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나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걷기나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 김천식
  • 승인 2011.04.0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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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순례길 이야기]<12>순례의 의미

▲ 의암저수지

장 쟈크 루소(1712~1778)는 16세부터 여행을 하면서 사상가의 싹을 키웠고 여행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나 홀로 다닌 도보여행에서만큼, 그토록 깊이 생각하고, 살아 있음을 느끼고, 나 자신을 되찾았던 적은 없었다. 감히 말하건대, 오로지 내 발로 직접 걸었던 여행을 통해서만 그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걷기에는 생각에 생명을 주고 활기를 띠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

이제 걷기는 단순한 장소이동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도보여행, 콤포스텔라 같은 옛길 순례, 산책, 자기 확인, 자연과의 대화 등으로 그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다.

걷기나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원래 민영환은 욕먹는 존재였다. 그는 왕실의 핵심 외척이라는 가문의 배경으로 급격한 출세를 했는데, 왕실만을 중요시하고 백성에게는 관심이 없는 그의 인식 태도 때문이었다. 1894년 동학혁명을 이끈 전봉준이 “나라를 들어 먹고, 백성을 학대하는 자”라고 비난 했듯이 세간에 그의 평판이 그랬었다. 그러던 그가 ‘종래의 민판서’에서 변하여 ‘새사람’이 된 것은 조선이라는 한 나라를 벗어나 넓은 세계를 경험한 때문이었다.

베티나 셀비(Bettina Selby)는 자전거로 영국을 출발할 때는 무신론자였지만, 수 백 키로 를 여행하여 ‘별의 들판(Field of the Star)’이라 전해오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이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순례자의 길(Pilgrim's Road)』에서 “여행은 시간과 현실을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같은 현실을 다른 각도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야고보의 길과 유적지들에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힘이 스며 있는 것을 느꼈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순례 길에서 배운 겸손이 진정한 순례를 하도록 만들었다고 하였다. 이처럼 순례 길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변화시키고 평화가 깃들도록 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순례의 본질이 이러할진대 요즘 우리의 순례가 과연 그렇게 되고 있는지 반문 해 본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다녀간 사람들의 숫자와 함께 ○○길 167억, ○○○길 40억 대박 등 길을 통한 수익을 부각하였다. 물론 이는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는 것이므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길을 걸으며 자기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는 순례의 본질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 성지인 스페인의 ‘야고보의 길’이나 영국 켄터베리 순례길에서는 이벤트 행사를 벌인다던지 사람들을 유치시키려고 애쓰는 단체도 없다. 어디에도 상업적인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순례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표시만 해 놓을 뿐이고, 순례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은 지루하고 힘든 길이지만 묵묵히 자신과 싸우면서 40여일을 걷는다.

걷기를 경제적 가치에만 목적을 두거나 걷는 길을 지역경제 창출의 수단으로만 활용해서는 안 될 것이며, 자기 단체의 부각에 치중해서도 안 된다. 일반 길이던 순례 길이던 간에 길을 걷는 사람들로 하여금 명상 ㆍ 자기 성찰 ㆍ영적 단련 등에 몰입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걷는 사람들 또한 행사에 참가하는 생각으로 가거나 남이 다녀왔다고 하니까 나도 질세라 길을 나서는 것은 순례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산티아고의 길 처럼, 켄터베리 순례길 처럼 우리의 순례길에서도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순례길이 삶의 올바른 길을 제시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김천식 한국순례문화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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