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향수가 되어가는 소음
이제는 향수가 되어가는 소음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9.0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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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펼쳐진 장터의 시끄러움에 눈살이 찌푸려져도
그 소음 때문에 즐거움도 넘친다는 것”
김 영 완-환경보전협회 소음진동 전담교수
김 영 완-환경보전협회 소음진동 전담교수

도시의 소리라 하면 소음이 그 대표격일 것이다. 교통량이 많은 도로에서는 소음이 끊이지 않고, 낮게 윙윙거리는 저주파수음이 도로 노면을 진동시켜 보행로까지 전달된다. 마치 도시 자체가 스피커 위에 놓여 흔들리는 느낌이다. 소리는 늘 사람 곁에 머물러 주위를 맴돌며, 우리는 평생 그 소리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마냥 귀를 성가시게 하는 귀찮은 소리, 소음이라서 멀리 외면해버리기에는 이미 삶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아 버렸다.
우리 주변의 생활 소음은 어떨까. 실내에 들어가면 에어콘이나 환풍기, 냉장고의 낮게 깔린 모터음이 늘 울리지만 소음으로 여기지 않는 바람소리나 파도소리 같은 자연음으로 느낀다면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무실과 같은 공간에서는 너무 조용한 것 보다는 적당한 소음이 있을 때 일의 능률이 오른다고 한다. 어느 정도에서부터 소음으로 인식하는가는 개인차나 주변의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화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보편적인 기준을 취하고 있다.

중세의 도시에서는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는 거리까지가 영역 구획의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소리가 도달하는 범위, 정보가 전해지는 범위가 커뮤니케이션의 기준이 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부족이나 동물들에게도 소리가 도달되는 거리까지를 활동영역으로 정한다고 한다. 청각의 도달 정도라는 동물적 본능에 근거한 집단의 영역 결정 방식이다. 성악가들이 크게 잘 울려퍼지는 목소리로 구사하는 이른바 벨칸토 창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며,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들이 각각의 형편에 따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고 다듬어온 결과물로 세련된 음악 문화를 구축하여 왔다.
상가가 즐비한 도심의 거리 곳곳에서는 광고음을 비롯하여 다양한 소음들이 쉴 세 없이 울려 퍼진다. 그러나 이런 소리들은 오히려 생동감있는 도시 생활의 표정이 아닐 수 없다. 번화가를 벗어난 주거지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선거철에 등장하는 무개차의 홍보소리나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서 울리는 안내방송 등을 제외하면 예전 같지 않게 거리의 소리들은 자취를 많이 감추었다.
도시확장과 인구감소 탓도 있겠으나, 창 밖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오히려 집 안으로 다 들어갔는지 모른다. 그렇다. 그 많던 소리들이 다양한 미디어로부터 발신되는 광고와 정보신호들로 옷을 바꿔 입었다. 전파가 도달되는 범위로 새로운 영역을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소리의 통로가 이어폰으로 대체되고 있으니, 입과 귀를 통해 공기 중으로 전달되던 커뮤니케이션의 통로가 전파 매체로 바뀌고 영역을 설정하던 방식도 바뀌게 된 것이다. 소리를 느끼고 반응하는 방식도 전파영역으로 설정된 삶의 방식과 함께 자연스럽게 바뀌어갈 것이다. 듣기 싫고 성가신 소리(騷音)라는 관념도 바뀌게 될 게 분명하다.
아직은 시끌벅적한 소리가 흘러나오며 인파와 함께 어우러지는 따뜻한 도시의 풍경들이 그나마 여기저기 남아 있어서 조금 위안이 된다. 가끔씩 산책하는 도시 외곽의 천변길만 가보더라도 지난여름 한창 울어대던 매미며 풀벌레소리로 가득하고, 시장터 청년몰은 생기 넘치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여름 내내 조용하던 가을 문턱의 문화 광장에 모처럼 펼쳐진 장터는 시끄러움에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이지만, 그 소음 때문에 즐거움도 넘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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