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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재발견]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실천수단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0월 22일 14시30분

지난 2004년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을 시작으로 현재 우리나라는 59개국 21건의 FTA를 체결했다. FTA는 국가 간에 상품/서비스 교역에 대한 관세 및 무역장벽을 철폐하고 배타적인 무역특혜를 서로 부여하는 협정이다. 이러한 협정 체결에 따라 우리나라 제조업 기업들은 안정적인 해외시장을 확보하게 되어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우리 제조업이 이렇게 FTA의 혜택을 누릴 때, 우리 농어업은 FTA의 그늘에서 시름을 해왔다. 관세 및 무역장벽이 없어짐에 따라 많은 수입품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우리 농어민들은 값싼 수입 농수산물로 인해 생존권까지 위협을 받게 되었다. 농어업의 희생을 기반으로 제조업이 크게 성장한 것이다.

FTA 체결로 초래된 농어업의 희생을 보상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 바로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이다. 농어민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농어촌과 상생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법률이 제정됐다.

그러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입장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FTA 체결 시 매년 1,000억 원씩 10년간 1조 원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던 기업들의 기금 출연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일몰 시한이 2년 남은 지금 출연액은 전체 목표액의 25%의 수준에 불과하다. 더구나 현재까지 모금한 모금액 대다수는 공공기관에서 출연했으며, 민간기업이 출연한 실적은 모금액의 30% 수준으로 매우 저조한 상태다.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을 비롯해 10위 그룹까지 지난 8년간의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총 출연액은 각 그룹의 작년도 매출액과 비교하면 0.01%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식품부는 단순히 농식품 수출실적만을 내세우면서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작년 농림축수산물의 무역적자는 50조 원에 달했다. FTA 체결이 농어업에 미치는 악영향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은 농어민의 희생으로 자신들이 성장해 왔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정부도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출연임을 이유로 사실상 대기업의 외면을 방조한다.

그나마 국회의원들이 유일하게 나서서 대기업들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매년 국정감사 때가 되면 국회의원들이 대기업별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 현황을 점검하고 더 출연할 의지가 있는지를 점검해 왔다. 출연 의지가 미흡하다고 판단되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총수가 ‘농어촌상생협력기금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왜 출연에 소극적인지’ 등을 기업 총수에게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기도 한다.

금년 국정감사에서는 필자가 주축이 되어 대기업별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출연 현황을 점검했다. 10대 재벌기업 총수들을 잠재적인 증인으로 상정해 놓고 국회 협력관들을 통해 출연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사유와 추가적인 출연 가능성 등을 확인하고 기업총수의 증인 출석에 대해 불가피성도 검토했다. 그 결과 지난해 기금 출연액보다 30% 정도 더 증액하겠다는 의사를 통보받았다.

이러한 국회의 노력을 국회의원의 갑질로 비판하는 시각도 있음을 잘 안다. 물론 기업들이 자신들의 총수가 국회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을 막아보기 위해서 언론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다소의 비난을 받아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농어민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법률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르게 작동되지 않는다면, 또 정부가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다면 국회의원이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다. 국회마저 나서지 않는다면 FTA 체결로 희생을 강요받은 농어민은 누가 보호할 수 있겠는가?

농어민의 희생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정작 농어민과의 상생 협력을 도외시한다면, 국회라도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사명감만으로 기금의 출연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금 출연의 시한이 이제 2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FTA 체결로 이득을 본 기업들이 자신의 출연기대치를 제대로 출연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 채찍과 당근을 입법화하는 등 제도적 정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먼저 악화일로에 있는 농어민의 어려운 여건을 고려해 기금 출연액 목표를 현재 1조 원에서 2조 원으로 늘리고 조성시한도 10년 연장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출연을 유인할 수 있도록 출연액의 법인세 공제 비율을 현행 10%에서 20% 이상으로 상향하고, 기업 간의 출연 목표액 설정이 가능하도록 농식품부나 협력 재단에 기업별 출연 목표치를 통보할 수 있는 권능도 규범화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출연액이 목표액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정부가 부족액을 예산으로 충당하도록 의무화할 필요도 있다.

지금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는다면 훗날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 농어업이 고사(枯死)하고 난 뒤에야 다시 살리겠다고 물을 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FTA로 수혜를 입은 대기업들이 목마른 농어민들에게 나누어 줄 물을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라는 주전자에 먼저 가득히 채워야 한다.

이것이 민생이고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실천이다.

/윤준병(정읍교창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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