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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교수의 전북문화재이야기]조선실학의 성지, 부안의 ‘반계서당’

“반계 유형원이 민생 개혁을 꿈꿨던 부안군 돌담위의 반계서당은 조선시대 실학의 성지”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11월 24일 15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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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서예가,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부안에는 조선시대 실학의 선구자인 반계 유형원(磻溪 柳馨遠, 1622~1673)이 실학의 바이블로 불리우는 『반계수록』을 탄생시킨 반계서당(전라북도 기념물 제22호)이 있다. 이 유적지는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반계 유형원이 살던 곳이라 하여 일명 ‘반계 마을’이라고 불렀고, 예전에는 우반동(愚磻洞)이라고도 하였으나 훗날 행정명이 우동리로 개칭되었다. 유적지 일대에는 ‘반계정(磻溪亭)’, ‘반계서당(磻溪書堂)’이라는 편액이 걸린 건물이 세워져 있고, ‘반계 유형원선생 유적비(磻溪柳馨遠先生遺蹟碑)'가 건립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유형원이 팠다고 전해오는 우물이 복원되었다.

조선실학의 성지가 된 부안과 유형원의 인연은 세종때 정승을 지낸 9대조 유관(柳寬, 1346~1433)의 사패지(왕이 큰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린 땅)가 우동마을에 있었기 때문이였다.

서울 정릉(貞陵)에서 태어난 유형원은 정쟁을 피해 1653년(효종 4)에 조부 유성민(柳成民)을 따라 부안현 남쪽 기슭 우반동으로 옮긴 후 20여년 동안 이곳에서 지역주민들의 생활상과 민생을 직접 경험하고 살피면서 현실적인 문제점을 타파하고 이상향을 건설하고자하는 개혁사상으로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고, 또 몸소 실생활에 실천하면서 실학사상의 체계를 세워 나갔다. 원래 천성이 청렴결백하고 실행력이 강하여 농촌에서 농민을 지도하는 한편 기근을 구제하기 위해 양곡을 비축하게 하고, 큰 배 4~5척과 마필을 바닷가에 비치하여 구급책을 준비하는 등, 이웃 사람과 노복에 이르기까지의 애민사상이 지극하였다. 따라서 지명을 따서 자신의 아호를 반계(磻溪)라고 하고, 생각나는대로 그때그때 방안을 기록하여 ‘반계수록’이라 명명하였으니 이곳이 바로 조선후기 실학의 모태가 된 셈이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란이 발발하고 조선 건국 이래 누적되어 오던 여러 가지 모순이 극대화되어 갔던 시점이었다. 게다가 삼정(三政)의 문란은 농민들의 삶을 파괴하여 노비나 도적으로 전락시키고 있었다. 유형원은 이러한 조선 사회의 현실과 부안 주민들의 생활상을 바라보면서 그 폐단을 바로잡고자 노력했던 개혁가였던 것이다. 그의 사상과 이념, 이상 국가 건설을 위한 구상 등은 『반계수록』 26권에 그대로 실려 있다. 내용으로는 현실 법제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 안정된 국민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지역적인 불균등과 신분적인 특권을 해소해 모든 사람이 자기 몫을 차지할 수 있는 사회의 실현에 목표를 둔 대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반계수록』은 1770년(영조 46) 왕의 특명에 의해 경상감영에서 26권 13책이 목판으로 인쇄되었고, 1783년에 경상감영에서 다시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1954년에 동국문화사에서 영인 되었고, 이 영인본에 부록 자료를 추가해 1974년에 경인문화사에서 다시 영인되었다. 한장경의 번역본이 충남대학교에서 4책으로 출판되었고, 북한사회과학원에서도 완역이 나왔다.

이러한 유형원의 개혁사상은 후학인 이익(李瀷)·안정복(安鼎福)·정약용(丁若鏞) 등의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이미 영조대에 인정을 받아 국정 개혁의 지표가 되기도 했으며, 조선 후기 유학자 매천 황현(黃玹, 1855~1910)은 유형원을 가리켜 ‘천하의 재상감’이라 칭송하기도 했다.

따라서 유형원의 선구적 연구를 싹트게 했던 실학의 성지, 실학의 메카인 반계서당은 유형적인 문화재적 가치와 더불어 어려운 민생의 삶을 실제적인 방안으로 제시했던 유형원의 개혁사상과 애민의식을 깊게 되새겨 볼 정신적 가치가 더욱 높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부안에는 반계서당이 세워지기 전에 이미 부안의 절경에 매료되었던 허균(許筠,1569~1618)의 체류지와 홍길동전을 집필했다고 전해지는 유적지가 있었으며, 조선중기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의 문학적 유래지가 있었으니 당시의 학문적, 문학적 연관관계에 관한 면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들이 절경이 많은 부안의 바닷가와 산사들에서 힐링의 시간을 가질수 있음은 우리 전북의 자랑이며, 축복이다. 이와 더불어 부안의 여러 지역에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예술을 사랑했던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남긴 유적지를 찾아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이상향을 꿈꿔 보는 것 또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특히 유형원이 반계서당에서 꿈꿨던 이상적인 사회를 함께 공유해 보기를 권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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