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실록 전북 민주화운동사] 87년 민주대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1)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06.08.28 15:19

87년 민주대항쟁 이후 노조설립과 노동자 대투쟁은 전국의 ‘태풍의 눈’이었다.

전북의 노동자들은 운수산업 노동자들의 시작을 기점으로 섬유산업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87년 투쟁이 단순하게 근로조건과 임금인상을 위한 자연발생적인 파업이었다면, 1988년은 조직적인 활동으로 노동자들의 무기인 노동조합결성과 결합되었다.

노태우의 6. 29 선언이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이 전부 빠지는 모욕을 노동자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노동자 스스로의 자기 혁신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실망과 닥쳐오는 정치위기에 대해 시급히 대처하지 못하고 급변해가는 현실투쟁에 따라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진지를 강력하게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극단적 억압으로부터 참아왔던 불만을 즉자적으로 터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적 무기를 확보하면서 장기전에 돌입할 준비를 하였다.

가두투쟁에서 공장으로 투쟁의 장소가 바뀌었다. 자본가들이 중간층을 민주화라는 미끼로 개량화하여 자유주의 민간정부를 꾸리겠다는 꿈을 꾸고 있을 때 노동자들은 자연발생적이긴 했으나 계급적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노동자 대투쟁의 깃발을 올린 것이다.

부당해고, 구사대폭력, 매수, 협박 등으로 민주노조들이 깨지고 상당수가 어용화되기도 했지만 7-9월 석 달동안 전국의 3,400여 사업장에서 임금인상 및 노동조합 건설을 내세우며 투쟁했으며 1,400여개의 노조가 새로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88년의 전북의 대표적 투쟁은 전라북도노동조합 연합회(이하 전북노련) 결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는 창신공업사(전 국제정비노조), 백양나염 노동자들의 민주노조사수투쟁과 후레어훼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이었다.

전북지역의 3대 섬유업체들의 노동자탄압은 80년대 태창메리야스를 비롯하여 86년 백양섬유에서 작고, 크게 끊이지 않고 있어 왔다. 백양나염 노동자들은 87투쟁의 힘을 얻어 88년 3월 18일 노동조합을 설립해 기업주에 맞서 1년 반 동안 노동자들이 강력하게 투쟁하였다. 백양나염 노동자들은 노조결성 후 곧바로 단체협상 투쟁을 통하여 임금인상을 전개하였다. 그러자 회사 측은 노조결성 20일 만에 공장을 이전한다고 발표를 하였다. 그것은 백양본사 내에 있는 60여개 공장으로 투쟁이 번질 것을 두려워한 회사 측의 발상이었다.

공장이전 소식을 듣자마자 조합원들은 철야농성으로 돌입하였고, 회사는 그날 밤 ‘노조탄압 청부폭력업자’를 통해 농성장에 투입시켜 아수라장을 만드는 등의 탄압을 하였으나 회사 측의 수법을 알고 있는 노조원들이 끈질기게 버티자 형식적으로 협상을 하였다.

그러나 회사 측은 5월 4일 무기휴업 공고를 부쳤다. 이때부터 백양 노동자와 회사 측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은 위장폐업에 맞서 정문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하였고, 전북지역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백양나염 위장폐업철회투쟁’을 선언하며 불매운동과 가두 선전전을 전개하였다. 500여명의 전북지역노동자들은 백양기업주의 비열한 행위에 분노하여 6월 2일, 9일 2회에 걸쳐 10여개의 노조들과 연대 활동을 전개하여 ‘백양나염 위장폐업철회 촉구대회’를 개최하였고, 노동자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라는 자세로 투쟁의 의지를 높였다.

마침내 2개월 만에 노조의 승리로 타결을 보게 되었다. 그 후 회사 측은 세일나염으로 회사 명칭을 바꾸고, 노조파괴 공작을 진행하였다. 노동자들을 회유하기도 하고 임금을 체불하기도 하였다. 또한 공장 가동이 힘들다고 위협하기도 하면서 조합원들이 분열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투쟁으로 노조를 사수한 노동자들은 노조집행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똘똘 뭉쳐 지역의 핵심노조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민주노조와 전북노련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는 대단하였고, 지역노동자들의 힘으로 노조를 사수할 수 있다는 연대의식과 애정은 이루 표현 할 수가 없었다. 점차 안정된 노조활동에 들어가면서 89년 3월 임금인상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임금교섭을 노조파괴의 최대적기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아예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7차례에 걸쳐 교섭을 연기시켜 노조에서는 쟁의발생 신고를 내고 지방노동위원회의 알선을 기다렸다. 노조가 지노위의 알선을 받아들였는데도 회사가 거부하자 노조에서는 파업을 결정하고 지노위의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회사 측은 또다시 조정안도 거부하더니 89년 5월4일 직장폐쇄를 해버렸다.

그러나 60여명의 조합원들은 2개월간 공장을 사수하며 직장폐쇄에 대응하여 흔들림 없는 자세로 투쟁을 하였다. 아줌마들이 돌아가면서 식사를 해오고 공장바닥에 박스를 깔아 놓고 잠을 잤고, 간혹 조합원 간의 갈등으로 싸움도 생겼지만 흔들림 없이 투쟁하였다. 노조에서는 노동부와 도청에 가서 항의도 하고 호소도 하였다.

또 지역노동자들과 규탄대회를 열기도 하고 거리시위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2개월이 지난 후 회사안에 동의하라고 하여 조합원들은 노조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합의를 해주었다. 그러자 또다시 보름 만에 회사는 갑자기 폐업선고를 하고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일순간에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그들의 행위를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내었으나 소용이 없었고 결국 백양노동자들은 15개월의 싸움을 종결하였다.

후레어훼숀 노동자들은 88년 4월6일 독일대사관 빌딩까지 점거농성을 하면서 노조탄압과 임금투쟁을 전개하였고, 창신공업사 노동자들은 회사 내에서 18일 간 농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자 5월 14일 가족과 함께 익산노동사무소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15일간 농성을 벌였다. 이후 지역연대투쟁이 점차로 확산되자 경찰들이 농성장을 들이닥쳤다.

노동자들은 최루탄을 쏘며 밀려오는 전투경찰과 백골단(사복체포 경찰관)을 향하여 시너를 온몸으로 뒤집어 쓴 채 강력하게 저항하였다. 이에 놀란 경찰들이 정문으로 밀려나자 한성공업사 조합원 및 익산택시노조연합회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전북지역 노동자 연대집회를 개최하였다. 연대의 투쟁으로 그날 새벽에 교섭이 성사되어 노동자들은 마침내 승리하였다.

이외에도 동양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 투쟁, 익산 건축사 노조원들의 노조사수투쟁 등 신규 노조들의 단결된 투쟁으로 88년 5월 31일 전민노련을 전북노련으로 개칭하고, 8월 21일 익산 창인동 성당에서 18개 노조 46명의 대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식으로 결성식을 가지게 되었다.

전민노련의 초대의장이었던 세풍제지 고진곤 위원장이 4월 28일 한국노총 산하 전북지역 화학연맹을 결성하여 화학업종의 신규노조들과 연맹산하로 들어가는 바람에 전민노련은 사실상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세풍합판의 이학주 위원장이 초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때부터 전북노련은 88년에 설립된 신규노조를 중심으로 새롭게 조직을 편재하고 간부들이 주체로 나서서 운영해 나가는 조직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 하였다. 전민노련이 노조 위원장들의 교류모임이었다면 전북노련은 명실상부하게 전북지역 노동조합의 연합체 성격을 지닌 조직이었다.

전북노련은 1대 이학주 세풍합판 노조위원장에서 1기 직무대행 김용환 세일나염 노조위원장, 최기화 성일통상 노조위원장, 2대에서 4대까지 현주억 익산건축사 노조 위원장, 5대 이금희 에이스제과 노조 위원장, 6대에서 8대까지 이송준 국제정비 노조위원장을 탄생시켰다. 전북노련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 속에서 탄생하여 96년 2월 민주노총의 탄생에 이르는 8년 동안 전북지역 노동자들의 횃불로 민주노동운동의 산 역사라 할 수 있다.

/전준형 기획위원, 변관열기자 bky@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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