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임금과 율곡의 효사상
순 임금과 율곡의 효사상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10.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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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임금 효심에 짐승들도 감동
율곡은 5세 때 신사임당이 위독하자 사당에 들어가 기도"
이 존 한-한국화가, 호산서원 원장
이 존 한-한국화가, 호산서원 원장

옛말에 이르기를 죄가 3,000가지라도 불효보다 더한 죄가 없고 불효가 3,000가지라도 부모 앞에 죽는 것보다 더 큰 불효가 없다고 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모에 대한 불효는 가장 무거운 죄가 된다. 우(虞) 나라의 순(舜) 임금을 대효(大孝)라고 한다. 세상에 이런 일을 해 낼수 있는 사람이 중원 국민에서는 없었던 것이다.
몹쓸 사람 고수(瞽叟)의 아들이 순임금이었고 보면 “그 아비의 그 아들이다”는 말이 맞지 않게 된다. 순은 아버지로부터 가해오는 모든 잔혹한 행위를 모두 참아가면서 아버지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여 그릇됨을 깨우치도록 노력한 결과 마침내 아버지도 아들의 효성에 감동되어 옳은 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순임금의 아버지는 사람을 때려서 죽도록 만드는 일을 즐겨하는 사람이었다. 밤이 되면 순은 아버지 뒤를 따르면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의 시체를 짊어지고 그 시체를 묻어주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을 주변에서 고수대 영감이라고 말하는 것도 순임금의 아비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어찌 보면 부전자전이 맞지 아니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미련하고 아우 상(象)은 오만하였으나 지극한 효성으로 화합하게 하였다.

처음에 역산(歷山)에서 농사지을 적에 밭에 가서 하늘과 부모에게 울부짖어 허물을 자기에 돌리며 자식이 할 일을 다 하고 아버지를 모시되 공경하고 조심하니 그 아버지도 진심으로 이를 믿고 온순해졌다.
맹자가 말하기를 순임금이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극진히 하자 그 아버지는 기뻐하게 되었고 천하가 감화되었으며 천하의 아버지와 아들이 되는 도리가 정하여졌으니 이를 큰 효도라 한다 하였다.
`순임금의 거룩한 덕 높고도 높아/부모마음 불편함을 괴로워했네/자식직분 다하여 봉양 힘쓰며/하늘에 부르짖어 자기만을 꾸짖었네/효성이 감동하여 부모 마음에 들게 되니/기뻐하자 덕화가 깊어짐을 알겠네/당시에만 큰 효자라 일컬었을 뿐 아니라/ 청사에 지금 까지 전해져 오네'
순의 아버지 고수는 재취장가를 들어 상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그들 즉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우는 한패가 되어 순을 죽이려고 획책을 했다. 그러나 순은 부모의 명령을 받들어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역산 밭에 나가 농사짓기에만 전력을 기울이면서 남모르게 하늘을 향해 자신을 책망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랬더니 어느날 기상천외의 일이 일어났다. 참새때가 몰려오더니 입으로 풀을 뽑고 땅을 쪼아 밭을 말끔히 김매준다. 뿐만 아니라 산속에서 코끼리떼가 나오더니 쟁기를 잡아 당겨 순이 갈려던 밭을 모조리 갈아 차우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순의 효성에 짐승들까지도 감동하는데 사람의 감회가 없었으랴. 권보의「효행록」에서도 코끼리가 밭을 갈아주다 말하고 있고 요순이라면 중국 고대 성군의 표본처럼 여기고 있다.
세종대왕은 민중교화의 방법으로 삼강행실도의 그림에는 당시 유명한 화가인 안견, 최경, 안귀생 등이 참여한 그림들은 조선시대 판화의 삼강오륜 계통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의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임종의 마지막에서 손가락을 자르고 살을 베어 어버이의 병을 고친 일은 오늘날의 혈액주사와 같은 효험 때문이었다.
퇴계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자(慈)이고 자녀가 부모를 잘 받드는 것이 효이다. 우리가 부모를 섬기는 까닭은 자신의 신체를 부모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부모의 부모인 먼 조상까지 이어져 만물을 낳은 천지(天地)를 섬기는 이유가 된다. 효도가 조상 및 경천사상(敬天思想)과 결합 하는 것이다. 퇴계는 노모가 서울생활을 싫어한다는 이유 때문에 왕의 부름을 거절하고 벼슬을 포기했던 일화가 있다. 이 말은 부모를 극진히 섬겼다는 뜻이다.
율곡 역시 정가(正家)를 저술하면서 효경(孝敬)의 내용을 제일 첫 번째로 지적한 것은 가정에서 부모에 대한 효행이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율곡은 5세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위독하게 되자 외조부의 사당에 들어가서 제발 어머님 병환이 쾌차하시길 조상님께 비나이다라고 기도 했다고 한다. 또 11세 때 아버지 이원수의 병이 위독하게 되자 서슴치 않고 팔뚝의 피를 빼어 아버지의 입에 피를 넣어 드렸고 후원에 있는 조상의 사당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율곡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 이원수는 자녀 7남매를 두었지마는 혼자 지낼 수 없어 후취 부인으로 권씨를 맞았으나 성격이 패악스러웠다.〔율곡전서〕별집에 내용을 보면 평소에 비위에 거슬리면 빈독에 머리를 쳐받고 엉엉 울어서 이웃 사람들까지 놀라게 했고 걸핏하면 노끈으로 목을 매어 자살하는 시늉까지 해 집안 사람들을 당황토록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율곡 형제는 패악한 계모에게 극진히 효를 다했다.
끝으로 자녀사랑 박꽃처럼 순박하신 부모님 마음 샘 속에 물 솟듯이 마냥 그립습니다. 이처럼 조상들의 충효사상을 본받아 각자의 위치에서 실행한다면 인성이 바로 서는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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