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쟁(和諍), 갈등 치유와 발전의 길
화쟁(和諍), 갈등 치유와 발전의 길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4.3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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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사유의 공간이 넓어야 건강하다. 그만큼
상대를 포용하기에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된다”
김판용-시인·전주경실련 공동대표
김판용-시인·전주경실련 공동대표

얼마 전에 대학 동기들 모임이 남원에서 있었다. 50대 후반의 친구들이 모이면 으레 그렇듯 추억에 젖어 술잔을 기울이며, 사연 많았던 저 ‘젊은 날의 초상’을 들춰내 웃다가 또 아련해 하다가 취해가기 마련이다. 어디 그뿐인가 현실로 돌아와 다가오는 퇴직이나 자식들의 취직과 결혼 등의 무게에 버거워하기도 한다.
우리도 그랬다. 최루탄 연기 자욱했던 교정의 시대를 지나, 철이 들면서 컴퓨터 앞에 앉게 됐고, 결혼하고는 호주머니에 휴대폰 넣고 살다가, 서서히 배가 나오자 또 스마트폰과 씨름하는 세대이니 그 역정이나 짐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시대와 정면으로 부딪쳐 살면서도 정작 시대의 주인은 되지 못한 중년의 동창들, 그래도 만나면 반갑고 행복하다.

그런 이야기와 술만으로는 양이 안 찼는지 모임의 성격을 바꾸기로 했다. 친구들의 거주지를 찾아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느끼는 여행으로 만들자고 한 것이다. 그 첫 장소가 남원이고, 유사(有司)를 친구 복효근 시인이 맡았다. 그 덕에 광한루원 야경에 취하기도 했고, 완월정(玩月亭)에 올라 꽉 찬 달을 보는 호사도 누렸다.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하나에 얽힌 시인의 이야기를 듣는 건 더 귀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새벽에 실상사에 가자고 의견이 모였다.
비교적 이른 아침에 실상사에 도착해 우연히 도법 스님을 만났다.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으로 사회 갈등을 해결에 노력해 오신 한국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와의 만남은 큰 가피가 아닐 수 없다.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당신 방에서 차 한잔하자고 하신다. 자리에 앉아 찻물을 올리고 ‘요즘 학교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신다. 어디 힘들지 않은 일이 있으랴, 이래저래 교육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로 이어졌다. 간디가 한 말이라고 한다. ‘인도가 식민지가 된 것은 영국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시면서 이런 말을 우리 사회에 던졌다가는 아마 난리가 날 거라고. 감기에 걸리면 바이러스만 탓하기보다 자신의 면역력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반성이 있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인도가 강했더라면 영국이 함부로 덤벼들었을까? 반성하지 않고 남을 탓하면 발전할 수 없어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화쟁으로 나가야 돌아보면 우리의 모순으로 역사적 화(禍)를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우리가 건강하고 합리적이었다면 임진왜란이나 한일합병, 한국전쟁 등은 일어나지 않았거나,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침략자의 죄악이 없어지거나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한 것은 분명하게 짚고 그에 상응하는 죄값을 물어야 한다. 약하다고 침범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범죄이다.
무조건 상대만을 탓하고, 그들의 잘못을 들춰내기만 할 뿐, 자신을 돌아다보지 않으면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상대의 과오를 밝혀내려는 노력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 세월호 문제도 마찬가지다. 진상을 철저하게 밝혀내 앞으로는 그런 비극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에는 무사안일과 이익만을 위한 탐욕은 없었지. 반성 없이 누구를 탓하기만 해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화쟁의 실현은 바로 그 반성에서 출발한다.
차를 마시고 마루에 걸터앉자 스님께서 풀밭을 가르치신다. 민들레가 지배적인 가운데 토끼풀과 시금초, 광대나물, 쇠별꽃 등이 서로 얽혀 있다. 다시 물으신다. ‘무엇이 꽃이고, 무엇이 풀이냐’고. 풀의 눈으로 보면 풀이 아닌 것이 없고, 꽃의 눈으로 보면 꽃이 아닌 것이 없다. 그 풀밭이 바로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화쟁의 실존처럼 보였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앞으로 나가는 것이 화쟁의 정신이다. 꽃이라고 풀을 무시하고, 풀이라고 꽃을 시기만 하면 함께 할 수가 없다.
흔히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스스로가 정한 도덕적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러다 보니 옹졸해진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상대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같이 갈 수 없다면서 어떻게 공존을 말하는지 의심스럽다. 혹시 진영논리에 빠져 우리 편하고만 더불어 살겠다는 것은 아닐까? 좌우 사유의 공간이 넓어야 건강하다. 그만큼 상대를 포용하기에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된다.
실상사는 인드라망과 한살림, 그리고 생명 평화의 정신을 실현하는 실천 도량이다. 중심 건물인 약사전 앞에 무궁화 한그루가 있다. 지리산 프로젝트인 ‘무궁화 심기’에 결과물이다. 무궁화에는 이념이 없으니 쉬운 것부터 함께 가보자는 시도였다. 여기에 ‘일간베스트’도 참여했다. 도법 스님과 실상사를 진보의 보루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안 갈 것이다.
극단적 편협주의 일간베스트는 도법 스님을 종북주의자라고 욕했던 단체이다. 그런데 함께 무궁화를 심고 그 아래 단체명을 표지해 놓은 것이다. 다른 것을 인정하고 품으려는 화쟁의 구현이다.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말이 잘 통하더라는 스님의 말씀이 지리산의 햇살만큼이나 환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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