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나는 대로 논문도 읽고, 의학기사들도 스크랩하여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석 달에 두 번꼴로는 다양한 학회에 참석합니다. 진료실 일선에서 체험형 학습이 가장 중요한 스승이지만, 경험만으로 내 자신의 독특한 의학 이론을 정립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자격지심인지 사람의 몸은 내게 주어진 주관식 시험 문제인데 남이 풀어놓은 해답을 커닝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봅니다.
학회장으로 가는 그 날이 헌재에서 ‘대통령 탄핵 가결’이 된 날이었습니다. 촛불집회에 가담하지는 못했지만 탄핵을 누구보다 지지했던 터라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운전기사에게 짐짓 “오늘 탄핵 되어서 기쁘시죠?” 하고 물었습니다.
대한민국 상식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나와 같이 생각할 거라는 판단이었습니다.“전 사실 탄핵이 되거나 되지 않거나 아무 상관없어요. 저같이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그래요. 저에게 중요한 것은 탄핵이 아니라 지금 광화문 앞이 막히느냐, 뚫리느냐 하는 것이에요. 광화문이 막히면 저 같은 택시운전사들은 할 게 없거든요”
마치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했다. 숙연해졌다. 어쩌면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배부른 사람들의 ‘푸념’이나 ‘허영’같이 느껴졌습니다.
며칠 전에 비슷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 3호선에서 어떤 중년 남자가 타서는 시끄럽게 “뭘 반대한다. 뭘 해산하라”는 구호를 하며 세상에 온갖 쌍욕을 퍼부었답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한마디씩 하는데 1인 시위할 권리가 있다며 흔히 말하는 진상 떠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답니다. 열차가 다음 역에 접어들어 “이번 역은...,내리실 문은...” 이라는 소리가 나자마자 거의 동시에 그 칸에 탄 사람들이 “내려!!!” 라고 단체 함성을 질렀다는 기사였습니다.

학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택시에 올라타서는 “오늘 탄핵 축하 공연이 있다면서요. 그나마 잘된 일이죠” 했는데 “전 그런 거 모릅니다. 그냥 제가 일찍부터 부모님 없이 자라서 그런가......그 여자 그냥 하염없이 불쌍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부모 없이 자라는 설움 같은 거요”
아침저녁으로 택시 안에서 선불교의 화두를 건네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라는 것이 어쩌면 내 주관적인 생각, 말하자면 편견일 수도 있구나하는 깨달음 같은 것 말입니다.
뼈는 인체의 중심 기둥이라고 합니다. 특히 척추는 건물의 기둥 또는 대들보라고 비유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뼈를 정부 기관이라고 유추해서 생각해도 되고, 대통령 같은 유력한 정치인이나 정당이라고 가정해도 될 것 같습니다.
탄핵을 비롯한 현 정치 전반을 그러면 사고로 뼈가 다친 경우에 상응한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뼈가 타박상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러진 ‘골절’ 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런 골절의 상황에서 치료 방향을 정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물론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뼈가 부러져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뼈가 골절이 되어있다고 해서 모두 수술을 하는 것은 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뼈가 골절이 되었을 때 이 환자를 수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는 열쇠는 뼈보다 그 뼈 주위에 붙어있는 디스크-인대 복합체입니다. 인대 손상이 같이 동반되어 있어야 수술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대가 괜찮으면 설령 뼈가 골절이 되어있어도 수술을 하지 않고 보존치료를 합니다. 물론 뼈가 너무 심하게 손상을 당하면 ‘탄핵’처럼 뼈 자체 때문에 수술을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골절 자체로만 수술이 결정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디스크-인대 복합체는 저 같은 민초들, 평민들, 시민들이 아닐까요? 정권이 바뀌고 체제가 바뀌어도 민초들은 별 동요 없이 생활 전선에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뼈가 부러져도 인대가 멀쩡하면 수술을 하지 않는 것처럼, 정책이 형편없고 정부가 무능해도 민초들은 들풀처럼 그 자리를 지키며 뼈를 받쳐주듯, 국가라는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 소임을 다 해왔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큰 무리 없이 이 사회와 이 나라가 지탱이 되는 것은, 자기가 더 잘났다고, 또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몇몇 정치인들이 아닙니다. 하찮은 인대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택시 운전기사,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 시민들 같은 민초들의 덕택입니다.
마치 자신만이 인체의 기둥인 뼈가 될 수 있으며, 뼈만 있으면 달릴 수 있다는 착각을 또다시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