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초상-압송도 충남 문화재 되다
최익현초상-압송도 충남 문화재 되다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3.1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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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서 청양으로 옮겨간 채용신의 최익현 압송도와 영정 그림 2점

<속보>군산서 청양으로 옮겨간 채용신(1850-1941)의 최익현 유배도와 영정 등 그림 2점이 충남도 문화재가 됐다. <관련기사 2016년 11월 9일자>
1905년 을사늑약에 반발하며 고희를 넘긴 나이에 의병장을 맡아 항전하다 일제에 끌려가 순국한 면암 최익현(1833∼1906) 선생 관련 유물 2건이 3.1운동 100주년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문화재 반열에 올랐다.

충남도는 최근 들어 ‘최익현 초상(충남 유형문화재 제248호)와 ‘청양 최익현 압송도(충남 유형문화재 제298호)’ 등 9건을 충남 유형문화재 등으로 지정 고시했다고 밝혔다.
최익현 압송도는 1910∼1930년대 면암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화로, 조선시대 기록화 제작 방식을 현대화한, 구성 방식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가로 120.5㎝에 세로 63.3㎝의 비단에 그린 이 그림은 구한말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항일지사인 최익선생이 일제에 의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다시 대마도로 압송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담고 있다.

최익현 압송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면암집’에 수록된 인물과 연계돼 역사적 의미도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익현 압송도와 함께 조성된 최익현 초상은 당대 최고 초상화가인 석지 채용신의 작품이다.

채용신은 조선말기 화가로 인물·산수·영모 등 여러 화목에 뛰어난 가운데 특히 전북에서 주로 활동한 가운데, 특히 초상화을 잘 그려 고종의 어진을 비롯, 1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 초상은현존 관복 본 전신상 중 비교적 고식의 초상화법이 적용된 사례로,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유학자이자 의병장 최익현의 풍모를 적절히 형상화 한 작품이다.

1833년 경기 포천에서 출생한 최익현은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이조정랑 등을 역임했으며, 1900년 경 경주최씨 본가가 있는 청양으로 낙향했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에 반발하며 전북 태인 무성서원(사적 제166호)에서 의병을 모았다. 태인 의병에 앞서서는 홍성에서 홍주의병 총수를 맡아 이끌기도 했다.
의병장 활동으로 체포돼 일제에 의해 대마도로 유배된 선생은 단식 후유증 등으로 1906년 순국했으며, 유해는 후손 등에 의해 예산 광시면에 안장됐다.

충남도 관계자는 “3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대한제국 시기 대표적인 항일지사인 면암 최익현 선생과 관련한 유물들을 문화재로 지정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유배과정 섬세하게 그린 걸작

 

■문화재된 최익현 압송도

청양 최익현초상(靑陽 崔益鉉肖像)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8호로 지정, 백제문화체험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조성 연대는 1910~1930년, 규격은 전체144.5×63.8cm, 그림 111× 53.8cm다.
이 초상은 구한말을 대표하는 문인지식인이자 항일지사인 면암 최익현의 초상화이며, 그의 말년 행적을 담은 최익현 압송도 함께 보관된 점이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관복본 전신상 중 비교적 고식의 초상화법이 적용된 사례이며, 눈동자에 수정체가 표현되지 않은 점은 채용신의 초기화법에 해당된다.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채용신이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유학자이자 의병장 최익현의 풍모를 적절히 형상화해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1910 ~ 1930년대 최익현을 기리는 추모 사업의 일환으로 그려진 초상화로 추정되며, 주인공 최익현의 역사적 지명도와 화가 채용신의 명성, 그리고 회화적 완성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학술과 문화사 가치가 높아 충청남도 문화재로 보존 ․ 관리하고자 지정 고시했다.
청양 최익현압송도(靑陽 崔益鉉押送圖)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9호로 지정, 백제문화체험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조성연대는 1910 ~ 1930년, 규격은 전체 120.5×63.3cm, 그림 91×53.8cm다. 이 작품은 구한말을 대표하는 문인지식인이자 항일지사인 면암 최익현선생이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부산에서 다시 대마도로 압송되는 과정을 재현한 기록화로 조선시대 기록화 제작 방식을 현대화한 새로운 구성방식이 흥미롭다. 이는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1910 ~ 1930년대 최익현의 행적을 기리는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대체로 압송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면압집'에 등장하는 인물과 연계되어 의미가 있다. 이에 주인공의 역사적 지명도와 초상화가 채용신의 명성 그리고 회화적 완성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학술과 문화사 가치가 높아 충청남도 문화재로 보존 ․ 관리하고자 지정 고시됐다.
한편 면암 최익현선생의 유배도와 영정 등 2점은 군산에서 충남 청양군으로 소장처를 옮겼다. 이는 국내 첫 발견된 희귀 그림으로, 채용신이 기록화적 기법을 통해 유배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진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청양군 백제문화체험박물관 전시물 자료를 수집하던 중 면암선생의 제자 장모 선생의 손자(군산 거주)가 면암선생의 영정과 유배도 각 1점을 보관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림을 넘겨받은 것. 
당시 대마도 유배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희귀 그림으로, 면암선생 일행이 숭례문을 나올 때부터 대마도에 도착하는 과정을 한 장의 비단에 절반씩 나눠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그림의 좌측에는 일본인이 끄는 인력거를 탄 면암 선생 뒤에 장남 최영조, 차남 최영학을 비롯, 임병찬, 임병대, 임응철, 최제태, 최영설, 최만식, 최전구, 이승회 등 10명이 뒤따르고 있으며, 현재의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과정을 한 눈으로 볼 수 있게끔 그려져 있다. 그림 우측을 보면 부산 초량역에 기차가 도착해 부산항에 이르러 최익현과과 임병찬이 조각배에 올라 일본 상선으로 옮겨 타고 오륙도를 거쳐 대마도로 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은 최익현이 서울역에서부터 대마도까지 유배되는 과정이 기록화적 기법으로 그려졌으며, 관악산과 남태령 고개, 동작동이 지금과 같이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등 마치 오늘날 위성사진처럼 세밀한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보인다. /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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