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 운영, 작가 중심으로 돌아가야

이상찬 작가(전북대학교 명예교수/전 양평군립미술관장)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12월 21일 12시04분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은 문화 예술의 중앙 집중 현상 속에서 전북 미술인의 수도권 발표 기회를 확대하고자 2010년 서울 인사동에 개관한 이래, 그 소기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해 왔으나, 예산 절감을 이유로 이전하면서 새롭게 적용된 대관 규정과 절차, 운영 방식이 작가의 자율성과 창작 환경 등 작가 중심성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분관의 현행 대관 절차는 1차 행정심사와 2차 서류심사, 3차 대면 인터뷰(필수사항), 간담회, 전시 일정의 무작위 추첨, 평론가 1:1 매칭 등 여러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이미지와 작가의 활동 이력만으로도 판단 가능한 비교적 단순한 대관 행정 절차가 작가에게 상당한 시간적·정신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구조다. 특히 학예연구직, 미술평론가, 독립큐레이터 등으로 구성된 다섯 명의 심사위원 앞에 작가가 직접 출석해 대면 인터뷰에 응해야 하는 구조는 작품 자체보다 설명 능력이나 구술 방식 등 작품 외적 요소가 평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작품에는 언어로 환원되기 어려운 사유와 맥락이 축적되어 있다.

영국이 1945년 예술평의회를 설립하면서 채택한 이른바 ‘팔 길이 원칙’은 지원 기관은 예술 활동을 돕되, 작품 내부의 판단과 해석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우리나라 역시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문화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해 왔으며, 규제 중심의 경직된 행정보다 국민의 편에서 유연하고 책임 있는 행정을 강조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면 인터뷰를 포함한 과도한 절차가 개인전 대관에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해서 제도적 검토가 요구된다. 대관 심사의 목적은 미술관의 공공성과 품격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검증에 있어야 하며, 작가의 사유 체계나 미학적 관점 자체를 간섭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곤란하다. 이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고, 예술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규정한 「예술인복지법」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또한 평론가-작가 1:1 매칭을 위해 평론가가 작가를 파악하고 선택하기 위한 과정으로 대면 인터뷰의 필요성이 제시되고 있으나, 개인전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서사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전시다. 그 서사를 누구와 함께 해석할지는 오직 작가의 선택에 맡겨져야 한다. 자신의 작업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평론가를 선택할 권리는 작가에게 있다. 평론가가 작가를 선택하거나, 미술관에서 평론가를 지정하는 등의 방식은 예술가의 권리를 명시한 「예술인복지법」의 핵심 취지와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미술관이 평론가를 지정하고 예산을 직접 집행했다면, 이 같은 간접지원 방식보다 작가가 평론가를 선택하도록 하고, 그에 따른 예산을 작가에게 직접지원하는 방식이 작가의 자율성 보장이나 ‘팔 길이 원칙’에도 보다 부합한다.

대관이 확정된 이후 요구되는 간담회 참석 역시 절차의 필요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 전시장 사용에 관한 주의사항이나 행정적 전달 사항은 서면이나 온라인 방식으로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인 대면 절차가 요구되는 것은 작가에게 불필요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전시 일정의 무작위 추첨 방식은 공정성 확보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작가마다 서로 다른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추첨에 기반한 공정성은 조건이 동일할 때에 의미를 갖는다. 마라톤에서 출발 순서를 추첨하는 경우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규모와 작업 속도를 가진 작가들의 전시 일정이 추첨으로 배정되는 것은 합리적일 수 없다. 공정을 명분으로 한 행정 편의가 작가의 창작 시간을 압박하고 전시를 ‘운’에 맡기는 문제보다 앞설 수 없다. 서울분관이 과거 10여 년 동안 운영해 온 희망 일정 1·2·3 지망을 바탕으로 한 협의·조율 방식은 작가의 시간 계획을 고려한 현실적인 운영 방식이었으며, 당시 공정성 논란도 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성수기 집중 현상 역시 성수기의 차등 지원이나 비수기에 인센티브 혜택을 주는 설계 등 다양한 제도적 보완을 통해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대관 일정 공고 시점 또한 작가의 창작 현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개인전은 일반적으로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의 준비 기간을 요구한다. 그러나 2026년도 서울분관 대관 계획은 2025년 7월에 공고되어 11월에 확정되었고, 첫 전시는 이듬해 2월 말부터 시작된다. 이 경우 일부 작가에게는 약 3개월 내외의 준비 기간만이 주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일정은 전시 준비 여건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결국 전시를 포기하거나, 부실한 개인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보다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위해서는 차기 연도 대관 계획을 당해 연도 초에 공고하고 늦어도 4월 말 이전에 확정 짓는 방식으로 검토가 되어야 한다.

행정의 의도를 단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행 제도가 작가 중심의 지원 행정이라는 공공미술관의 기본 취지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논의되어야 한다. 서울분관의 이전과 운영 방식의 개선, 지역의 이론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 해법이 개인전 대관 절차의 강화로 귀결되는 방식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대면 면접과 작가의 의사에 반한 평론가 매칭 제도 역시 전북의 이론가 생태계 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역의 이론 생태계 조성은 대학과 지역사회, 미술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공공미술관의 전문성은 절차의 엄격함 자체가 아니라 예술의 특성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작가를 존중하고 그들의 자율성과 선택을 존중하는 행정이야말로 공공미술관이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이다. 팔 길이 원칙에 기반한 지원행정, 그것이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이 작가들을 위하는 길일 것이다. 필자는 반세기 동안 미술 현장을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이 예술인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문제 제기이자 전북미술의 생태계와 전북도립미술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제언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새전북신문 기자의 최근기사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 운영, 작가 중심으로 돌아가야

[메아리]1872년 우리 지역 모습은 어떠했을까?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 운영, 작가 중심으로 돌아가야

[사설] 고립가구 발굴, 박차를 가해야

[월요아침]인백기천(人百己千)

[여의도 논단]'일주명창, 오늘의 정치인들은 무엇을 밝히고 있는가?'

[전북의 창]전북, 다시 스스로를 존엄하게 세워야 한다

[사설] 전력 ‘수도권 집중’ 재검토해야

[삶의 향기]한 해를 마무리하며 우리 지역을 다시 바라보다

[사설]출생률 증가, 일자리를 만드는게 우선이다

“주말 우산 챙기세요”... 체감 온도 ‘뚝’

Leave a Comment

많이 보는 기사

제5기 전북지도자 평화아카데미 7회차 강좌 열려

국가유산청 전북동부문화유산돌봄, 사랑의 연탄나눔 봉사활동

대한노인회 전북연합회, 착한바가지 기빙데이&1·3세대이음사업 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