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미국과 달라
나랏말싸미 미국과 달라
  • 김저운 객원전문기자
  • 승인 2008.02.0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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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제 2의 조선어말살정책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더욱 어이없는 것은, 일제 때가 아닌 작금에, 그것도 외부의 강압이 아닌 자발적 맹신으로 이루어지고 있단 점이죠.”

 “현실적인 급선무도 아니고, 모두가 원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일방적 주도 행위지요.”

 “그러면 대통령 연설도. 정부 각료 회의, 교무회의도 다 영어로 해야 되겠네요. 교장 교감도 교육 행정이나 소신보다는 영어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예, 영어권 사람들 다 데려다 쓰라고 해. 학교 현장에 풀어놓고 영어는 물론 과학 수학 역사 다 가르치라고 해. 담임도 맡고….”

 며칠 전, 한때 같이 근무하다가 이제 다른 학교로 각자 흩어진 교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주고받은 대화들이다. 모처럼 만난 교사들의 화제는 시종일관 이른바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럴 수밖에.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들이니만큼 누구보다도 교육현실을 잘 알고 있으며 교육문제에 대해 민감한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느닷없이 영어몰입교육을 제시했다가 1주일 만에 백지화하더니, 계속해서 영어 공교육 정책을 내놓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학습방법을 계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왜 그것이 영어교육에만 치중해야 하는가? 게다가 정책에 대한 검증과 여론의 수렴 없는 무모한 태도 앞에서 놀라움과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세계화 시대니 어쩌고 하는 구호를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안다. 영어든 뭐든 언어라는 것은 빨리 습득하고 많이 알수록 좋다. 더욱이 세계 공용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다문화 시대에 외국어를 알면 참으로 유익할 것이다. 또한, 웬만한 일자리를 얻으려면 영어는 물론 제 2 외국어도 구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단지 편리하게 쓰자는 한 가지 ‘기능’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어린아이 적부터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배워야 할 게 수없이 많다. 교육과정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보는 지혜와 안목을 알게 모르게 습득하고 수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습득하면 영원히 체질화 돼 버리는 황금기인 청소년기에 온통 영어만 배우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것은 ‘알면 편리하다’는 효용적 차원이 아니라 영어만능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어 기능 하나 익히기에 공부하는 시절을 다 써 버리면, 수학 과학 문학 의학 예술에 대한 인지학습은 전혀 없이 덜렁 어른이 되는 것 아닌가.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소위 지도층들이 얼마나 사대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실감되어 내내 씁쓸하다. 조선 시대 나랏말 한글을 만들어놓았을 때 최만리 등이 반대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그때에도 지배층들은 한글을 경시했다. 한문으로 과거를 보았고, 한시를 알아야 대접을 받았다. 그렇게 이어져 온 사대주의의 유전인자가 오늘에 와서는 한문 대신 영어로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한문으로 과거를 보았듯이 영어를 잘 해야 일자리를 얻는 제도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영어만능주의가 세력을 떨치면 앞으로는 어찌될 것인지 생각해 본다. 영어 단어를 우리말로 쓰는 현대식 이두문자가 생겨나지 않을까? 어머니는 ‘머더’, 하늘은 ‘스카이’…. 그러다가 문자마저 사용하지 않게 된다. 영어가 공용어가 되고 나중엔 모국어로 자리 잡는 사태에까지 이른다면? 그리고 후손들이 박물관에 가서 “옛날엔 저런 문자를 썼대.” 하며 한글을 신기해한다면?

  자녀를 성공시킬 수 있는 지름길에 대해 요즘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먼저 외국에 나가 원정출산을 하는 거란다. 그리고 조기유학을 시킨다. 그러면 병역도 면제된다. 그리고 국내에 들어와서 취업을 하면 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다. 앞으로 중국이 세계 시장에서 강대국이 되면 어찌할 것인가? 그때엔 또 중국어 열풍이 불 것이다. 도대체 우리말과 우리글은 어디에다 쓸 것인가?

 언어갈등은 또 다른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벨기에는 1830년 혁명으로 네덜란드연합국에서 독립하였다. 그런데 이들의 언어는, 북부에서는 네덜란드어를 남부에서는 프랑스어를 독일 접경국에서는 독일어를 사용한다. 한 나라가 3개의 언어를 쓰고 있어 지역갈등과 문화갈등이 심하다. 올해 총선을 치렀으나 새로운 내각 구성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십 년쯤 후 우리도 영어와 한국어를 쓰는 계층이 생겨날 수 있다. 그것은 또 다른 문화적 신분적 갈등을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그 옛날 노비 만적처럼 ‘왕후장상의 씨’가 아니라, “왕후장상의 언어가 따로 있느냐”고 절규할 지도 모른다.

 하이데거는 말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언어는 존재가 들어가 살 수 있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 즉 한국인의 존재의 집은 영어권의 나라들이란 말인가? 존재가 영혼이라면 언어가 육체일진대,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팔든지, 아니면 껍질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조소라도 보낼 수 있지만, 자라는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학생들이 혹 “영어 잘 하는 필리핀이나 아프리카 같은 나라들은 잘 사나요?” 하고 물으면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온 국민을 영어 못 한다는 열등감에 빠져 허둥대게 하지 말라. 영어가 꼭 필요한 사람들, 언어에 소질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게 하라. 영어 공부에 쏟아 붓는 공교육 사교육비로 차라리 통역사 번역사를 양성하라. 그것이 더 실용적이다.

 교육은, 철학과 신념이 따라야 한다. 추세나 세태를 영원한 진리처럼 가르치는 것은 사이비다.

/소설가-김제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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