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메아리] 한해를 보내며

콩나물 한 봉지에 관하여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2월 08일 13시38분

벌써 한 해가 저문다. 엊그제 겨울 내복을 개어 옷장에 넣은 것 같은데, 벌써 다시 겨울옷을 입고 한해를 보내는 시간에 서 있는 나를 본다.

한 해 동안 나라 안팎으로 별로 기억할 만한 좋은 일들은 기억나는 게 거의 없고, 한강 소설가의 노벨상 수장 소식 하나가 그래도 올해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나라 정치 분야는 마판엔 엉뚱한 계엄령 정국에 처하게 되었고, 나라 살림 경제는 작년에 세운 올해 예산이 6월에 바닥이 나서 7월부터는 차입예산으로 빚 살림으로 나라 살림을 꾸려오고 있다. 어느 한 분야도 나아졌다는 소식은 거의 듣지를 못하고, 외교는 미·일중심의 반쪽외교, 사회는 의료대란을 가져와 대형 병원들이 마이너스카드로 살림을 꾸려가는 상황이 되고, 대북정책은 극단적인 대립 국면을 조장하여 다시 첨예한 대립 상태로 대치하고 있고, 자영업자 폐업률이 평균 10%를 훨씬 넘게 되고, 특히 우리 전북은 20%에 이르러 전국 최고 증가율을 보이고 있어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주목되고 있다. 2020년 우리나라 GDP 순위는 세계 10위였는데, 올해 2024년 GDP 순위는 세계 14위로 4단계나 떨어져 있다.

아침저녁으로, 때로는 한낮에, 전주 모래내시장을 산책하며 늘 그날그날의 우리나라 서민생활을 지켜보며 한해가 간다. 그래도 한 가지 믿는 것 한 가지는 아직도 콩나물은 한 봉지에 천 원, 순두부도 한 봉지에 천 원, 두부는 한 모에 이천 원이라는 위로이다. 콩나물 한 봉지면 혼자서는 적어도 며칠을 먹고, 순두부 한 봉지를 사도 혼자서는 며칠을 먹을 수 있다.

우리 서민들이 그나마 아직 버티고 살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기초생활을 유지해주는 콩나물 순두부 값이 천 원짜리 한 장으로 푸짐한 한 봉지를 살 수가 있고, 그것으로 며칠은 버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루 종일 제일 붐비는 곳은 바로 이 콩나물 두부를 파는 집이다.

우리의 기초생활은 이렇게 유지하고 산다고 치자. 그런데,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가 사는 그 어느 골목길을 걸어 다녀도 아기 울음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주 모래내시장에서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어쩌다 한 번씩,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 손을 잡고 현장학습을 나올 때이다. 그럴 때면 시장 사람들이 그 아이들을 보는 기쁨으로 다들 난리가 난다. 그러나 골목길로 접어들면, 한 해 동안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물론 노는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내가 사는 동네는 이미 죽어 있다.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꼴을 가만히 둘러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가 이제는 미래가 점점 어두워지는 나라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우선 가장 걱정이 되는 심각한 것이 아이들 소리가 점점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 인근 학교로 가서 아이들 노는 모습들을 혼자 우두커니 한참 동안 바라보다 올 때가 있다. 그렇게라도 우리나라 아이들이 노는 모습들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올해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이 인구 급감 문제에 대한 그 어떤 대안들도 내놓고 추진하는 걸 보지 못하고 한 해가 저문다. 한 나라 국민들의 삶은 오로지 ‘정쟁’만을 일삼는 정치가 지배할 때 가장 무너지기 쉽다. 그런 시대가 가장 위험한 것은 그런 ‘정쟁’ 속에서는 나라 국민들의 삶은 그 정쟁의 뒷전으로 늘 밀려나게 되기 때문이다.

2024년 갑진년 한 해가 이제 거의 다 저물어가고 있다. 어떻게 한 해가 갔는지 모르게 올해에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저무는 한 해를 보내며, 나는 이렇게 빌어본다. 모든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젠 각자 정치인이라는 허울 좋은 허상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이 이 나라 모래내시장 콩나물 순두붓집의 콩나물 한 봉지, 순두부 한 봉지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한 해의 마무리가 되라고. /김익두(사단밥인 민족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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