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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영혼의 고백

김스미의 미술산책 〈65〉 박민평 ‘자화상’

우울하고 엄숙한 감정이 당연하다는 듯
내면의 본질을 끊임없이 작품에서 고민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4월 30일 10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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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고행의 첫 번째는 자기와의 투쟁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요를 가볍게, 때로는 솟구쳐 오르는 감동을 누를 길 없어서 혹은 화를 풀기 위해, 나라는 존재를 적나라하게 적는다. 꼭 이런 것이 아니라 해도 화가에게 자화상은 결국 자기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다.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달콤한 수식어나 허영에 찬 우상화가 아니다. 작가의 예술을 향한 고뇌의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의 감정과 갈망을 실은 그림이 날개를 달고 생명을 지닌다.

화가 박민평(1940-2019)의 ‘자화상’은 작가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품고 있다. 그가 사랑했던 어둡고 짙은 붉은 갈색의 묵직한 옷을 입었다.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에 입은 꼭 다물고, 한쪽 눈은 동그랗게 뜨고 한쪽은 실눈이다. 둥그런 이마는 세월이 지나가고 그러나 옥색으로 빛나 못다 핀 열정과 환희를 감추고 청춘의 꿈이 머물렀다. 긴 콧대만 덩그러니 강렬한 의지를 새긴 이 그로테스크한 자화상은 얼굴도 배경도 회색이다. 우울하고 엄숙한 감정이 당연하다는 듯하다. 평생 미술 교사였던 그가 정년퇴직 후 그린 듯한 이 작품은 진짜 예술가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그림은 자신과 작품의 존재감에 대한 깊은 상념이었을까?

전주의 동문 거리 로맨티시스트 박민평을 이토록 고민하게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창작의 고민은 작가의 평생 딜레마다. 비결이 어디 있겠는가? 순수했던 그가 때로는 어둡고 예민하여 불안정한 자기모습을 이토록 처연하게 표현했다면 그것이 완결편이다.

부안이 고향인 박민평은 그가 나고 자란 산과 들을 사랑했다. “지칠 때면 정겨운 신포 바닷가에서 백합 조개 한 개에 마늘 하나 얹어 소주 한잔 커억! 들이키며 너털웃음 지으시던, 늘 순백의 청년이셨지요.” 그를 추억한 박남준 시인의 회상이다.

박민평에게 고향은 안식과 존재의 원천이자 뮤즈였다. 태고의 신비와 전설이 흐르는 부안의 산을 모티프로 한 작품, ‘산 5’의 풍경은 그야말로 ‘This is simple’이다. 멀리 우금 산성의 설화를 이고 산 벚꽃이 흐드러진다. 청초한 초록과 연두색 향연을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 몸도 마음도 한없이 투명하게 이끈다.

폴 세잔은 말년에 고향, 엑상 프로방스의 생 빅투아르산을 10년간 그렸다. 박민평도 애정을 품었던 고향의 산과 들을 평생 그렸다. 초기에는 거칠고 음울하게 표현하다가, 설화적이고 민화처럼 그리다가, 차츰 색과 면을 심플하게 분할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위압적인 무게로서 지각되는 하나의 산을 그리고 싶었다는 박민평의 ‘산’은 단순화된 선과 강렬한 색을 특징으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지난다. 해바라기와 장미 또한 그가 즐겨 그린 소재다. 평범해서 좋았다는 해바라기는 고뇌와 연민을 가득 안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슬픈 피에타다. 시들어가는 해 질 녘 붉은 해바라기는 박민평의 또 다른 자화상이 아닐까?

박민평은 한국 역사 격동의 시간인 70, 80년대에 열악한 지역 화단을 지키며 작업을 이어 나간 귀한 작가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목숨 같은 그림들이 남아 화가 박민평을 기억하게 한다. 그는 내면의 본질을 찾기 위해, 예술을 위한 예술을 위하여,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화가였다. 그의 존재를 새롭게 조명하는 전시회가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화가, 칼럼니스트 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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