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아침이 만찬이다. 아내는 매 끼니마다 갓 지은 밥에 식구들이 각각 좋아할 만한 반찬을 따로 해서 식탁 위에 올린다. 하루 세끼를 집에서 먹는 '삼식이 남편'은 그렇다 치고 아이가 다섯이나 되다 보니 국이나 찌개를 제외하고도 매끼마다 최소 5첩 반상은 되는 셈이다.

외식을 싫어하는 나는 아이가 셋일 때는 가끔 도시락을 싸들고 병원에 출근하디고 했다. 그러던 것이 다섯째 아이나 태어나고 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일주일 내내 육아와 사람에 모든 힘을 소진해 버린 아내가 주말 두 끼 정도는 외식으로 해결하자는 타협안을 내 놓은 것이다. 살림에 지친 아내의 '파업 방지'를 위해 그 후로는 주말마다 간단한 외식이나 아내가 제시하는 간이 식단을 따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지난 주 일요일 아침은 누룽지였고, 점심은 국수와 라면이었다. 가끔은 내가 잘 입에 대지 않던 새로운 요리들도 등장한다.
문제는 토요일 저녁에 시켜 먹은 '후라이드 치킨' 이었다.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공교롭게도 나와 셋째만 탈이 났다. 나는 계속 화장실에 들락거리느라 밤잠을 설쳤고, 셋째 녀석도 아예 변기통 옆에 드러누울 만큼 배탈로 고생을 했다. 유독 우리 집에서는 셋째가 성격이나 식성이 나와 99% 싱크로율을 보일 만큼 닮았다. 그 반면에 아내와 첫째 아이는 육류를 무척 좋아한다.

논어에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요, 好之者 不如樂之者 니라' 는 구절이 있다. 도(道) 를 아는 자가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가 즐기는 자만 못한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도 없고 특히나 자신이 즐기는 것은 혹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와도 어지간해서는 핑계를 대지 않는다. 말하자면 육류를 즐기는 사람은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어서가 아니라 상태가 좋지 못하거나 좀 변성된 고기를 먹어도 탈이 잘 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고기를 자주 먹어도 질려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채식을 좋아하는 나는 약간 맛이 변하기 시작한 나물을 먹어도 탈이 잘 나지 않는다. 이렇듯이 한 식탁을 공유하는 가족들에게도 개인마다 타고 나는 체질들이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는 한 겨울에 반팔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다니면서 감기라는 걸 몰랐다. 그에 비해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이면 항상 머리에서 발끝까지 무언가를 뒤집어쓰고 다녔지만 툭하면 감기로 고생을 했다.

나에게도 남과 비교해 '타고나' 건강 부위가 있으니 바로 척추다. 추간반탈출증이나 협착증 치료를 위해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분들에게 가끔 보여주는 '정상인의 MRI 사진' 은 사실 내 허리를 촬영한 것이다. 환자들에게 적당한 운동이 허리에 좋다고 항상 말하지만 정작 나는 거의 운동을 하지 못한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최근 일주일에 두세 번 50분 정되 되는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한다. 늘 병원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게을리 하면서도 이렇게 허리 상태를 좋게 유지하는 것은 순전히 부모님 덕분이다. 일흔이 넘으신 아버님의 허리가 40대인 내 허리와 별반 다름이 없을 만큼 우리 집안 남자들의 허리 건강은 타고 났다.
사람의 건강은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이 50%정도 되는 것 같다. 그것을 좀 유식하게 말하며 'DNA' 또는 '유전' 이라 한다. 나머지 50% 중 절반은 우리가 노력 여하에 따라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좀처럼 실천하기 어려운 요소다. 말하자면 "찌든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물 좋고 공기 좋은 히말라야 산 밑으로 이사해 유기농으로 가꾼 음식을 먹고, 정신적 스트레스 없이 다만 수도자처럼 적당한 육체노동을 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우리가 지금과 같은 생활을 영위하면서 건강을 우지,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남은 25%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개인의 먹는 습관, 자는 습관, 스트레스 대처법, 작업 습관, 작업 환경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래서 건강은 개인적으로 보면 순전히 내 책임도 아니고 내 책임이 아닌 것도 아니다. 알지 못했던 병에 걸렸을 때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낙담’ 할 일도 그리고 남 때문이라고 ‘원망’ 하고 ‘억울해’ 할 일도 아니다.

내가 직접 나의 몸에 개입해서 건강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내 몸이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건강에 대해 보다 겸손해 져야 한다. 사회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스트레스, 증오나 미움 등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그 25% 의 건강마저 제대로 보존해 물려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건 곧 내 아이들에게 50%의 핸디캡을 떠안기는 것과 마찬가지다.<전주 우리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