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희망 없는 희망

[책마주보기] 이정모의 '찬란한 멸종'(김혜영)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9월 08일 07시46분

멸종이라는 단어에 희망적 관형사를 얹은 '찬란한 멸종'이라는 책의 제목이 눈에 띈다. 생물의 한 종이 모두 사라지는 부정적 사건에 긍정적 역설을 덧입힘으로써 멸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에 방점을 둔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인류의 위기인 기후 문제를 다루기 위한 방법으로 역사의 시간을 정방향이 아닌 역방향으로 서술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2150년, 인류가 자취를 감춘 시점에서 시작하여 지구의 탄생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단순한 연대기의 파괴가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거꾸로 읽는 서사시’인 셈인데 범고래, 산호, 삼엽충, 네안데르탈인 등의 생명체가 1인칭 화자가 되어 각자의 멸종, 생존, 진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물학적 사실에 인간의 상상을 겹쳐 놓음으로써 과학 텍스트인 동시에 다성적 서사시처럼 읽힌다.

그런가 하면 무겁기만 할 것 같은 주제를 희석하는 것은 문장의 틈새마다 끼어 있는 유머이다.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 불릴 정도로 능청스러우면서도 재치 있는 문체는 과학이라는 주제의 무거움을 일정 부분 소거 해준다. 예를 들어 산호가 ‘우리 존재가 종결되려 한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하기도 하고, 미토콘드리아가 ‘I am your father!’ 라고 외치는 장면은 유머러스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넘어 인간 존재의 생존 위기에 대한 물음까지 은폐되어 있다. 저자의 유머러스한 문체는 생명이란 결국 거대한 연쇄 속에서 서로 빚어지고 얽혀 있는 것임을 상기시키는 장치로 읽힌다. 따라서 유머는 단지 해학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 사고를 비트는 도구이자 깊은 성찰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은 과거 다섯 번의 대멸종과는 차원이 다르다. 과거에는 소행성 충돌이거나 화산 폭발 같은 자연의 거대한 힘이 작동한 기후 변화가 원인이었다면, 현재 진행 중인 여섯 번째 대멸종은 기후 변화가 아닌 기계화 산업화에 의한 인위적 결과라는 데서 이전과 다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는 자성이 필요하다. 문명의 진화가 외려 지구 생태를 압박하며 수많은 생명을 절멸로 내몰고 있다는 인식에서 작가는 인간의 개발 욕망만 변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행동이 변화의 열쇠임을 강조하면서 책임과 각성을 촉구한다. 더하여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독자의 감정과 교감하게 하는 문장들이 시선을 끈다. 범고래의 울음, 산호의 침묵, 네안데르탈인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점차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더 넓은 생명의 장을 바라보게 된다. 이 교감은 문학의 본질적 기능, 곧 ‘타자의 감각을 상상하는 능력’을 과학적 사실과 연결한다.

작금의 기후 문제는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된 것으로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 문제이다. 인류는 지금 찬란한 멸종을 맞이할 것인지 번영과 생존을 이어갈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여섯 번째 멸종이 도래하기 전에 인간이 스스로 각성해야 함을 무겁지만 무겁지 않게 전하면서 희망을 인양하고 있다.

김혜영 작가는

2018년 ‘수필과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부안학생교육문화관 공감 독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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