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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민에서 벗어난다면 행복한 오월이다
[임병식 여행칼럼]길위의 세상이야기
2012년 05월 24일 (목) 임병식 기자 montlim@sjbnews.com
   
 
  ▲ 스페인의 파라도르 호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 물을 호텔로 개조한 일종의 국영 호텔이다.  
 
전주한옥마을의 출발은 초라했다. 지금이야 대한민국 관광의 별, 슬로시티, 가보고 싶은 여행지 100선 등 유명세를 치르고 있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푹 꺼진 기와지붕, 무너진 담장 등 슬럼화된 전주한옥마을은 심란했다. 부동산 시세는 바닥을 쳤고 매물은 눈처럼 쌓였다. 주민들은 너도나도 한옥마을을 떠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10여년만에 박색을 걷어낸 미인으로 변모했다. 사람이 몰리고 부동산 가격도 치솟았다.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놀라운 변신이다.

전주한옥마을이 조명 받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한옥이라는 전통 건축물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이미지가 볼거리가 된 것이다. 일정한 지역에 한옥이 군집함으로써 처마선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보기드문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도시화로 인해 대한민국의 도시는 자기 색깔을 잃었다. 반면 전주한옥마을은 자기만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전주를 다녀가는 이들에게 한옥마을에서 하룻밤은 각별한 추억으로 회자된다. 민박집은 물론 학인당, 동락원, 양사재 등에서 하룻밤은 호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당시 안동 하회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도시에서는 별을 보는 일이 쉽지 않다. 밤에도 잠들지 않는 수많은 조명들이 뿜어내는 빛의 간섭 때문이다. 그러나 하회마을에서는 별이 눈사태처럼 쏟아졌다. 해가 기울면서 마을에는 먹빛 어둠이 깔렸다. 마을과 맞닿은 논에서는 개구리가 울고, 강 건너 숲에선 소쩍새 울음이 어둠을 건너왔다. 저녁 식사후 나선 마실길 내내 머리 위로는 박덩이같은 환한 달과 별무리가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들기름 먹인 종이 장판 위에 깔린 햐얀 이불보의 감촉이 선명하다.

스페인 세비야(세빌리아)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스페인은 정부에서 ‘파라도르(Parador)’라는 호텔을 운영한다. 오래된 성(城)이나 궁전, 귀족의 저택, 수도원 등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호텔로 개조한 일종의 국영 호텔이다. 1928년 국왕 알폰소 13세가 그라나다에 세우기 시작한 이후 현재 93개의 파라도르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파라도르에서는 중세 분위기를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 스페인 톨레도, 그라나다, 말라가, 론다, 친촌, 세비야 등지에 파라도르 호텔은 그림처럼 서있다.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빼어난 전망을 갖고 있어 이용자 만족도가 높다. 세비야에서 묵었던 파라도르는 귀족의 저택을 개조한 건물이다. 호텔에 딸린 정원에서 저녁식사는 지금 떠올려도 멋진 기억이다. 이란의 남부 도시 이스파한에서도 그랬다. 한때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까닭에 이스파한 역시 저택들이 즐비하다. 거상의 저택이었다는 ‘미음자(ㅁ)’ 형태의 호텔은 축구장 크기의 정원을 품고 있다. 정원에는 분수가 있고, 꽃과 나무 사이론 물길을 냈다. 이곳에서 비단과 도자기, 향료를 실은 낙타와 상인들은 휴식을 취했다.

중국 소주에서 출발한 대상 행렬은 아득한 중앙아시아 초원을 건너 페르시아에 도착한다. 흔히 말하는 실크로드다. 긴 여행에 지친 이들에게 분수와 푸른 나무, 화려한 꽃에 둘러싸여 정원에서 푸짐한 저녁 식사와 아늑한 잠자리는 사막에서 만난 샘물과 같다. 이스파한을 다녀온지 6년여가 흘러 다른 기억은 희미해도 그곳에서 숙박과 만찬만은 또렷한 기억으로 남았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구경만 하고 나왔던 스페인 톨레도의 파라도르는 다시 가게된다면 꼭 묵고 싶은 곳이다. 그곳에서 조망은 압권이다.

전주한옥마을이 지속적인 관광지가 되려면 이런 류의 숙소를 확보해야 한다. 또 도내 전역에 전통 건축물을 활용한 독특한 호텔을 갖추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템플 스테이를 체험한 외국인들은 누구할 것 없이 각별한 추억으로 꼽는다. 저녁 및 새벽 예불, 사찰 건축 감상, 사찰 음식 맛보기 등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고택과 종택, 사찰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아쉽다. 무조건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스페인 파라도르, 포르투갈 포자도처럼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일부 스님들의 도박 파문으로 불교계가 소란스럽다. 스님들도 칠정(七情)(기쁨·성냄ㆍ근심ㆍ두려움ㆍ사랑ㆍ미움ㆍ욕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기에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자의 행동이라기엔 부끄럽다. 부처님 오신 날을 즈음해 사찰에 머물면서 깨달음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늦은 밤, 벌레 우는 소리에 잠을 청하고 새벽 법고 소리에 잠을 깨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번민에서 잠시라도 놓인다면 행복한 오월이다. /임병식 기자 montlin@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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