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달그락]사명이 이끄는 삶 이영춘 박사, 그의 자녀
[달그락달그락]사명이 이끄는 삶 이영춘 박사, 그의 자녀
  • 윤은서 청소년기자
  • 승인 2019.12.11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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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 ⑧이영춘가옥
-② 몽골의 교육을 뿌리기 내리기 위한 노력, 이계심 목사를 만나다

“목표가 생기면 사명을 가지고 삶을 살아 낼 수 있어요. 가족들은 이영춘 박사의 농민을 위한 삶,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배웠고 같이 동역하는 동역자였죠”
 이영춘 박사의 12째 자녀 이계심 목사는 이영춘 박사를 동역자로 기억 한다고 말했다. 평생을 농촌 의료선교에 삶을 바친 이영춘 박사의 삶과 정신을 이어와 삶을 살아냈던 후손의 이야기, 가옥의 유래를 현장 취재를 1편에 2편에서는 이계심 목사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사명이 이끄는 삶에 대한 인터뷰        몽골 선교 사역을 하며 몽골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몽골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귀 기울여 같이 나아갔기에 문화적 갈등은 생기지 않았고 같이 발전할 수 있었다.
사명이 이끄는 삶에 대한 인터뷰 몽골 선교 사역을 하며 몽골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몽골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귀 기울여 같이 나아갔기에 문화적 갈등은 생기지 않았고 같이 발전할 수 있었다.

 

이영춘박사의 딸인 이계심 목사는 몽골에서 선교사역을 하다 현재 인천에 살고 있다. 이계심 목사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가치를 전파하고자 교육활동을 이어왔다. 아이들이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선교적인 삶이셔서 나 또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고 싶었다. 선교활동을 하던 시절 몽골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였다. 같이 나아갔기에 문화적 갈등은 생기지 않았고 같이 발전할 수 있었다”며 자신의 경험과 신념에 대해 말했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영춘 박사의 8남 5녀의 12째 딸이다. 군산에서 출생해 고등교육부터 서울에서 다녔다. 몽골에서 교육하면서 1학년부터 한 명씩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을 만들고자 했다. 앞으로의 시대에 필요한 교육을 만들겠다는 설립 정신으로 몽골에 학교를 세웠다. 몽골에 울란바트르 대학 재단을 세웠다. 몽골은 사회주의에 눌려 있는 경향이 있다. 첫 교시에는 음악을 늘 듣고 감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치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헌신이라는 가치에 대하여 예화를 들어서 교육하고자 한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유롭게 배우는 것은 다르다.

∆ 몽골에서 교육사역의 과정은?
 

울란바토르 고등학교(그림:윤은서)
울란바토르 고등학교(그림:윤은서)

 

몽골에는 교회에서 친구와 같이 가게 됐다. 그때 몽골은 사회주의 국가였고, 당시 어두운 볼모지 여서 먹을 것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썩은 사과조차 몽골에서는 매우 반가웠다. 하지만 당시에는 불모지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이런 목표가 있어 너무 재미있었다. 이런 삶의 모습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선교적인 삶이셔서 나 또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고 싶었다.
 초, 중등, 대학을 설립했다. 몽골에서 일할 때도 항상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기록하는 몽골의 교육이 아닌 몽골사람들의 입장에서 교육사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들의 문화를 얼마나 존중하고 교육법을 따르며 일을 했는지 늘 경계 했다. 그렇기에 몽골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귀기울였다. 같이 나아갔기에 문화적 갈등은 생기지 않았고 같이 발전할 수 있었다.  20여 년의 몽골 사역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꿈꾸는 것이 있다. 몽골어로 수업하는 정규 학급과 학교를 만나고자 한다. 지금 국내에는 5만여명의 몽골인이 있다. 몽골은 특성상 가족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몽골어를 가르치는 학급을 만들고자 한다. 몽골에서 그랬듯이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욕심을 부리기보단 기초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몽골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종합대학을 만드는 과정이 있었다. 지금은 인천에서 살고 있으며 남편도 교육자이다.

“아버지 이영춘은 지도자의 위치이면서도 검소하게 살고자 했고, 의사 이영춘은 ‘병을 잘 고치는 것도 좋지만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의사가 더 좋은 의사다’는 신념을 갖고 계셨다”

∆  이영춘 박사님이 하신 일 중 가족으로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무엇인가요?
 이영춘 박사의 생애 중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은 청빈한 삶이다. 사회에 봉사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정직하고 청빈하게 살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공직자들이 도덕성에 문제가 많은 사회이다. 그러나 지도자의 위치이면서도 검소하게 살고자 한점이 가족들에게 큰 본보기가 되었다. 목표가 선명해 지는 순간 흔들림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명을 가지는 것이다. 가치 있는 것에 인생을 걸 수 있어야 한다. 가족들에게 아무런 유산도 남기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재단에 넘겼다. 이영춘 박사의 생애에는 가족들의 동역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같이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동역이었다. 세상에 어려움과 난관이 많을 때 우리가 가진 복을 나누자. 한가지 말하고 싶은 점이 있다. 자신의 영향력이 크다고 해서 사람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도 몽골에서 선교하다가 나오게 된 것이다.

∆ 고향도 아닌 군산농촌의 현장 일선에서 이영춘 박사님께서 의료계 분야로 일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영춘 박사만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있나요?
 이영춘 박사는 평창 이씨이다. 절개와 기계가 있는 분이다. 평안남도 용강 출신이며 평안 보통학교를 나왔고 황해도에서 첫 병원을 개업했다. 그때 치료비를 못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세브란스에서 의사를 시골 지역에 파견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개정 호남 일대에는 소작인이 2만 명이었다. 이영춘 박사는 농촌 출신으로서 농촌의 삶을 익히 알고 있는 과정에서 의료 선교를 펼쳤다. 농민은 나라의 근본이라는 목표로 ‘이웃을 사랑하기’를 실천하고자 했다. 농민은 이웃이고, 국민이었다. 이웃 사랑은 봉사와 사랑과 섬김의 형태로 실천하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의사 이영춘은 “병을 잘 고치는 것도 좋지만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의사가 더 좋은 의사다”는 신념을 갖고 계셨다.

∆ 이영춘 박사님에 대한 인상 깊은 일화가 있나요?
 어머니가 설날 아침 식사 시간에 모이라고 했다. 그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떡국조차도. 어머니가 “아버지께서 월급을 가져오지 않으신다. 그동안은 엄마가 일하면서 어떻게든 밥을 먹었는데, 이제부터는 너희가 이런 우리의 형편을 알고 먹는 것을 감사히여겨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영춘 박사님은 가난하고 검소하게 사셨다. 주변 친구들은 우리 가족이 잘사는 줄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설날에 떡국도 먹기 힘든 삶을 살았다.
 또한, 아버지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분이셨다. 한번은 설익을 앵두를 딴 적이 있는데 그 일을 가지고 크게 혼나고 처음으로 매를 맞았다. 어떤 일이든 늦게 해서도 빨리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어린아이일수록 잘못한 일은 바로잡아야 한다 생각하셨다.

∆  이영춘 박사님을 기억하기 위해 진행하는 일 등이나 행사가 있나요?
 추모 음악제가 열린다. 또한, 기념관을 둘러보는 역사 기행 프로그램도 있으며 근대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것들도 관심을 가지면 살펴볼 수 있다. 의료 봉사에 대한 세미나도 열리며 출판된 책을 살펴볼 수 있다. 최근에는 관련 만화책을 출간 준비 중이다. 곧 출간된다. 한번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많은 행사와 일들이 있더라도 여러분이 기억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아직은 많은 분이 모르지만 정말 많은 일을 하신 이영춘 박사의 신념 교훈을 기억했으면 한다.
역사, 철학, 문학책으로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는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얻은 교훈을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닌 직접 행동으로 실천해야 정말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  역사를 더 잘 알고 지켜나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도, 인식, 지식, 역사의식 관련 등)
진짜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이다. 입으로도 말하고 글로도 기록할 수 있지만, 교훈을 마음에 품고 실천하는 삶 자체가 역사의 기억이다. 또한, 공부가 필요하다.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닌 민족과 인류를 위한 공부를 했으면 한다. 자신의 역할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를 위한 공부는 목표가 생기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선도해 나가려면 역사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역사책은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역사, 철학, 문학책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는 과정을 통해 수용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이 중요하다. 수첩을 들고 다니면 어떨까. 일기는 물론이고 일상의 기록을 적는 수첩은 자신의 역사 기록지가 될 것이다.

∆ 청소년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은 누구나 철학이 있다. 건강한 교육을 만드는 철학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도덕성이 높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마음의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자. 역사 속 인물을 만날 수 있는 책을 추천하는 편이다. 이는 삶을 살아갈 때 길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역사의식이 생겨야 세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역사를 알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외부의 기대와 요건에 메이게 되면 창의성이 떨어지게 되어있다. 내가 하는 일이 좋으면 다양하게 활용하게 된다. 또한,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닌 직접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글로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윤은서 청소년기자


인터뷰후기

목사님이 해주신 많은 말씀 중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워하는 것은 세상이 속이는 것이다’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내년에 성인이 되어서 사회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가슴이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날개를 펼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도 저의 철학을 확립하여 제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졌습니다. /서종학 청소년 기자

저도 교육 쪽에서 관심이 있었는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육자로서의 태도와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교육자가 되어도 잊지못할 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연락드리겠습니다./역사동아리 U-story 한정민 부대표

역사교사라는 꿈이 너무 추상적이여서 이 꿈을 포기하려 했었는데 ‘하고 싶은 일을 재밌게 해라!’는 말을 듣고 위안이 되었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U-story 안성준 대표

군산의 역사적으로 좋은 일을 하신 인물이 관련된 이야기와 가치관들을 들은 것이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고, 특히 이영춘 가옥에 직접 간다음 설명을 들으니 더 이해가 잘되었어요. 내가 살아갈 때 꼭 중요한 것들을 많이 얻은 기분이었어요. /U-story 여민기 부대표

군산에 이영춘 박사님 같은 분이 있어서 뿌듯 하고 오셔서 봉사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 박사님이 더 널리 알려지면 좋겠어요. 좋은 말씀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윤은서 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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