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온누리]대한국인, 안중근을 만나다

기사 작성: 박은희 - 2025년 12월 18일 16시14분

“작은 평화 큰 평화가 어찌 다를 수 있겠는가. 서로서로 인정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

뮤지컬 ‘영웅’의 마지막 장면, 여순 감옥의 독방에서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노래한다. 사형을 두 시간 앞둔 순간에도 붓을 놓지 못한다. 동양평화에 대한 일본인 간수 치바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우리와 중국, 일본이 대등한 나라로 서로를 존중하는 것.” 죽음을 앞두고도 동양평화를 노래했던 그의 목소리는 필자에게 지금도 묵직한 울림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9월 뮤지컬 버스킹 무대에서 이 동양평화를 노래하며, 115년 전 그의 간절한 염원을 되살려 보고자 했다.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자 안중근 의사 순국 115주기이다. 이 특별한 해를 맞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12월 2일부터 내년 3월 8일까지 ‘대한국인 안중근 쓰다’ 특별전을 마련했다. 그가 남긴 유묵은 총 대신 붓으로 남기고자 했던 마지막 마음의 조각들이다. 인간의 생이 끝나는 자리에서조차 조국의 미래와 동양의 평화를 꿈꿨던, 전시는 바로 그 ‘마지막 시간’의 고뇌를 보여준다.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유교적 수양과 가톨릭 신앙 속에서 애국의 뜻을 품었으나 을사늑약 이후 나라가 기울자, 붓 대신 총을 들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며 제국주의의 심장을 꿰뚫은 것이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깊은 유산은 감옥에서 벼려낸 붓끝에 있었다.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에서 그는 한·중·일이 서로를 짓밟는 침략을 멈추고 공동의 번영을 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침략과 폭력이 일상이던 시대에 ‘저항을 넘어 미래를 말한’ 그의 사상의 높이를 웅변한다.

그의 인간적 품격은 사형 직전 치바에게 써준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분노와 복수 대신,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으로서의 직분을 전한 영웅의 품격이다. 그는 총으로 민족의 독립을 외쳤고, 붓으로 인류의 평화를 지켰기 때문이다.

안중근의 삶은 이렇게 말한다. 평화란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히듯, 서로 자리를 양보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말이다.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는 지금,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들린다.

올 겨울 전주에서 열리는 특별전과 함께 영화 ‘영웅’, ‘하얼빈’을 통해 대한국인 안중근을 만나보길 권한다. 115년 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붓과 총으로 평화를 쓰고자 했던 그의 염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유훈에 답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오승옥(문화활동가·관광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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