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화투 이야기
[데스크의 눈] 화투 이야기
  • 정 복 규/수석논설위원
  • 승인 2012.11.14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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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를 고안해 낸 사람은 일본인이다. 48장으로 구성된 화투는 일본 문화의 축소판이다. 19세기말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뱃사람들에 의해 한국에 유입되면서 화투로 불리게 되었다. 화투에는 일본 고유의 세시풍속, 월별 축제와 갖가지 행사, 풍습, 선호, 기원의식, 그리고 교육적인 교훈까지 담겨져 있다.



1월의 화투 문양에는 태양, 학, 소나무가 있다. 태양은 새해의 일출을, 학은 장수와 가족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나타낸다. 일본인들은 1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소나무를 현관 옆에다 장식해 두고 조상신과 복을 맞아들인다. 2월의 문양에는 꾀꼬리와 매화가 나온다. 일본의 매화 축제는 2월에 열린다. 꾀꼬리는 도쿄의 지명에도 남아 있을 만큼 일본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새다.



3월의 문양은 온통 벚꽃이다. 벚꽃 밑에 그려진 천막은 일본인들의 경조사 때 사용된다. 4월의 문양은 등나무 꽃이다. 4월은 일본에서 등나무 꽃 축제가 열리는 계절이다. 보라색을 띤 등나무 꽃은 마치 포도송이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두견새는 일본인들에게 사랑 받는 새다. 한국 사람들은 등나무 꽃을‘흑싸리’로 잘못 알고 있다.



5월의 문양은 붓꽃이다. 붓꽃은 보라색 꽃이 피는 습지의 관상식물이다. T자 모양의 막대는 붓꽃을 구경하기 위해 정원 내 습지에다 만들어 놓은 산책용 목재 다리다. 3개의 작은 막대기는 목재 다리를 지지하는 버팀목이다. 6월의 문양은 모란과 나비이다. 모란은 일본인들의 가문을 나타내는 문양으로 널리 사용된다. 동양에서는 모란꽃을 꽃의 제왕으로 여긴다.



7월의 문양은 싸리나무다. 멧돼지가 나온 것은 일본에서 성행했던 멧돼지 사냥철이 7월이었기 때문이다. 8월의 문양에는 산, 보름달, 기러기 3마리가 있다. 일본에서 8월은 달구경의 계절인 동시에 철새인 기러기가 대이동을 시작하는 시기다. 일본의 화투에는 억세 풀이 있다. 반면 5점짜리 화투도 없고, 홍색이나 청색 띠도 없다. 제일 바쁜 추수철이라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의미다.



9월의 문양은 국화다. 9월은 일본에서 국화 축제가 열리는 계절이다.‘목숨 수(壽)’자가 새겨진 술잔은 9세기경인 헤이안 시대부터‘9월 9일에 국화주를 마시면 무병장수를 한다.’는 일본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국화는 일본의 왕가를 상징한다. 권력자들은 흐르는 물에다 술잔을 띄워놓고 국화주를 마시면서 권세와 부귀를 기원했다. 10점짜리 화투는 자기 맘대로 쌍 피가 될 수도 있고, 10점짜리 화투로 남을 수도 있는 특권이 있다. 10월의 문양은 숫사슴과 단풍이다. 일본에서 10월은 단풍놀이의 계절인 동시에 본격적인 사슴 사냥철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한국과 달리 11월 문양이 오동이다. 속칭‘똥광’으로 불리는 오동의 광(光)은 광으로도 쓸 만하고 피(皮) 역시 오동만이 유일하게 3장이다. 검정 색깔의 오동잎은 일왕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막부(幕府)의 쇼군을 상징한다. 봉황새의 머리는 쇼군의 품격과 지위를 상징한다. 9월의 화투 문양인 국화와 11월의 화투 문양인 오동 중에서 더 끗발이 센 것은 당연히‘오동’이다. 국화만 가지고 있게 되면 광 박을 뒤집어쓰지만, 오동의 광을 갖고 있으면 광 박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의 문양에는 양산을 쓴 선비, 시냇가 그리고 개구리가 등장한다. 이 선비는 일본 교과서에 소개된 적이 있는 10세기경 최고의 서예가‘오노’이다. 붓글씨에 몰두하던 그는 어느 날 방랑길에 올랐다가 개구리 한 마리가 수양버들에 기어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았다. 개구리가 실패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오르는 모습을 본 오노는“하물며 인간인 내가 여기서 포기해서 되겠는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결국 그는 당대 일본 최고의 서예가가 되었다.



‘비’피의 문양은‘죽은 사람을 내보내는 일종의 쪽문’으로서 라쇼몬(羅生門)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일본에서는 1950년 라쇼몬이라는 영화가 제작돼 관심을 모았다.‘비’피가 쌍 피로 대접받는 것은 귀신을 잘 대접해야만 해코지를 면할 수 있다는 의식 때문이다.



( 정복규 새전북신문 수석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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