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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바다건너 물건너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7월 12일 13시15분
/문이화(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코로나 19로 외출이 제한되면서, 작년 말까지만 해도 일상적이었던 바다건너 바깥나들이는 이제 언감생심 그리운 시절의 추억이 되었다. 과도한 해외여행으로 나랏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고 걱정하던 사람도 있었지만, 영화 기생충이나 방탄소년단이 세계로부터 큰 사랑을 받게 된 것도 잦은 해외나들이로 한껏 끌어 올려진 우리의 눈높이와 활발한 문화교류 덕분이 아닐까.

문화교류는 예나 지금이나 상당한 관심사였던 듯 하다. 2015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는 ‘6~7세기 당시 동아시아에서의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산물’이라는 점이 주요 가치로 인정받았다. 1,500여년 전 백제 사람들도 지금 못지않게 바다 너머 문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그 결과 우수한 문화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백제 무령왕릉은 1971년 배수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하룻밤만에 졸속으로 발굴조사하여 두고두고 원성을 듣기는 하지만, 12점의 유물이 국보인 백제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무령왕릉은 기존의 축조 방식과 달리 벽돌로 만든 독특한 형식의 무덤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당시 중국 남조의 양나라에서 유행하던 벽돌식 무덤 축조 양식을 백제가 받아들인 것이다.

어떤 이유로 중국식 스타일의 왕릉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 의도는 차치해두고라도, 1,500년 전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활발하게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무령왕릉은 보여주고 있다. 왕과 왕비의 목관이 일본산 금송으로 만들어졌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무령왕릉은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문화가 총집결했던 교류의 현장이었다. 이러한 국제성은 익산 쌍릉 대왕릉에서 나온 목관이 일본산 금송이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백제의 국제적 문화교류의 흔적은 풍납토성이나 부여나성, 익산 미륵사지 목탑지, 제석사지 목탑지 등에 사용된 판축기법에서도 나타난다. 판축기법은 중국 영녕사 9층목탑의 내부 중심에 쌓았던 토심이나 대명궁 성벽 등에 활용하였던 항토기법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중국의 항토기법이 진흙을 켜켜이 다져가면서 쌓는 방식이라면, 백제의 판축기법은 종류가 다른 흙, 점질토와 사질토를 교차하면서 다져 쌓으므로서, 접착력을 훨씬 더 높이는 축조 방식이다. 중국에서 들여온 항토기법을 백제는 한단계 업그레이드 해낸 것이다.

특히 미륵사지 목탑을 지을 때에는 배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초를 판축하기 전에 그 하부를 돌덩이로 몇 겹 쌓았다. 같은 판축기법을 쓰더라도 그 공간이 처한 환경에 맞추어서 다르게 적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항토기법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 풍납토성이라면 미륵사지 목탑지의 판축은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 한 익산 버젼의 판축기술인 것이다.

이들 문화유산을 통해, 비행기가 없던 1,500년 전에도 이 땅의 사람들은 바다건너 물건너 끊임없이 교류하며 보다 살기좋은 세상으로 만들고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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