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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고려인의 장례식
2008년 03월 31일 (월) 조나야 시민기자 itsmeny@hanmail.net

내 나이 스물여덟.(한국 나이로 스물여덟, 카자흐스탄 나이로는 스물여섯이다. 카자흐스탄은 우리나라와 달리 태어나면서 한 살을 세지 않고, 생일이 지나야지만 나이를 먹기 때문에 현재 26살이다.) 적다면 적다고 할 수 있는 나이이고, 많다면 많다고 할 수 있는 나이지만 아직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떠나보낼 나이가 되지 않아서 인지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적이 없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가르친다고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내가 한국의 장례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노릇. 나는 장례나 제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굳이 핑계거리를 찾는다면 나이가 어린데다가 종교상의 이유로도 장례나 제사에 대해 알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면 용납이 좀 될까?

이렇게 장례나 제사에 대해서 모르는 이유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오늘 내가 전할 이야기가 바로 “장례”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상가(喪家)에 다녀왔는데 그 날은 발인(發靷)을 하는 날이어서 나는 장지(葬地)까지 따라갔다 왔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 찰나에 오늘 발인예배를 드리러 가는 데 가보겠지 않겠냐고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초상(初喪)이 난 집이 평소에 나에게 잘 해 주시는 아주머니 댁이기에 가서 위로를 해 드리고 싶었지만 한 편으로는 나의 행색이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아서 망설여져서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괜찮으니 얼른 오라고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왜 괜찮다고 하셨는지, 상가에 가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이 평상복 차림이었을 뿐 아니라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도 눈에 띄었다.)

   
  ▲ 상가를 찾은 유족과 친지들.  
 

상가(喪家)에 들어가니, 방 한 구석이 흰 천으로 가려져있고 그 앞에 작은 상이 놓여 있었다. 상 위에는 삶은 계란과 계란 지단, 생선, 과일, 보드카 그리고 밥이 물에 말아져 있었고 꽃병에는 장미꽃 여섯 송이가 꽂혀있었다. (꽃을 선물할 때는 홀수로만 선물한다고 한다. 홀수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고, 짝수는 죽은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한다.) 가려져 있는 흰 천위에는 빨간 천에 흰 글씨로 고인의 이름이 적힌 명정이 걸려 있었다. 예전에는 명정을 한자로 썼었다고 하는 데, 요즘에는 한자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한글로 명정을 쓴다고 한다. 명정에는 고 ○○○○○○○○ 공 지구라고 적혀 있었다. 또, 집 안의 거울은 모두 흰 색 종이로 가려져있었다.

   
  ▲ 고인의 머리가 동쪽을 바라보고 누울 수 있도록 관이 놓여 있다.  
 

발인할 때 옛날에는 창문을 통해서 관이 나왔으나 지금은 출입문으로 나온다고 한다. 관은 머리부터 나오는 데(러시아인들은 다리 쪽이 먼저 나온다고 한다.) 먼저 꽃을 든 사람이 나오고, 관의 덮개가 나오고 난 후에 관이 나왔다. 관이 나오려고 할 때부터 작은북, 트럼펫, 호른의 악기 연주가 시작되었다. 장엄한 음악이 더해지니, 장례식이 더욱 엄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 날씨가 따뜻할 때는 관을 화물차에 싣는다고 하는 데 이 날은 버스를 이용하였다. 내가 탄 차는 버스를 뒤따라갔는데, 묘지로 이동하던 중에 강이 나오자 가족 중 한 사람이 내려서 주먹밥 세 덩이를 강에 던졌다.

   
  ▲ 사람들이 하관후 손으로 흙을 집어 관을 덮고 있다.  
 

공동묘지는 종교에 따라 나눠져 있었는데, 묘지의 오른쪽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의 묘지이며, 왼쪽은 카톨릭이나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의 묘지였다. 종교에 따라 나눠져 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민족에 따라 나눠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묘지가 나눠져 있는 이유는 카작인들은 신이 재림할 때 무덤이 열리고 카작인들만이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려인들과 러시아인들이 묻혀있는 공동묘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고려인들의 비석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고 러시아인들의 비석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고려인들은 고향(한국)이 동쪽이기 때문에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담아 동쪽을 바라보고 비석을 세운다고 한다.

   
  ▲ 묘지가 완성됐다. 울타리를 세우고 비석을 대신 하는 고인(故人)의 이름과 생년월일, 돌아가신 날짜가 적힌 패가 세워져 있다. 비석 대신 이런 모양으로 세워져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공동묘지에 도착해서야 관의 뚜껑을 닫고 못을 박았다. 하관을 한 후, 그 곳에 온 모든 사람들이 흙을 세 주먹씩 뿌리고 나니 남자들이 본격적으로 흙을 덮었다. 봉분이 완성되니 무덤 앞에 비석(비석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출생일, 사망일이 기록되어 있다) 을 세우고 울타리를 설치했는데 모든 것이 너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서 놀랄 뿐이었다. 묘지가 완성된 후에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냈는데, 가족들이 절을 3번씩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사람들이 묘의 울타리를 세우고 있다.  
 

무덤의 모양은 우리나라와 사뭇 달랐다. 우리나라의 무덤은 밥그릇을 엎어 놓은 모양이라면 이곳은 판판한 판자를 놓아놓은 듯 했다. 흙으로만 만든 무덤이 있는가 하면, 대리석이나 콘크리트로 덮은 무덤도 있었다.

   
  ▲ 기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라 선명하지 않지만, 카작인들의 묘지는 이런 형태를 띄고 있다.  
 

카작인들의 무덤은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카작인들의 무덤인지 알 수가 있을 정도로 고려인들의 무덤과 외형부터 차이가 난다. 카작인들의 무덤은 이슬람 사원의 모습을 띄고 있으며 시신이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엄마 뱃속에 들어 있는 모양으로 앉아 있다고 하는데 설명만으로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든지, 단지 알고 있는 사람의 죽음이든지 죽음이라는 단어는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도 기사가 쉽게 써 지지 않았던 것 같다. 월요일 아침, 이 기사를 접하게 되는 사람들의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길 바라며 기사를 끝마친다.

/코이카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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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야
(89.XXX.XXX.235)
2008-04-02 04:12:10
첫번째 사진은 상가가 아니라 장지에 다녀온 후.. 식사를 하는 장소입니다.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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