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김장김치
응답하라, 김장김치
  • 송영애(전주대학교 연구교수)
  • 승인 2017.11.1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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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음식을 맛보다] ■똥개-김치

너 없인 못 살아
2006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100가지 한국 민족문화 상징’을 발표하였다.
우리 민족이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간적‧시간적 동질감을 바탕으로 형성되어온 문화 중에서 대표성을 가진 100가지다. 음식 분야에서는 전주비빔밥, 한우, 떡, 고추장, 불고기, 냉면 등과 함께 한국인이 창조해낸 채소발효식품의 으뜸으로 김치를 선정하였다.
2013년에는 함께 만들고, 나누는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무형유산의 의미를 살펴보면, “김장, 더 넓게 ‘김치를 담그는 것’은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김장은 한국의 문자 체계인 ‘한글’이나 ‘태극기’와 비교될 정도로 중요하다고 여겨진다.”라고 밝혔다.
2년 후에는 북한도 ‘김치 만들기’가 등재되었다. 비록 한반도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김치라는 주제로 둘 다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셈이다.
며칠 전에는 문화재청에서 ‘김치 담그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늦었지만, ‘김치 담그기’는 ‘김장문화’보다는 넓은 개념으로 보고 있다. 다만, 김치 담그기는 고도의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기보다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전승되는 생활 습관이고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단체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역으로 해석하면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 모두가 보유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인에게 김치는 무엇일까? 가수 정광태가 부른 김치 주제가의 노랫말이 대신해주는 것 같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 진수성찬 산해진미 날 유혹해도 김치 없으면 왠지 허전해 /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나는 나는 너를 못 잊어 / 맛으로 보나 향기로 보나 빠질 수 없지 입맛을 바꿀 수 있나”


정우성도 담근 김치
< 똥개>(Mutt Boy, 2003). 얼굴 천재로 이름난 정우성 주연 작품이다. 주인공 철민은 의리도 정도 있지만 사는 모습이 지질하여 정우성에게는 모험 같은 영화출연이었다.
이전의 <본 투 킬>(Born To Kill, 1996), <비트>(Beat, 1997), <태양은 없다>(City Of The Rising Sun, 1998)의 배역과는 달리 정우성답지 않은 면에 보는 사람도 어색한 영화다.
철민은 어렸을 때 엄마를 잃고, 아빠 차반장(김갑수)과 함께 지낸다. 배가 고프면 동네 아무 집에나 가서 밥을 먹는 바람에 ‘똥개’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계란 후라이 하나로 차반장과 싸우고 정말 말 그대로 ‘그냥 그냥’ 하루를 보내는 아무 생각 없는 청춘으로 자란다. 선배들과 싸우고 나서 퇴학까지 당한다. 딱히 할 일이 없다 보니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하게 된다.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하고 그리고 빈둥거리는 게 전부다.

철민은 아침밥을 먹으며 차반장에게 말한다.
“돈 좀 줘바.”
“뭐 한다꼬?”
“김치 담가야 한다.”
“얼마?”
“그기…. 한 십만 원이면 안 되겄나?”
“돌았나 인마? 십만 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차반장은 기껏 만 원 한 장 던져주고 나간다.
철민은 바구니 하나 들고 시장을 어슬렁거린다. 파도 배추도 사더니, 고무장갑을 끼고 나름의 배추김치를 담근다. 퇴학하고 나니 소위 노는 친구들이 철민에게 다가와 협박하듯 말한다.
“싸움해서 지면 우리 모임에 들어와야 한다. 물론 지면 안 들어와도 좋다.”
“니그 점심 묵었나?”
“아직 안 묵었다. 와?”
“그라모 김치에다 밥 좀 먹고 하자. 어차피 싸움도 힘이 있어야 할 거 아닌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철민이 갑자기 멋있어 보인다.

싱건지와 동치미와 사이에서
김장철이다. 벌써 김장을 끝냈다면 어려운 숙제를 다 한 듯 마음이 가벼울 것이다. 김치냉장고에 김치가 채워지는 순간, 부자 된 기분이다. 겨울 걱정도 사라진다.
2016년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김치 소비량은 36.1Kg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올해 김장을 하겠다는 비율도 65%로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김장의 중요성과 함께 가족들의 입맛에 맞는 1년 반찬을 마련해두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김치를 1년에 한 번도 먹지 않는다는 국민도 5.2%에 달한다.
산업화 시대에 접어든 지금은 농경문화 전통에서 탄생한 김장 문화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동네 품앗이로 김장을 했다. 많은 시간도 손도 함께 나누었다. 가족이 많은 집에서는 여전히 ‘한 가족’임을 보여주듯 아들, 며느리, 딸까지 모인다.
몇 년 전부터는 김장축제장에서 체험하듯 버무려 오기도 한다. 어느 축제에서는 ‘김치통만 가지고 오세요.’라고 홍보한다. 또 ‘김장은 30분에 뚝딱 마치고, 보쌈을 즐기세요.’라는 문구도 보인다. 30분이라는 말에 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시대의 흐름이다.
1931년 11월 10일 동아일보 기사 중에 ‘한창 김장할 때 주부가 명심할 일’로 우리 조선 사람이 밥 다음에 김치 없이는 못 산다고 하며, 만반진수가 있더라고 김치가 없으면 얼굴에 코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蘭緣記』(1977년)의 ‘全北의 味覺散策’에서는 많은 음식을 나열하였으나, 이 중에서도 김치는 김장철 배추김치와 더불어 갓쌈김치, 깻잎김치, 고추김치, 파김치, 고들빼기김치를 들었다.
특히 고들빼기김치는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시( 믈 데온 물이 고기도곤 마시 이셰)를 들어 우리 지역 김치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고들빼기의 쓴맛이 사라지듯 제맛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음을 아쉬워했다.


『전주문화』(1986)에서는 세시풍속으로 우리 지역에서 ‘즐기는 음식’을 정리하였다. 1월 햇김치, 2월 미나리김치, 3월 나박김치, 4월 봄배추김치, 5월 열무김치로 제철에 나는 식재료로 다양한 김치가 소개되었다.
『전북의 뿌리』(1984년)에서는 입동(立冬) 전후에 김장하지만, 전주에서는 소설(小雪)과 대설(大雪) 사이에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김장 김치로 통김치, 쌈김치, 깍두기, 싱건지, 동치미, 겉절이, 짠지 등을 담근다고 했다.
싱건지와 동치미를 헷갈리는 이들이 있는데, 싱건지는 무청이 달린 무로 담근다. 싱겁게 담근 물김치라고 보면 된다. 김장 전에 미리 하여 바쁜 김장 일을 덜기도 한다. 동치미는 무와 배추로 담근다. 배춧잎 사이사이에 청각, 쪽파, 마늘, 밤, 당근 등의 양념소를 넣어 묶어준다. 김장을 끝내고 동지 지나서 담기도 한다.
진안고원의 아삭한 배추를 간수 쏙 뺀 부안 천일염으로 절여서 씻은 후, 매콤한 임실 고추 양념에 정갈한 전주 손맛이 더해진 김치가 바로 우리 지역의 김치다.
응답하라. 김장김치

송영애(전주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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