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에 살면서 아주 철저하게 아파트형 인간으로 사는 사람은 이 동네에서 당신 밖에 없을 거예요. 이 동네 다른 남편들은 퇴근하자마자 허드레 옷으로 갈아입고 부산하게 정원 손질을 하는데 당신은 너무해요”
그렇지 않아도 관리하기 너무 버거워서 지난해에는 정원에 있는 잔디를 다 뽑아버렸다. 한국식 전통 정원에는 잔디를 심지 않는다는 핑계를 댔다.
한국식 정원은 담양 '소쇄원' 에 가보신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인위적인 조작을 하지 않는 것을 최고로 친다. 계곡이 흐르면 그 계곡을 포함해서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가도록 정원을 꾸미는 것이 우리네 방식이다.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담하나 치면 그게 곧 가장 자연스러운 정원이 된다.
중국의 정원은 계급사회의 위계질서를 표방해서 웅장하고 화려하게 과장하여 위압감이 들며, 일본은 오밀조밀하게 자연을 축소지향으로 옮겨와 쳐다만 볼 수 있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정원이다. 이에 비해 한국정원은 놀이를 해도 되고 잔치를 해도 되고 어떤 일이든지 가능하며 또한 행사가 끝나면 깨끗이 비워지는, 그래서 끝없는 사유의 세계로 인도하는 가득차 있으면서 비워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직벽 쌓기로 정원을 만들고 잔디를 심지 않는다. 그냥 흙으로 나눈다.
정원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정자' 가 있다.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자연을 인공으로 변형시키지 않고 최대한 순응하여 지은 정자다. 정자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이며 바다며 산들은 모두 한국식 정원의 확대 개념이다. 게다가 벽이 없이 360도 열린 개방성, 모두가 함께 모여 보고 나누고 공유하는, 바둑과 노래를 즐기고, 함께 술을 마시는 휴식과 놀이의 공간이라는 점, 그리고 그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광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비친 모습도 매우 아름답지만 그 시선을 받고 있는 아래에 있는 사람이 그 정자를 올려볼때도 역시 무척 아름답게 보이는 쌍방향 시점의 예술이라는 점을 들어 이어령은 '정자시점'이라는 표현을 한다. 말하자면 이런 특징의 정자 시점이 인터넷의 사이버 공간이나 인터랙티스 디지털 텔레비전 같은 뉴미디어 투 웨이 커뮤니케이션의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정원의 마지막 중요 포인트는 담의 높이다. 중국의 임어당이 중국을 가로막는 세 가지 만리장성으로 만리장성, 또 하나는 상해의 높은 담, 그리고 배우기 힘든 한자를 들었다고 하니는 것을 보니 중국의 정원은 담이 높아서 나 같은 일반인은 들어가기 힘든 곳인가보다. 거기에 비하면 일본의 돌담은 서양인이 담과 비슷하게 숫제 담이란 게 없고 내부가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돌담은 '보일락 말락 하는' 반개방성이다.

이런 전략으로 일요일 10시부터 우리 집 정원 꾸미기를 했다. 우리 집은 현대식 벽돌-콘크리트 집이지만 전통 'ㄷ' 자 가옥을 흉내 내어 가운데 정원이 있고 정원의 높이를 성인 배꼽 위로 올리고 조형물로 테두리를 돌려 꼭 약간 까치발을 하면 잘 보이는 구조로 되어있다.
살다보면 정말 몸이 더할 나위 없이 편하기도 하면서 아주 행복한 일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아니 아예 별로 없는 듯하다. 친한 친구중에 대만의 유명한 IT 업계의 사장도 있고, 베트남의 유명한 외국계 기업의 대표도 있는데 그 분들만 봐도 정말 불철주야 일한다. 그들과 소셜메시지를 가끔 주고받는데 과장해서 말하면 1주일에 하루 집에 들어가기 일쑤고 한 달에 절반은 외국출장을 가는 것 같다(물론 3평 남짓한 진료실에서 하루 종일 환자보는 나보다는 훨씬 좋아보이지만). 겉에서 언뜻 볼 때는 그들은 능력이 출중하여 쉽게 돈을 벌고 나보다 좋은 데도 많이 가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 먹으며, 풍요롭고 여유롭게만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들은 퇴근도 없이 죽게 일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만족하는지, 그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또다른 부분이다.
나는 페이스 북의 창업자가 우연히 놀다 행운을 거머쥔 신흥 갑부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혁신’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혁신은 빨리 움직이고, 많은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이 말로 유추해 보면 창의란 어찌 보면 단순히 영리한 머리를 의미한 것이 아니고 부지런한 ' 태도' 와 노력하는 '땅방울' 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건강도 아주 간편하고 더할 나위 없이 편한 한알의 약보다 '땀방울'이 더 값질 때가 태반이다. 내가 전공하는 '척추'는 먹어서 튼튼해지는 약이 거의 없다. 땀방울이 약이다.
몸의 행복은 아이러니 하게도 몸의 불행(노력, 땀방울)과 동반자다.<전주 우리들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