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전주 한옥마을의 경기전에서 '2010 전주한지문화축제'의 하나로 진행된 '초시대회'에서 한 할아버지 응시자가 한시를 짓는 것을 구경 나온 어린이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오늘 장원급제 해야죠.”
2일 오후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 단정히 한복과 망건을 쓴 참가자들이 저마다 붓펜을 들고 거침없이 한시를 적어 내려갔다. 글을 써내려가는 표정이 제법 진지하고 신중해 흡사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치르는 선비들을 연상케 했다.
제14회 전주한지문화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초시대회에는 50여 명의 응시자들이 참가해 ‘천년 전주한지’라는 주제로 한시를 짓는 시험을 치렀다. 전주한지의 우수성과 잊혀져가는 한시를 알리기 위해 마련된 이날 대회는 한시의 압운 東(동)·同(동)·中(중)·風(풍)·功(공)과 자유시를 짓는 시험으로 진행됐다.
시험에 참가한 장진기(74·전주시 덕진동)씨는 “초시는 조선시대 각종 과거의 제1차 시험으로, 과거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만 참여할 수 있었다. 오늘 참가자들 대다수가 한시를 잘 아는 사람들 같지만 저도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낼 자신이 있다”며 “전주라는 지역적 배경과 한지라는 우리 고유의 문화를 적절히 접목해 한시를 써나갈 생각”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평년보다 높은 낮 기온에 망건을 썼다 벗었다 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망건을 쓰기만 했는데도 날씨가 생각보다 더워 이마가 온통 땀으로 가득 찼다. 평소 안 입는 한복을 꺼내 입었지만 불편하기는 커녕 맞춤옷을 입은 것 마냥 기분이 좋다”면서 “요새 젊은이들은 한자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과거 우리문학은 모두 한시로 돼있기 때문에 성인들의 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한시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1시간 가량의 시험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한숨과 웃음이 섞여 나왔다. 시간이 모자라 아쉬움을 나타내는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작성된 자신의 한시를 보고 흡족해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또 다른 참가자는 “한지의 우수성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는데 생각보다 결과물이 잘 나온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면서 “다른 장소도 아닌 경기전 안에서 이처럼 한복을 갖춰 입고 한시를 써내려가니 마치 조선시대의 학자로 변한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며 웃었다.
한편 이날 과거시험 재현행사는 윳놀이와 나순철 선생의 특별시창, 입상자의 시창을 듣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 초시대회 장원 김형신씨 "전주한지는 하늘이 아껴둔 보배 강조하고 싶었다"
▲ 김형신“전주 한지는 하늘이 아껴둔 보배라는 뜻을 평소 공부한 한시에 담아 냈는데 장원까지 올라 말할 수 없이 흐뭇하다.”
2일 오후 전주 한옥마을의 경기전에서 열린 ‘초시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김형신(64·전주시 중노송동)씨의 소감이다.
그는 올해 전주한지문화축제의 하나로 진행된 ‘천년 전주한지’를 주제로 한 초시대회에서 전국에서 온 50여명 참가자와 겨뤄 장원을 차지한 것. 김씨는 이날 대회에서 제시된 한시의 압운 東(동)·同(동)·中(중)·風(풍)·功(공)을 활용해 시를 지었다.
김씨가 지은 한시는 ‘雄府天간海內東(웅부천간해내동)/韓家韓紙正歌同(한가한지정가동)/千年業作麒麟下(천년업작기린하)/萬古聲傳世界中(만고성전세계중)/特秀才能期善俗(특수재능기선속)/繼承文化起仁風(계승문화기인풍)/先人墨義皆緣此(선인묵의계연차)’/最貴從今襲楮功(최귀종금습제공)으로, 뜻은 ‘초시의 고장 전주를 아껴 두었다가/한옥과 한지와 정가를 함께 어우러지도록 하였네/천년의 업적을 기린봉 아래 일구어/만고의 명성을 세계 속에 전달하였네/특별히 빼어난 재능은 미풍양속을 기약하였고/좋은 문화를 계승하여 어진풍속을 진작하였네/선인들이 과거시험의 문답지를 이 한지로 인연하였으니/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닥나무의 공을 이어받은 것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네’로 풀이된다.
공직에 몸 담았던 김씨는 현재 도내 인사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패성한시회 회원이다. 김씨는 “대회를 앞두고 틈나는대로 운을 떼 선배들에게 조언을 얻은 것이 성과가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한시 공부를 꾸준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심사위원은 전 원광대 박금규 교수,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황안웅 교수, 단국대에서 동양학연구를 하고 있는 조동영 선생 등이 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