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0년08월02일18시16분( Sunday ) Sing up Log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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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

“있는 것을 가능한 솔직히 설명하고 안내하고 함께 하자"
정 건 희-청소년자치연구소장
정 건 희-청소년자치연구소장



토요일 아침이다. 화장실에서 세면하는데 아래층 아주머니 오셔서 층간 소음으로 시끄럽다고 한소리 하시는 것 같다. 평일 밤 11시 내외에 계속 쿵쾅이는 소리 너무 시끄럽다고 하시면서 화를 내는데 아내는 연신 미안하다고만 했다. 11시 내외면 아이들이 잠들 시간이고 저녁에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이나 바닥에 앉아 있는데 매일 시끄럽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어쩌다가 한두 번 아이가 뛰었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매일 시끄럽지는 않았을 터인데. 추측하건데 아래층 이웃분이 많이 예민하신 듯싶다. 어쩔 수 있나? 우리 집 때문에 신경 쓰인다는데 미안하다고 하고 더 조용하겠다고 해야지.

늦은 밤 광주에서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새로운 청소년현장의 모델들 만들어 가면서 최선을 다했던 청소년활동가가 갑자기 이 땅을 떠났다는 글이 올라왔다. 어쩌다가 강연장이나 토론회장에서 만났던 이 바닥 후배였고 그 선한 얼굴과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자주 보진 못해도 서로가 새로 개척하는 현장의 새로운 일들 마음으로나마 응원하는 관계였다. 사람이 이 땅을 떠나는 데에 순서가 있겠느냐만, 그래도 이 친구는 너무 젊다. 마음이 좋지 않고 계속 우울했다.

다음 날 아침. 오전에 카페에서 커피 한잔 주문했는데 밖에 하얀색 길고양이가 혀로 몸을 닦고 있다. 이 친구는 이 카페에 반주인은 되는 듯 한 녀석이다. 이 고양이 친구와 아이들 먹이기 위해 사장님은 매일 사료를 내다 놓는다. 사료 쪽 보는데 처음 보는 까만 고양이가 먹이 먹다가 나를 보고서는 후다닥 몸을 피한다. 이 녀석(하얀 고양이)은 내가 다가가면 가까이 다가와서 몸을 비비는데, 나를 모르는 까만 친구는 밥 먹다가 엄청 빠르게 몸을 피한다.

안다는 것과 알지 못한다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든다. 아래층의 아주머니를 내가 알고 있는 지인이었다면 어땠을까? 까만색 길고양이를 내가 알았다면 이 친구가 도망갔을까? 아마도 아주머니는 화를 내지도 않았겠고 찾아와서 무슨 일 있느냐고 오히려 질문하면서 편하게 대화하지 않았을까? 까만색 고양이가 나를 보고 도망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광주의 그 친구를 알지 못했다면 내가 이렇게 슬프지도 않았겠지. 사람들은 알면 기쁘고 감사하지만 반면에 앎이 깊을수록 상대에 의해 많이도 슬프기도 하다.

사람을 그리고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관계한다는 거다. 관계가 없으면 마찰도 없고 사람에 대한 아픔과 힘겨움도 없다. 그래서 좋을까? 천만에. 관계가 없으면 사랑도 없고 신뢰도 존중도 존경도 없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쉽지 않다. 긍정적인 관계를 위해서 무조건적인 배려도 배타도 관계하는 타자에 의한 반응이 주가 되기 때문에 완벽한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를 너무 사랑해서 한 말과 행동이 그(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 사랑이나 큰 신뢰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는 알겠다. 인간관계를 잘 하기 위해서 말투나 대화기법 등 어떤 기술이 본질은 아니라는 것과, 타자를 개인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대상화 하는 일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 정도. 그래서 '솔직'해 진다. 있는 것을 가능한 설명하고 안내하고 함께 하는 일이다. 직장에서의 선후배 관계도 그렇고 연인, 부부, 자녀 관계도 그렇다. 가능한 그 공간에서 적절히 개방할 수 있는 만큼 사실을 이야기 하고 함께 한다. 아래층 아주머니에게도 그렇게 설명하고 거실 의자에 매트리스 깔고, 까만 길고양이에게도 매일 아는 체 하면서 쓰다듬어 주어야겠다. 그리고 이 땅 떠난 그 친구의 명복을 빌고 그렇게 슬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