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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꽃심의 고장이다

[원지의 문(文)·화(畵) 스케치] <35> 전주 최명희문학관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4월 23일 14시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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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명희(1947∼1998)는 는 여러 번 전주를 '꽃심의 땅'으로 불렀다. 꽃의 심(心),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운을 다해 '꼿꼿이' 버텨온 땅이 전주다. 동학혁명의 중심지역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자치기구인 집강소가 설치되었던, 자유와 평등의 '꽃'이 한때 피었던 곳이다.

전주엔 작가 최명희(1947-1998)의 생가 터와 그의 문학 혼이 올곧게 녹아 있는 최명희문학관이 있으며, ‘최명희길’도 있다.

동학혁명기념관에서 경기전 뒷담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의 한 중간에 있는 생가터와 그곳에서 최명희문학관을 잇는 ‘ㄴ’자 형 골목이 ‘최명희길’이다. 생가 터 표지석을 모서리에 두고, 위로 난 길의 끝에 동학혁명기념관이 있고, 옆으로 난 길의 끝에 최명희문학관이 있는 셈이다.

최명희문학관은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의 숭고한 문학정신을 기리고 계승 발전시키고자 2006년 4월 25일 문을 열었다.

‘그것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윗대로 이어지는 분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캐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서 전주천을 거닐어봅니다. ‘사람들은, 여름밤이면 이 냇기슭 천변으로 몰려나왔다. (중략) 용소의 위쪽에서는 남자들이 자멱질을 하였다. 여자들의 자리는 용소 아래쪽이었다. 달이 없는 밤에는, 수면 위에 미끄러지는 별빛이 등불이 되어 주었고, 달이 뜬 밤에는 물소리가 달빛을 감추어 주었다’(혼불 2권, 166쪽)

작가는 전주천이 옆을 스쳐 가는 한옥마을에서 나고, 전주천이 어깨 걸고 흐르는 완산동과 다가동에서 자란 까닭에 소설로 전주의 수맥을 이야기한 바 있다. 오늘도 전주천은 생명과 상생을 안고 너그러이 윤슬과 함께 쉼없이 흐르고 있다.

은행로에 자리한 최명희길은 그야말로 전주한옥마을의 묘미를 느끼기에 적합한 조금은 좁고 아기자기한 골목길이다. 최명희문학관을 찾는 관광객 또는 인근 주민들이 찾는데도 편리하다.

한옥마을 속 작은 골목이기는 하지만, 최명희문학관과 교동아트센터, 고종 황제의 후손이며 ‘비둘기 집’ 을 부른 가수 이석의 집으로 알려진 승광재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숨어져 있는 길이기도 하다.

최명희는 1947년 전주시 화원동(현 경원동)에서 출생했다. 풍남초등학교와 전주사범병설중학교, 기전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전주 기전여고와 서울 보성여중, 보성여고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쓰러지는 빛’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혼불’ 제1부가 당선됐다. 교직을 그만두고 혼불 창작에만 매진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부부터 5부까지 연재했다. 이는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만 7년 2개월)다. 1990년에 혼불 제1부와 2부를 발간했으며 1996년에 혼불 제1부부터 5부까지 모두 10권(한길사)을 펴냈다. 이는 200자 원고지 1만2,000장 분량이다./글=이종근·그림=원지(XU WE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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