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식량창고 만금평야의 젓줄…'네오(Neo) 벼고을'로 부상
한민족 식량창고 만금평야의 젓줄…'네오(Neo) 벼고을'로 부상
  • 정성학 기자
  • 승인 2015.03.05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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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이야기가 있는 "전북이 최고"]■ 김제 벽골제
▲ 벽골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동양에서 가장 큰 고대 저수지이다. 국내에서 가장 넓은 곡창지대인 김제 만경평야의 젓줄로, 그 호안 넓이는 전주 월드컵경기장 5,200배에 달한다. 그 주변에는 박물관, 미술관, 아리랑문학관, 청소년수련시설 등이 잘 갖춰졌다.



흔히, 전북을 농도라 부른다. 그만큼 유구한 농업사를 자랑한다. 그 중심에는 국내 최대 곡창인 김제 만경들녘이 있다. 금만평야, 또는 만금평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그 젓줄이 바로, 벽골제다. 벼고을의 호수란 뜻으로, 호남과 호서지방을 가르는 기준점이기도 하다.


김제 부량면 일원에 건설된 벽골제(사적 제111호)는 국내 최고령 인공 저수지다. 지금으로부터 약 1,700년 전인 백제 비류왕 27년(330년)에 쌓았다고 전해진다. 충북 제천 의림지, 경남 밀양 수산제와 더불어 삼한시대 3대 수리시설로 꼽히기도 한다.

그 규모도 대단하다. 길이는 약 3.3㎞, 면적은 37㎢에 이를 정도다. 서울 여의도 4배, 전주 월드컵경기장 5,200개 가량을 만들 수 있는 넓이다. 현존하는 고대 저수지론 동양 최대 규모다.

연인원 32만여 명이 동원된 당대 최고 국책사업이었다고 한다. 변변한 삽자루 하나없던 농경사회였던 점을 떠올리면 얼마나 큰 대공사였을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선조들은 왜 이처럼 큰 저수지를 만들었을까?

바로, 국내 유일한 지평선인 김제 만경들녘에 물을 대기 위해서였다. 이 곳의 옛 지명은 벼고을. 말 그대로 주식인 쌀농사를 짓던 고장이란 뜻이다. 모악산 일원에서 발원한 원평천과 두월천 등의 물을 가둬놓고 농삿철에 공급했다는 얘기다.

벼고을은 그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국가존속에 필요한 식량 창고였다고나 할까? 조선후기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는 그 드넓은 땅에 탄복한 나머지 엎드려 큰 절 올리며 ‘생명의 땅’이라 경탄했다고 한다.

그랬던 생명의 땅은 일제강점기 수탈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벼고을에서 생산된 쌀은 군량미로 빼돌려졌고 젊은 청년들은 군사시설 건설 등에 강제 동원됐다. 지평선의 끝자락 진봉반도 건너편에 건설된 수탈항(군산항), 전투기 조종사를 기르던 다쓰하라 비행학교(군산공항), 국내 첫 신작로인 수탈길(전주~김제~군산 번영로)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 벽골제에는 착한 백룡과 못된 청룡이 살았는데 청룡에게 목숨받쳐 그 제방을 지켜냈다는 단야낭자 설화, 두 용의 다툼에서 백룡을 도와 가문이 융성했다는 조연벽장군 설화 등 다양한 옛 이야기도 전해진다.



뼈아픈 벼고을의 수탈사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도 잘 표현됐다. 당시 벽골제도 농토로 메워졌고 수리시설은 크게 훼손됐다. 그 대체 수자원으로 정읍 임실에 섬진강댐을 만들면서 벌어진 일이다. 벽골제는 그렇게 수문과 제방 정도만 남겨진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독립, 70주년을 맞아 새로운 생명의 땅으로 거듭나고 있다. 벽골제는 3년 연속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평선축제의 현장으로, 수탈길 중심인 백구는 농생명산업을 일으킬 육종연구단지로, 그 끝자락인 진봉반도는 지평선을 연장할 새만금 간척지로 탈바꿈했다.

벽골제는 그렇게, 관광과 농생명이 결합된 차세대 성장동력 ‘네오(Neo) 벼고을’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정성학 기자 csh@sjbnews.com



◆호남과 호서, 그리고 벽골제

▲ 벽골제는 중앙정부가 선정한 3년 연속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평선축제의 현장이기도 하다.


흔히 지명은 중요한 건축물이나 자연환경 등을 토대로 짓는게 상식이다. 그렇다면 전라도와 충청도를 아울러 통용되는 호남(湖南)과 호서(湖西)란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우선, 두 명칭이 현존 국가기록물에 첫 언급된 것은 세종 29년(1447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이란 것은 잘 알려졌다. 말 그대로 호수의 남쪽과 서쪽지방이란 뜻이다. 하지만 그 호수가 어딘지는 정확히 지칭하지 않아 모른다.

뜻밖에도 그 실마리는 조선후기 야사집에서 풀린다. 바로, 당대 학자였던 이긍익(1736~1806)이 태조~숙종 때까지 여러 야사를 모아 기록한 연려실기술이다. 내용인즉, 벽골제를 기준삼아 그 남쪽과 서쪽을 각각 호남과 호서라 불렀다는 얘기다.

물론, 학계 안팎에선 다른 의견도 적지않다. 금강의 옛 이름인 호강(湖江)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장수에서 발원해 충청권을 거쳐 군산 앞바다로 흐르는 호강을 기준삼아 그 남쪽과 서쪽을 호남과 호서라 불렀다는 얘기다.

단, 부인하기 힘든 사실은 있다. 예나 지금이나 만금평야가 국내 최대 곡창지대란 점, 특히 그 젓줄인 벽골제가 국내 최고령이자 동양 최대 인공 호수였다는 점은 변함없다.

/정성학 기자 csh@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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