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기획> 한국문화 오디세이 <39> 전북의 미 (전통)꽃담

느리게 가는 세상살이의 교훈을 배우다

기사 작성: 이종근 기자 - 2012.09.20 23:08

상식을 뛰어넘는 담이 있다. (전통)꽃담, 말부터 참 예쁘다. 꽃담은 소통이다. 집주인의 성품을 드러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기꺼이 초청한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도 소망한다. ‘여기는 내 땅이야’, ‘타인 출입금지’식의 엄포가 없다. 질박하면 질박한 대로, 화려하면 화려한 대로 여유와 만족을 안다. 우리네 조상들의 마음씨를 빼닮았다. 그러나 속도와 경쟁에 정신을 앗긴 우리는 청맹과니처럼 스쳐 보냈을 뿐이다.

꽃담(기와 또는 전돌로 만든 전통담장, 굴뚝, 합각의 통칭)을 통해 선조들과 친근한 대화를 나누는 한편 느리게 가는 세상살이의 교훈을 오늘도 배운다.

기자가 올해로 전국의 꽃담을 찾아 나선지 15년째. 서울(11곳), 경기도(7곳), 강원도(2곳), 충청도(10곳), 전북(37곳), 전남(5곳), 경상도(15곳)로 확인돼 전북이 대한민국에 가장 많은 꽃담을 간직한 꽃담 1번지임을 직접 확인했다.(궁,능,흙돌담길,사고석담 흔하기 때문에 제외)

하지만 관계 당국의 무관심으로 인해 다양한 선의 굵기와 모양 등을 비교해 살펴볼 수 있는 임실 사선대의 꽃담은 와편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유명하지만 최근 들어 자취를 감추고 있소 아쉬움을 주고 있다.

문화재(등록문화재 등)로 지정된 것은 단 한 곳도 없는 상황으로, 체계적인 실태 조사가 절실한 시점이다. 자칫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문화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북에 전통 꽃담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그만큼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지역때문으로 분석된다.

기자가 연구 및 답사한 결과, 전주 전동성당 사제관에는 ‘십(十)’자 꽃담, 정읍 진산동 영모재는 솟을대문 좌우로 ‘쌍희(囍)’자, 임실 이강수가옥의 ‘갑자(甲子)글귀’, 군산 이돈희가옥과 김제 정성주씨댁에는 상(上)가 각각 한자가 시문됐다.

특히 임실 녹천재의 경우 왼편 담장에는 ‘버금 아(亞)’자 10여 개, 담장 오른편에는 꽃문양을 필두로 ‘용(龍)’자, ‘청(靑)’자, ‘아(亞)’자 4개, 태극 문양, ‘부(富)’자, 또 다른 태극 문양, 그리고 다시 ‘아(亞)’자 4개가 자리하고 있다.

고창 선운사 김성수별장엔 담장의 좌측에 ‘아(亞)’자를, 우측에 ‘쌍(囍)’자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꽃술을 2개씩을 거느리고 있다.

문양은 임실 영모재와 전주 한옥마을 최부잣집의 꽃담이 아름다우며, 선운사 김성수별장의 앙증맞은 굴뚝이 볼품이며, 고창 보정 김정회고가에서는 맞담을 만날 수 있다.

세부적으로 분석하면, 익산 김안균가옥의 벽화형 꽃담은 우리나라에서 경기도 남양주 백씨댁과 2곳만이 보고되는 가치를 지녔으며, 전주 전동성당사제관의 ‘십(十)’자 꽃담 역시 수원 방화수류정과 함께 단 2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순수회화와 실용회화 모두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사당은 국내에서 정읍 진산동 영모재는 솟을대문 좌우로 ‘쌍희(囍)’자가 자리하고 있으며, 권번의 역사까지 알 수 있게 하는 꽃담이다.

임실 녹천재의 꽃담은 우리나라 캘리그라피의 상징으로 다양한 글씨가 재실 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임실 영모재의 꽃담은 살아있는 효자도처럼 느껴진다. 임실 이강수가옥의 ‘갑자(甲子)글귀’는 꽃담에 건축 연대가 새겨진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지만 최근들어 공사를 해 원형이 훼손됐다.

전주 한옥마을 최부잣집 꽃담은 전동성장과 함께 전주 한옥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고창 보정 김정회고가의 맞담은 선생의 예술혼을 느낄 정도로 많지 않은 맞담이다.

전북의 꽃담은 요즘 바람이 불고 있는 ‘걷고 싶은 길’의 새로운 테마가 될 것이 분명하며, 건축, 디자인, 인테리어, 한국 소개 달력으로 활용됨은 물론 다큐멘터리, 간행물, 소설, 영화, 드라마, 음악, 게임의 부재료 및 주재료의 소재등 OSMU(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콘텐츠를 영화, 게임, 책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하여 판매하는 전략)로 널리 활용될 수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일례로, KT&G가 최근 전주시에 기증한 전주 태평문화공원의 하이라이트는 경복궁 자경전을 꼭 닮은 꽃담이다. 길상문자인 수복, 강령, 부귀, 다남, 만수, 쌍희(囍) 등을 벽돌로 무늬를 놓아 쌓은 까닭에 더욱 운치를 더한다. 전주 태평문화공원같은 꽃담이 주위에 보다 더 많이 세워져 우리들의 6감이 풍성히 넘쳐 흘렀으면 한다.

전북은 높은 조형미를 갖고 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전통 담장을 가지고 있다. 전통이란 민족의 생활 양식이 역사적 발전 과정을 거쳐 형성된 정신을 통하여 형식의 표현, 조형성 및 기법을 토대로 계승 발전되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으로 시련을 겪는 역사 속에서도 주변 국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특한 조형성을 오늘날까지 이어온 전북의 전통 담을 오늘날 서구화된 생활 양식과 조화되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시점이다. 이종근기자

전북의 (전통)꽃담 분포 현황

고창

용오정사(무장면 덕림리)/송양사(해리면 송산리)/인촌김성수 생가(부안면 봉암리)/김성수별장(선운사 내)/김정회고가(고창읍 도산리)/만수당(고창읍 도산리)/석탄정(고창읍 율계리)/무장현 관아와 읍성(무장면 현내리)

전주

전동성당 사제관/전주 한옥마을 최부자댁(승광재 옆)/서낭당로(합각)/구수길(합각)/조경단(덕진동)/조경단 제실(덕진동)/전주 은석동 전주류씨 여견재(색장동)

장수

장재영가옥(번암면 노단리)/어서각(번암면 노단리)/권희문가옥(산서면 오산리)/정상윤가옥(산서면 사계리)/창원정씨종가(산서면 사계리)

군산

이돈희가옥(임피면 읍내리)/이희숙가옥(나포면 주곡리)/원주변씨제각(나포면 장상리)

임실

영모재(신평면 대리마을)/녹천재(삼계중학교 뒤)/이강수가옥(오수면 용정리, 합각)

익산

조해영가옥(함라면 함열리)/김안균가옥(함라면 함열리, 벽화형꽃담)/함벽정(왕궁면 등용리)

정읍

김동수가옥(산외면 오공리)/정읍 영모재(진산동)/태안박찬로광산김씨효려(시기3동 초산)

완주

호산서원(삼례읍 후정리)/삼례역(삼례읍 후정리)/화암사(운주면 경천리, 굴뚝)

김제

정석주가옥(금산면 성계리)/금구(금구면 서도리, 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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