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특선수필] 키가 큰 만큼 그림자도 길다

윤가원(수필가, 전주 중앙여고 교감)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10월 01일 12시19분

아들이 어느 날부터 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키는 이미 180을 넘었고, 체격은 어른 못지않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큰 몸짓 속에 여전히 흔들리는 열여섯의 불안과 질문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나는 고등학교 교사다. 웃던 아이가 어느 날 학교 폭력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불려 오는 장면을 수없이 보았다. 시작은 늘 사소하다. 눈빛 하나, 말 한마디가 인생을 뒤흔드는 불씨가 된다.

학교 폭력은 한순간에 맑은 물을 흙탕물로 만든다. 단 한 번의 실수가 평생의 낙인이 되어, 그 아이의 미래에 주홍글씨처럼 남는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아이는 성장 대신 상처를 품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매일 아들에게 말한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피하고, 말로 풀고, 선생님께 말씀드려.”

그리고 덧붙인다. “조심해.”그 말은 당부이자 기도다. 때론 나 자신을 달래는 주문이기도 하다.

덩치 큰 아이는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띈다. 무심한 시선조차 시비가 되고, 누군가에겐 덤벼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 순간, 아들은 물러서기를 두려워하진 않을까.

그래서 또 말한다.“조금의 억울함을 참는 건 비겁한 게 아니야. 말없이 돌아서는 것도 용기야.”

하지만 이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들릴까. 충고일까, 잔소리일까. 사춘기의 자존심은 쉽게 부풀고, 쉽게 터진다.

교사로서 나는 기억한다. 자존심에 묶여 화해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자기 입장만 외치다 결국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아이들의 눈빛을. 이해받지 못함에만 억울해했던 그 마음들을.

그 아이들의 모습이 문득 아들의 그림자 위에 겹칠 때, 나는 또다시 마음을 졸인다. 나는 아들이 마음은 강하지만 부드러운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주먹보다 침묵을, 보복보다 책임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으로.

진짜 강함은, 때로 물러서는 용기에서 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있는가. 어른들은 보여주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만 요구하고 있진 않은가.

아들이 학교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며 다시 기도한다. 오늘도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무사히 돌아오기를.

키가 큰 만큼 그림자도 길다. 그 그림자는 어둠이 아니라, 그만큼의 빛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내 아이의 그림자가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빛으로 자라나길. 그것이 내가 매일 아침 전하는 “조심해”라는 말의 진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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