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남원시 부운, 덕동마을 이야기를 동화로 풀어내다

-이성아, ‘산골 소년 첫사랑 분투기’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10월 24일 14시10분

'산골 소년 첫사랑 분투기(글쓴이 이성아. 그린이 오치근, 도서출판 기역)'는 지리산 국립공원 안 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 행정구역상 남원시에 속하는 부운, 덕동마을 이야기를 모두가 함께 읽는 동화로 풀어낸 책이다.

'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가 이성아 작가와 오치근 그림책작가가 피워낸 숲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겹다. 도시화와 거리가 먼 숲그늘 깃들 사람들이 오래 간직해온 잔잔한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호랑이를 호랑이라 부르지 못하고 그저 ‘눈 큰 놈’이라 표현하며 조심스럽게 살아온 이들이 경건한 삶이, 초등학교 어린 친구들의 시선에서 낮게 깊게 ‘산골’ 이야기로 피어난다.

말괄량이 봉숙이 네는 대대로 목기를 만드는 일을 가업으로 해왔다. 그와 아버지가 나누는 이야기를 옮긴다. 작가가 특히 주목하는 대목이기도 하고, 지리산 마을 사람들이 견지해온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나도 할아버지, 아부지로부터 배운 거란다. 비록 베어내고 쓰러진 나무지만 그것에도 영이 깃들어 있다고 하셨제. 그래서 부정한 마음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셨단다. 별 것 아닌 그릇일 뿐이다, 요렇게 하찮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셨제”

봉숙이와 판수는 또래 친구로 마을 아래 작은 초등학교에 다니며 지내는 서로 ‘내외’하는 한편으로 단짝인 친구 사이다.

봉숙이가 ‘똥통에 빠진 사건’이 소문으로 퍼지고 그 진원지로 판수가 봉숙에게 지목되면서 서로 관계에 긴장이 흐르기도 한다.

깊은 산과 계곡은 이 또래 친구들에게 멋드러진 놀이터이며 배움터이다. 난로에서 타고난 재를 교실 나무바닥 사이로 버리다가 작은 화재가 난 사연, 새알을 빼먹고 그 자리에 나무로 깎은 가짜 새알을 넣어 구렁이를 잡은 이야기며, 뱀을 팔고 라면을 사서 계곡에서 몰래 끓여 먹는 맛스런 이야기하며 지금은 기억에 날락말락 누에 치는 이야기에 얽힌 빨간 애나멜 구두 이야기, 담배밭의 타는 목마름과 삼을 수확하고 찌는 고역의 현장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 일과 일 사이에 산골 아이들은 계곡 낚시며 물고기 꼬치, 전깃불 밝히는 날의 풍경과 텔레비전 켜지는 에피소드가 그득하다.

산골마을에 죽음을 바라보는 상여 나가는 풍경이며 곶감 말리는, 토끼몰이하는 풍경이 사는 일과 죽어가는 일 사이를 꼼꼼 채우고 있다.

봉숙이네가 떠나지 않게 도우려 뱀잡이를 하다 판수는 간첩으로 오인돼 지서에 갇히며 남과 북으로 싸우며 마을 사람들이 이편도 저편도 아니며 이편이기도 저편이기도 했던 뼈아픈 역사가 마을 사람들 기억으로 소환되기도 한다.

봉속이 네는 결국 국립공원 지정 이후 벌채가 금지되면서 목기 일을 그만두고 마을을 떠나게 되고 겨울 지나 봄 소식이 피어나는 무렵, 이사 가는 봉숙을 친구 판수가 쫓아가면서 동화는 마무리된다.

주인공 소년소녀 봉숙이는, 판수는 50여 년 지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 마음 아련하게 한켠을 차지하고 고향을 그리는 사람들 안으로 안으로 땅울림 울리고 있을까? 첫사랑, 하고 떠올리면 가슴설레는 기억을 가진 모두를 이 이야기로 초대한다. 사랑 밖에서 우리들의 분투는 여전하겠지만.

이성아작가는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에 단편 '미오의 나라'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집으로 '태풍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요', '절정', '유대인극장'이 있으며 청소년 단편소설 '엄마는 괜찮을까', '막다른 골목에서', '고양이의 안부를 묻다'와 동화 '누가 뭐래도 우리 언니', '작은 풀씨가 꾸는 꿈, 숲', '까치전쟁'과 평전 '최후의 아파치추장, 제로니모', '벌레 들'(공저) 등이 있다.

오치근 작가와 협업으로 출판한 '나는 강, 강은 나'도 있다. 지금은 지리산 자락에서 나무와 바람과 구름을 벗 삼아 살고 있다.

오치근은 1971년 지리산이 품은 남원 운봉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한 후, 백석 시인 12편 동화시를 만나면서 그림책에 그림을 그리게 됏다. 지금은 지리산과 섬진강이 어우러진 구례에 살면서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다. 전국 도서관, 학교에서 그림책 관련 프로그램과 강연 활동도 맹렬하다. 그린 책으로 '혹등고래, 생명 무늬로 피어요', '산골총각', '오징어와 검복', '섬진강 그림여행', 지리산 그림여행', '초록 비 내리 는 여행' 등이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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