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제일 싫어하는 남편의 모습이 밖에서는 아이들이 뛰고 장난치느라 난장판인데 혼자 조용히 자기 서재에 들어가 음악이나 들으며 책을 읽는 남편의 뒤통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일요일, 모처럼 음악을 틀어놓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으면 나 역시 곱지 않은 아내의 눈빛을 느껴져 뒤통수가 따가워진다.
다둥이 아빠인 나에세 책읽기는 밀려드는 죄책감을 끊임없이 억누르며 책상에 앉아 있어야만 하는 고되고 힘든 작업이다. 그래도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사람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무언가를 읽는다’는 카프카의 말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가끔 “나한테 책읽기는 일종의 직업훈련이야. 의사는 면허증으로 하는 게 아니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나를 키워야 하는 직업이라고!”라고 항변하면 아내는 헛웃음을 치며 이렇게 말한다.

“왜 그러세요, 그거 당신이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좀 솔직해져 보시라고요.”
아내는 쉽게 동의하지 않지만 아무리 솔직히 말해도 책읽기는 절대 사사로운 개인적 취미활동이 아니다. 취미활동은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고 내 책읽기는 ‘꿈’을 이루기 위해 시간을 내서 하는 공부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꿈이 더 큰 출세와 성공이 아니라 직업적 소명과 도덕적 삶의 자세 같은 것이라는 이유로 비난한다면 필자 역시 더는 할 말이 없지만···.

사전적으로 보면 솔직하다는 말은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다’는 뜻이다. 솔직하다는 말을 들으면 필자는 먼저 거울이 생각난다. 거울은 정말 가감 없이 나를 비춰서 나를 적나라하게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도박이 벌어지는 카지노 객장에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아예 거울을 없앴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솔직함’이라는 거울을 자신을 돌아보는 대신 남의 허물을 비추는 데만 유용하게 쓰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동료 의사가 그런 경우였다. 세상이 온통 불만투성이인 그는 환자에게 행해지는 모든 치료나 시술에 대해서도 “솔직히 이거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야? 솔직히 이거 효과나 있어?” 라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 몸이 좋지 않은 직원에게 잠시 쉴 것을 권유하는 원장님을 두고도 “솔직히 원장이 월급 나가는 거 아끼려고 저러는 거 아니야. 사람 좋은 얼굴로 얘기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거 다 쇼야”라고 폄하했다. 그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리며 필자는 ‘솔직함’이란 거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의 본 모습을 비출 때 더 큰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진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때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라는 말을 앞세워 어느 일면을 전체인 것처럼 부풀려 남을 비난하고 공격하는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이들이 말하는 솔직함이란 기껏 자신의 열등감에 대한 포장이거나 남이 잘되는 것, 남이 칭찬받는 것에 대한 시기심을 감추려는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솔직히···”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경험에 의하면 진짜 솔직한 사람은 ‘솔직히’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사람의 몸도 솔직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주변에 보면 이전까지는 어떤 증상도 없었는데 어느 날 속이 거북해서 병원에 갔더니 이미 위암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분들이 있다. 또 무거운 물건을 들다 허리가 삐끗해서 병원을 찾아온 환자 중에도 증상이 쉽게 호전되지 않아 MRI를 찍어보면 이미 협착증이나 디스크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뇌졸중 역시 혈관 속에서 동맥경화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온다.
그런 환자들을 볼 때마다 필자는 차라리 솔직하게 초기부터 병의 증상이 심하게 발현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몸이 조금 더 솔직했더라면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뇌졸중 같은 병들도 전혀 증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몸에 이상이 나타나면 끊임없이 우회적으로 미세한 신호를 우리 몸에 보낸다. 그걸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거울에 내 몸이나 생활습관을 ‘솔직하게’ 비춰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비추기보다 항상 타인의 생활, 타인의 물건에 더 집중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진정한 의미의 솔직함을 잃어버렸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항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이 가진 것, 누리는 것에 시선을 빼앗기기보다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고 몸에 정중하게 말을 거는 솔직한 시간을 지켜보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방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솔직해야 할’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전주우리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