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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블루스가 있는 새벽

박경숙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2월 20일 12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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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싸인 도시의 새벽은 투명한 블루에 가깝고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만 그로테스크할 뿐 하늘과 경계가 없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밝힌다. 대전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짙푸른 어둠을 뚫고 차 오디오에서‘Blue in Green’이 흐른다. Blue in Green은 미국을 대표하는 재즈 연주가인 마일즈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의 명곡 중 하나다. 새벽에 어울리지 않는 정통 재즈…. 그것도 블루스를 듣고 있으니 기분이 모호해진다. 같은 음악이라도 시간이나 장소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른 걸까. 자욱한 안개 속에서 혼자 듣는 마일즈의 트럼펫 연주는 차가운 금속성의 날카로움을 전해주고, 감미로운 콜트레인의 색소폰 소리는 곧 사라져가는 석양의 낙조가 안타까운 듯 애잔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마일즈와 콜트레인의 화음이 얽히고설키면서 부드럽게 어루만지다가도 이내 작은 기척에도 포르르 날아오르는 나약한 새 떼처럼 불안전하다.

해가 바뀌고 열두 달을 벽에 걸었지만, 어느덧 인생의 황금기인 봄과 여름을 보냈다. 이제는 몸과 더불어 생의 가을을 걷고 있다. 봄여름과 다르게 가을의 정조는 사유와 명상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한 나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여유가 많지 않다. 아직도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조율과 나태한 습성…. 생화生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그물처럼 빽빽한 바깥일로 진이 빠지다 보면 말라비틀어진 식빵처럼 몸과 마음이 푸석해지곤 한다.

소설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로먼은 정직하고 성실한 가장이다. 삼십 년 넘게 세일즈로 잔뼈가 굵은 그는 작지만 탄탄한 회사를 갖는 꿈을 키우며 살아간다. 상냥하고 어여쁜 아내와 두 아들을 둔 월리는 어쩌면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춘 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점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성과급은 줄어들고, 다니던 회사에서마저 해고당하고 만다. 총명했던 두 아들은 타락하고 가정의 행복과 희망까지 잃은 윌리는 사랑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보험금을 남기려 자살을 선택한다. Blue, 신비로운 블루는 우울의 색채이다. Green은 싱그러운 나뭇잎을 연상케 하니, Blue in Green은 우울한 현대인의 삶 또는 되돌아갈 수 없는 인생을 뜻하는 걸까. 아직도 걸어가야 할 길은 끝없이 멀기만 한데 필연처럼 양 날개를 짓누르는 삶의 더께….

자동차 시동을 끄고, 불투명한 차창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본다. 수많은 별이 한꺼번에 내게로 쏟아지는 듯하다. 새벽녘 무인고도의 적막감 때문일까. 문득 산사의 수도승이 된 듯하다. 묵언 수행자인 그들은 자연과 대화하고 우주를 읽는다 하지. 길옆의 나무에 물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을 기억하느냐’고…. 나무가 대답한다. ‘내 곁의 세월이 숲이 되어, 이렇게 다른 나무들과 어우러져 있으니 외롭지 않다’고. 내 부족함도 내 삶의 역사와 추억의 편린片鱗이 되어 내 나이테 속에 스며들겠지…. 다행일까. 재즈는 클래식과 다르게 일정한 패턴이 없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도, 앞의 연주를 기억할 필요도 없다. 연주자에 따라 재해석되고 중단된 막간조차 연주 속에 포함하는 재즈. 블루스가 있어 좋은 새벽이다.



박경숙 수필가는



전주 출생. 2016년'계간수필'에서 수필 추천 완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집 '미용실에 가는 여자' 발간

2021년 전북수필문학상 수상 2022년 산호문학상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역임, 현재 전북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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