 수준에서 맴돌던 한국 유학의 ‘논어’ 이해를 새롭게 한 획기적인 저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한국역대문선'을 편집하면서 을축년(1985년) 입춘에 청람(靑嵐)서실에서 쓴 서문을 통해 “한국한문학 가운데 문학성이 뛰어난 산문 작품을 각 시대별로 선별했다”면서 “그러나 처음 시도되는 작업이므로 선배동학의 따가운 질정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청람'이란 호처럼 화창하게 갠 날 아른거리는 아지랭이처럼 살다갔다. 그를 기념하는 사업을 하나라도 꾸려보면 어떨까. 고산에 품격 높은 서당 하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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