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떠나고 싶거든 겨울 무창포로 가라
무작정 떠나고 싶거든 겨울 무창포로 가라
  • 새전북신문
  • 승인 2012.02.10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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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용 시인의 여행이야기]
▲ 보령 8경 중에 가장 으뜸으로 꼽는 게 무창포 해수욕장의 해넘이다. 해질녘 무창포는 황홀하기 그지없다. 바위섬들 사이로 해가 질 때는 숨이 막힐 정도다. 검은 바위들이 위로 해가 떨어져서 그런지 더 붉게 보인다.
바다는 여름을 즐기는 공간만이 아니다. 사실 피서객들이 몰리는 여름바다는 시장통이나 다름이 없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고적한 바다는 방문객들을 더 오롯하게 드러내준다. 그래서 사랑하는 연인들의 바다는 온전히 그들만의 공간이 될 것이다. 겨울바다는 존재를 더 존재답게 만드는 의식(儀式)의 공간처럼 보인다.

겨울이면 바다는 절대의 의식이 치러지는 제의(祭儀)로 가득하다. 파도는 온전히 그냥 파도다. 평소에는 잔잔하던 파도가 겨울바람에 격한 성을 낸다. 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짐승처럼 바다는 원시적이다. 갈매기도 온전히 그냥 조류로 돌아간다. 인간들이 먹다 남은 음식이나 탐내는 기생의 상태가 아닌, 직접 사냥을 해서 먹고 사는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어떤가? 겨울 바다에 서면 존재는 더 또렷해진다. 혼자 겨울바다를 걷는 사람은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또 연인끼리라면 그들만의 드라마가 있다. 겨울바다를 무대로 한 사랑의 드라마는 매우 극적이어서 잊을 수 없는 화문(花紋)으로 남는다. 이렇듯 겨울의 바다는 원시 본능으로 가득한 제의 공간이다. 그 겨울바다를 시인 김남조는 이렇게 노래했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김남조의 <겨울바다>
▲ 바다 밑이 주위보다 높아 물이 많이 빠지면 그 부분이 드러나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신비의 바닷길

여행은 작정을 하고 떠나는 것이지만, 그냥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곳이 내가 무창포를 찾은 이유이다. 충남 보령시 웅천면에 위치한 무창포는 그 이름만 들어도 아무 이유 없이 떠나고 싶어진다. 무창포를 접하기 전에 나는 무창(無窓)으로 해석했다. 창이 없다면 감옥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창을 둘 필요가 없는 광야를 지칭하기도 한다. 창이 없기에 자유로운 바다, 무창포(無窓浦)는 그런 곳이라고 혼자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무창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디선가 얽매이지 않은 영혼들이 몰려들 것 같은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가까이 있지만 영원히 갈 수 없는 곳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면서 말이다. 그런 무창포를 찾았다. 역시 원시의 본능이 가득한 바다는 모든 것을 발가벗은 나체의 상태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듯했다. 섬뜩하게 다가오는 겨울바다의 적의(敵意), 나는 온몸으로 그 무서운 바람과 맞섰다. 창이 없는 무한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영혼들이 몰려들 것 같은 그 무창포에 오직 나 홀로 서있었던 것이다.

무창포는 그냥 창이 없는 바다라는 자의적인 해석에 머무는 공간은 아니다. 무창포의 유서는 깊다. 무창포는 한자로 굳세 ‘무(武)’자를 쓴다. ‘창(昌)’자는 세력이 강하다는 뜻을 가진다. 굳세고 세력이 강한 포구라는 뜻으로 바뀐 무창포는 또 한편으로는 으스스하다. 왜 이런 이름이 생겨났을까?

서해의 목 좋은 포구들이 그렇듯이 이곳에는 조선시대 세곡을 모우고, 이를 조운을 통해 바다를 거슬러 한강을 타고 마포나루까지 옮겨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였다. 그러니까 무창포(武昌浦)라는 이름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충청도 서남부지방의 세곡들이 이곳으로 모두 모였으니 경비는 삼엄했을 것이고, 나라의 재산을 운반하는 일이니 보통 지엄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던 무창포에 해수욕장이 개장했다. 지금은 비록 인근 대천해수욕장이나 춘장대해수욕장보다 작아 보일지라도 해수욕장으로 치면 서해안의 맏형이다. 일제 때인 1928년 무창포해수욕장이 문을 열었다. 서해안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해수욕장으로 역사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왜 일제가 이곳에 해수욕장을 열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긴 백사장과 얕은 수심, 그리고 주변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송림만으로도 입지 조건을 충분했을 것이다.

무창포는 무한히 열린 바다가 아니다. 눈앞에 섬들이 잔잔하게 이어진다. 바로 앞에 있는 섬이 석대도이다. 석대도에는 아기장군의 전설이 남아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아기장군이 죽자 황새가 떼를 지어 나타나서 슬프게 울었다고 한다. 황새가 울었던 지역이 마치 돌로 좌대(座台)를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석대도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 검은 암반으로 이뤄진 무창포의 해안

아기장군이 이야기는 전국에 분포된 전설이다. 내용이 조금씩은 다르나 대충은 이렇다. 어떤 집에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날아다닐 뿐만 아니라, 힘도 엄청나게 세서 아기장군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기장군은 천하를 평정할 비범한 인물이라고 여겼다. 세상은 그를 늘 경계하고, 관가에서는 역적으로 변신할 것이란 우려로 잡아 없애려고 찾고 다닌다. 불안한 부모는 그를 피신시킨다. 할 수 없이 집을 나서는 아이는 부모님께 콩 닷 섬과 팥 닷 섬을 달라고 한다. 외진 섬으로 간 그는 콩은 말(馬)로, 팥은 군사로 만들어서 군사 훈련을 열심히 시킨다. 이제 출정만 하면 천하는 그의 손에 들어간다. 그런데 꼭 문제가 생긴다. 막 출정을 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발설하여 수포로 돌아가고 아기장군은 죽는다.

비극적인 전설이다. 아기장군 이야기는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민심이 강한 지역일수록 더 왕성하게 회자되었다. 그만큼 관리들의 가렴주구가 심했다는 증거인 것일 것이다. 무창포 지역이 국가의 세곡을 나르던 지역이었으니 그곳 민심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무창포와 석대도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라는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일 것이다. 무창포 해수욕장에서 석대도 사이의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전국에 알려 관광자원으로 만들고자, 보령군에서는 매년 8월초에 ‘무창포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열고 있다. 물론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극적으로 갈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육지의 언덕처럼 바다 밑이 주위보다 높아서 바닷물이 많이 빠지면 그 부분이 물위로 드러나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경우는 달과 지구와 태양이 일직선에 있을 때인 음력 그믐과 보름을 즈음한 시기이다. 올해는 설을 전후한 1월 22일부터 26일까지 길이 열렸다. 바다가 드러나면 관광객들은 석대도까지 1.5Km를 거닐면서 조개를 캐거나 맛을 줍고, 또 굴을 따는 등 색다른 체험을 한다. 이런 경험은 무창포 외에도 진도, 사도, 제부도, 서건도, 실미도 등 우리나라 11곳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무창포 바다가 이렇게 갈라지는 것은 바닥이 갯벌이 아니라 단단한 암반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수욕장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암반이 가득하다. 그 암반이 드러난 무창포 해안은 마치 제주 바다를 연상케 한다. 현무암처럼 검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위가 아직 깎이지 않고 남아 있는 바위섬들이 점점이 드러난다.

해질녘 무창포는 황홀하기 그지없다. 바위섬들 사이로 해가 질 때는 숨이 막힐 정도다. 검은 바위들이 위로 해가 떨어져서 그런지 더 붉게 보인다. 그래서 보령 8경 중에 가장 으뜸으로 꼽는 것이 무창포해수욕장의 해넘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해넘이를 연출한다.
▲ 개화예술공원의 모산 미술관

무창포만으로 밋밋하다면 그곳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개화예술공원을 찾아도 좋을 것이다. 2005년에 문을 연 이곳은 5만5천여 평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조각공원이자, 모산미술관과 육필시공원, 식물원 등을 갖춘 종합예술 테마파크이다. 특히 600여평의 허브랜드는 다양한 관엽식물과 수생식물을 비롯하여 각종 민물고기와 양서류들이 서식하는 자연학습장이다. 육필시공원에는 한국의 원로와 중진 시인들의 육필시를 역시 보령에서 많이 나는 특산물 오석(烏石)에 새겨 전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1,100석 규모의 야외무대인 화인음악당에서는 다양한 콘서트와 예술제, 그리고 각종 영화 등이 연중 상영된다고 한다. 개화예술공원은 그냥 눈요기만 하고 가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허브를 재료로 한 허브음식 만들기와 허브비누 만들기, 그리고 목공교실과 도자기 체험, 노젓기 체험,등 당양한 체험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직 눈발이 휘날리는 1월인데 허브랜드는 온실이라서 각종 꽃이 반발해 있다. 마치밖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포근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그런지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나 그야말로 봄날이 따로 없다. 열대식물들도 있지만 우리 야생화들도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다. 눈 속에 핀다는 복수초는 꽃이 한창이다. 어디 그뿐인가? 수선화도 피었고, 노루귀도 예쁜 꽃 자태를 드러내며 반갑게 맞아준다. 개화예술공원의 허브 꽃밥은 별미로 꼽힌다. 허브 꽃밥은 비빔밥이다. 반찬에 각종 허브를 넣고 초장을 쳐서 비벼먹어야 한다. 그런데 반찬이 아주 걸다. 음식도 맛깔스럽다. 이곳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한적하게 공원을 다시 돌다가 나왔다.

정말 무작정 떠나고 싶거든 겨울, 무창포로 가라. 아무도 없는 바다가 으르렁거리며 당신에게 물을 것이다. “너는 누구이고, 여기는 왜 왔냐?”고……. 그때 문득 또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여행은 차를 타거나 비행기나 배로 멀리 떠나는 것이라고 여기고들 있지만, 사실은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고 새롭게 삶을 추스려 앞으로 나가는 제의(祭儀)가 바로 여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시의 본능이 번득이는 겨울 바다, 그것도 떠도는 영혼들이 돌아와 쉴 것 같은 무창포는 지친 당신의 영혼을 위무할 것이다.

김판용(시인·황토현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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