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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교수의 전북문화재이야기] 신라의 천년고찰, 강천사

“CNN선정‘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에 포함된 강천사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며 강천산과 절묘한 조화"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4월 07일 13시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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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서예가,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순창은 곳곳에 아름다운 산세를 끼고 있어서 일찍부터 불교문화가 융성하여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에는 많은 사찰들이 세워졌다. 그중 백제시대인 623년(무왕 24) 숭제법사(崇濟法師)가 창건했다는 구암사(龜巖寺)와 통일신라시대인 887년(진성여왕 1) 도선국사(道先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강천사(剛泉寺)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강천사는 산의 경관이 수려해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우는 강천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최근 CNN가 선정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중에 포함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133년전인 신라시대에 초창된 강천사는 1316년(충숙왕 3) 덕현선사(德賢禪師)가 오층석탑과 12개의 암자를 창건하여 사세(寺勢)를 확장하였으며, 1482년(성종 13)에 신말주(申末舟, 1429-1503)의 부인 설씨(薛氏)의 시주를 받아 중창되었다. 그 후 1855년(철종 6) 금용당(金容堂) 선사에 의해 중창되었으나 1950년 6·25 전쟁으로 인해 보광전, 칠성각, 첨성각의 당우가 모두 불탔다. 당시 강천사에는 비구니들이 주로 머물렀는데 그 까닭은 창건자 도선국사의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는 사람이 있어야 빈찰(貧刹)이 부찰(富刹)로 되고 도량이 정화된다.”라는 예언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 후 승려 김장엽이 1959년에 새로 중창하였다.

이와같이 오랜 역사적 변란과 시간을 인내하고 견뎌온 만큼 사찰명도 많아서 용천사(龍泉寺) · 복천사(福川寺, 福泉寺) · 왕주사(王住寺) · 강천사(剛泉寺, 江泉寺) 등으로 불리워져 왔다. 특히 왕주사는 고려 태조(太祖, 918~943년 재위)가 후삼국을 통일할 때 먼저 후백제를 견제하기 위하여 후방 요충지인 금성(錦城, 지금의 나주)을 점령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에 태조 왕건이 이 절에서 머물렀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명명하게 되었고, 지금 널리 알려진 강천사 라는 사찰명은 선조(宣祖) 때 구봉(龜峰)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이 이곳에 유숙하면서 지은 시 「숙강천사(宿剛泉寺)」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강천사에 있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마당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이 있고, 강천사 오층석탑의 북쪽 약 1m 지점에는 중대석과 보주(寶珠)만이 남아 있는 이 있다. 또한 강천사 앞 내를 건너 남쪽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가 있다. 이중에 은 고려시대인 1316년(충숙왕 3) 강천사를 중창할 때 세운 석탑으로, 다보탑(多寶塔)으로 불리우고 있으나 2,3,4층 덮개돌에 6·25 전쟁 때 입은 총탄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역사의 아픈 상처를 느끼게 한다.

또한 강천사에는 불연이 깊었던 설씨부인과 관련이 깊은 문화재가 있다. 대웅전에서 계곡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심우당이 있는데 옆에는 사적비와 (보물 제728호) 번역문 안내판이 있다. 이 유물은 설씨가 남편 신말주가 순창에 낙향하여 귀래정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고 있을 시기에 본인은 광덕산에 절을 세우기 위하여 1482년(성종13)에 신도들에게 시주를 권선하여 글을 짓고 사찰의 설계도를 그린 것으로, 원본은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모과나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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